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앉아 바위를 보며

by 로댄힐

①길뫼재엔 큰 바위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통 바위이고 다른 하나는 너럭바위이다. 나는 통바위에는 ‘숙진암(淑鎭岩)’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너럭바위에는 평상암(平床岩)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숙진암은 통 바위라도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고 평상암은 넓고 크긴 하지만 어마어마한 건 아니다. 많게는 다섯 명, 적게는 세 명 정도가 둘러앉아 과일을 깎아 먹거나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넓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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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숙진암은 내가 평상암에 앉아 바라보는 바위다. 숙진암은 바로 앞의 우리 매실 밭에 앉아 있다. 숙진암은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오기를 기다린 바위다. 여기 마을 저 위 산기슭에 있던 바위가 1998년 7월 31일의 지리산 게릴라성 폭우 대참사 때 굴러 내려와 저 자리에 저렇게 앉은 바위다. 놀랍게도, 굴러 내려오기 전의 본래 자리에서, 앉아 있던 형상 그대로 지금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10여 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사실을 증언해 주었다. 숙진암이 앉아 있는 밭은 우리 소유가 아니었는데, 그 바위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주인이 나에게 흔쾌히 소유를 이전해 주었다. 아무튼, 숙진암은 내가 그에 말 건네는 바위다. 숙진암은 바로 아래에서 늘 길뫼재와 우리를 또 나를 지켜보고 있는 수호 바위다. 숙진암에 새겨진 그 많은 세월의 무늬는 모두가 다 내게는 암호이고 메시지이다. 그걸 읽어내는 일, 해독(解讀)하는 일은 악양 지리산 산기슭 길뫼재 이곳 산거 중 내 과제 중의 하나이다. 야스퍼스(K. Jaspers)의 초월성(超越性)의 암호이론, 암호 해독 이론이 생각난다. 이게 뭔지는 다음에 말할 기회를 갖기로 하고. 난 숙진암과 맺은 인연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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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평상암은 길뫼재에 앉아 있다. 바로 뒤 밭에서 2014년 10월 9일에 옮긴 바위다. 이 바위 또 땅속에 묻혀 나를 기다린 바위다. 밭주인이 포클레인으로 정지작업을 할 때 땅위로 얼굴을 드러내어 자기가 앉을자리, 즉 길뫼재 이곳으로 옮겨와 앉은 바위다. 이 바위와 맺은 인연 또한 내게 소중하다. 조경한답시고 찾아다녀서 구한 바위가 아니라 숙진암도 평상암도 바위 측에서 먼저 내게 눈짓하여 함께 하게 된 바위들이어서 더욱 친밀하다. 그래서 숙진암 또 평상암과 나는, ‘나-그것(I-It)'의 관계를 넘어 '나-너(I-Thou)' 관계로 이어진다. 사물에게 2인칭 인격을 부여할 수 있으랴만 그들에게 말 건네며 소통하는 나의 심중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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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아낌없이 주는 나무』얘기다: “어느 곳에 나무와 친구인 소년이 있었다. 나무와 소년은 언제나 즐겁게 함께 놀았다. 소년은 자라나서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가져가라고 했다. 소년은 나무의 열매를 가져가 팔아 돈을 얻었다. 소년은 더 자라서 어른이 되자 결혼을 하려면 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베어 가서 집을 지으라고 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의 가지를 모두 가져가서 집을 지었다. 또 더 나이가 든 소년이 찾아와 너무나 슬퍼서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베어 가서 배를 만들라고 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의 몸통을 베어 가서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났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 소년은 이제는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나무에게 피곤해서 쉴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그루터기에 앉으라고 말했다. 노인은 그루터기에 앉았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다.” / 나는 여기서 나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앉음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나 이제, 좀 앉아도 될 나이가 되었다. 난 현직에 있을 때, 교수직을 수행할 때 서서 일을 수행했다. 지금도 서 있을 때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제 억지로라도 좀 앉아야 될 나이, 앉아도 되는 나이에 이르렀으니 나이답게 좀 더 관조(觀照) 생활을 해야겠음을 이렇게 ‘앉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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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바위에 앉아 바위를 본다. 평상암에 앉아 숙진암을 본다. 평상암에 앉아 섬진강에 이르는 악양 들판을, 강 건너 광양 백운산의 산맥을 또 길뫼재 좌우의 형제봉, 구재봉, 칠선봉, 청학이 골, 신선대의 일출과 일몰을 본다. 관조(觀照)다.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본다. 반추(反芻)다. 비록 돌아볼 삶보다야 길지 않지만 내다볼 앞도 있다. 전망(展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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