251011
지금의 사천공항 바로 앞, 사천시 수석리 드무 고개에는 한때 기찻길 철교가 있었다. 사천역이 1953년에 준공되었으니,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1954년, 중학교에 입학한 1960년을 생각하면 이 드무고개 철교에 대한 기억은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의 일이다.
도로 위로 길게 뻗은 그 철교를 우리는 ‘철구다리’라 불렀다. 철골 구조물 아래에는 드무고개로 이어지는 신작로가 지나가고, 그 위 철구다리로는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기차가 오갔다. 기차의 연기와 쇳내가 공기 속에 섞여 있던 시절이었다.
초딩 때는 가무작살 성당 친구들과, 중딩 때는 등하굣길의 친구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그 철구다리를 건너곤 했다. 철까시(레일)를 받치는 침목 사이로 아래 도로가 훤히 보였고, 그 높이는 어린 그때 눈으로는 까마득했다. 발밑이 뚫린 듯한 두려움과, 세상이 내 아래에 있는 듯한, 내가 세상 위에 있는 듯한 묘한 전율이 교차하기도 했다.
하루 두 번인가 지나가던 기차가 올 때면 더 큰 모험이 기다렸다. 우리는 바지 포켓또(주머니)에서 대못을 꺼내 레일 위에 올려놓곤 멀찍이 숨어서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덜컹덜컹, 쇠바퀴가 철길을 두드리며 지나가고 나면, 대못은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린 호기심과 시간, 그리고 우리가 모두 그 대못처럼 ‘납작 꼴’이 된 거였다.
가무작살 동네의 키 작은 칠성이 형은 철구다리 직전의 철길 위에서 더 아찔한 일을 했다고 한다. 멀리서 기차 소리가 들리면 그는 레일 사이 침목 위에 몸을 바짝 붙여 엎드렸다고 했다. 자기 몸 위로 기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연기와 진동이 가라앉은 뒤에야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철없는 목숨 놀음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렇게 했다”라는 것이다.
영화 「박하사탕」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 김영호(설경구)가 1999년 봄, 20년 만의 야유회 자리에서 철구다리에 올라 “나 다시 돌아갈래!”라 외치며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진다. 영화는 그의 삶을 시간의 역순으로 되감으며, 마지막엔 첫사랑 순임과 소풍 갔던 순수의 시절로 돌아간다. 시작이자 끝이 되는 그 장면에서, 그의 외침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인간이 품는 마지막 환상처럼 들린다.
이제 그 철구다리는 없다. 대신 내 심중의 오래된 시간 속으로 녹아들었다. 철구 다리의 철길을 따라 불던 쇳내 섞인 바람, 기차가 지나간 뒤 남던 진동, 그리고 납작해진 대못 등 하나같이 모두 시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위에서 느꼈던 아슬아슬한 생의 감각만은 아직도 내 가슴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진동한다.
그 지점엔 다시 갈 수 있지만 그 사물과 시절에는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더 더러 생각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박하사탕’ 영화처럼 발음해 본다. “나 다시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