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위

251108

by 로댄힐

며칠 전, 6일. 거제도에 갔을 때 폐왕성(둔덕기성)에 오르기 전에 먼저 둔덕 마을의 청마 유치환 시인 생가를 들렀다. 그 전과 달리 주변에는 여러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깃발’을 비롯해 그의 대표 시들이 새겨져 있었고. 이는 문학관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내가 찾던 시 〈바위〉는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내가 놓친 것일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와 옆으로 걷다가 안치된 바위 하나를 보았다. 안내문은 없었지만, 그 바위가 바로 청마의 〈바위〉를 표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바위는 더 이상 돌이 아니라 그의 시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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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에는 유치환의 〈바위〉가 단지 의지의 시로만 읽혔다. 세상의 풍파에 꺾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선언처럼 들렸다. 시의 첫 구절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라는 이 말은, 죽은 뒤의 바람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바위처럼 살고 싶다’라는 결의로 읽혔다.


나, 세월의 강에서 노를 저어오며, 풍상설우 긴 세월이 내 몸에 주름을 새겼다. 그 이름도 찬란한 ‘노년’, 이제 유치환의 〈바위〉는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인에게 그 첫 구절이 삶의 의지라면,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곧 삶의 실상이 되었다. 나는 ‘숙진암’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나머지 구절들은 고스란히 숙진암에 겹쳐 읽힌다.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


세월은 바람처럼 스쳐가도 그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 세월의 침묵이다.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그 안에는 말없이 견뎌온 날들의 체온, 잊힌 듯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숨결, 그리고 무수한 후회와 감사가 함께 눌러앉아 있다.


젊은 시절엔 무엇이든 말로 남기려 했지만, 이제는 말 대신 고요가 더 많은 것을 전한다는 걸 안다. 묵묵히 버텨온 시간의 층들이 쌓여 내 안에도 작은 바위 하나가 놓인 듯하다. 그 바위가 나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고 있다.


청마의 바위는 내 노년의 마음을 미리 예언한 시가 아니었을까. 청마의 바위가 관념의 상징이라면, 나의 바위, 숙진암은 함께해 온 세월 스무 해의 실제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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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 자체인 숙진암 앞에서 나는 내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고 있다. 바위 위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 또한 한 점 바위로 늙어가고 있다.


그 앞에 앉으면, 나는 바위가 된다. ‘나’와 ‘편’의 바위, 숙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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