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자의 뜻깊은 생일

by 로댄힐

1. 겨울 강변 - 금곡 영천강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진주시 금곡의 영천강, 영오교를 막 건너니 고성군 영오면 ‘우정 장어’가 강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옥천사와 문산을 거쳐 남강에 합류하는 영천강은 그날따라 더 쓸쓸해 보였다. 겨울 해 질 무렵이어서 그럴 것이다.

강바람이 그리 차진 않았다. 사람 기척도, 새소리도 없이 낮은 물결만 잔잔했다. 강변엔 인기척이 없었고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강변의 겨울은 고요했고 서정적이었다.

“사람도 저럴 때가 있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팔순을 코앞에 둔 나이, 살아온 세월이 길어진 만큼, 문득문득 이렇게 텅 빈 풍경이 마음에 닿을 때가 있다.

운전석에서 먼저 내린 동현이 차량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모두 조심조심! 나이 생각하고.”

동현이는 우리를 자기 동네인 배춘 마을에 모이게 해 9인승 승합차에 태워 여기까지 왔다.

민물장어 주인장 셰프가 기다리고 섰다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말입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세 분을 모셨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와, 그라모 오늘 장어가 국빈 대접이가!”

“우리가 국빈 대접 받능기가?”


2. 국빈 만찬


오늘의 주인공은 숙자이고 이 판을 실질적으로 추진하여 성사시킨 사람은 동현이었다. 봉규와 삼도 그리고 영래는 조금 늦게 자기들 차량으로 도착했다.

“채진아, 니는 처음 아이가?”

“그래, 초딩 졸업하고는 처음이다.”

“와, 우리가 이래 다시 모일 줄 누가 알았겠노!”

장어는 식탁에서 구워지는 대로 젓가락에 집혔고 우정의 “건배!”도 몇 차례 외쳐졌고 그에 비례해서 온기도 홀을 덥혔다. 옛날 초등학교 교실 목탄 난로 주변처럼. 검은 술(콜라) 마신다고 앞자리의 정련에게 나는 서너 차례 핀잔을 들어야 했고.

봉규는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바빴고 풍기는 또 권주하려 일어나 왔다 갔다 했다. 삼총사라는 정련이, 금자, 숙자의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머슴아들은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야, 니네들 얼굴 옛날 그대로네!”

“오데가 그대로고, 얼굴 다 퍼졌다 아이가.”

“아이다. 눈매는 초딩 때 그대로다.”

정련이와 금자는 숙자랑, 그러니까 우리랑 중딩 동창인데 오늘 우정 출연한 거라 했다.

숙자보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니 덕에 우리가 이 나이에 좋은 밥 묵네!”


3. 전화 한 통 - 인연 회복의 불씨


이날 모인 사람은 열셋이었다. 동현, 길병, 풍기, 인중, 대식, 봉규, 영래, 정도, 삼도, 정련, 금자, 그리고 숙자와 나. 다들 1946~48년생. 숫자로만 보면 다들 늙었지만, 입만 열면 금세 초딩 시절로 돌아갔다.

“삼도야, 왜 늦게 왔노?”

“정도와 삼도는 재종간 맞제?”

“인중이, 얌생이는 잘 크나?”

동창회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내가 퇴직 후 10년도 더 지나고 나서야 어떻게 연줄이 닿아 만나게 된 초딩 동창 애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에서 축동초등학교 운동장 플라타너스가 스쳤다. 그때 우리 식 발음으로는 ‘뿌라다나스!’

이 만남의 씨앗은 몇 달 전 전화 한 통이었다. 지난 10월 말, 중학교 동창회를 처음 나갔다가, 그 자리에서 숙자가 내 초딩 동창 같은 반이었다는 걸 알았다. 다음 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니 숙자 맞제? 축동초교.”

“와, 채진이가?”

통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숙자의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나도 초딩 동창들 소식은 통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이 나이에 얼굴 한 번 보면 좋겠다.”

그 말이 씨앗이 됐다. 동현이의 전화를 받은 건 늦가을 저녁이었다.

“채진아, 나 동현이다. 니 시간 되나?”

동현이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딱 그 톤이었다. 반가운 마음보다 먼저 ‘무슨 일이고’ 싶었다.

“와, 니가 내한테 전화를 다 했네. 무슨 바람 불었노?”

“바람은 무슨. 초딩 동창들이 얼굴 한번 보자 카는데.”


4. 사다골 - 숙자 내면의 풍경


숙자의 고향은 사천군 축동면 사다리골, 사다골이다. 전깃불도 없던 시절, 방앗간이 있는 가무작살에서 북쪽으로 가면 좁은 길 골짜기가 이어졌다. 사다골 초입에 이르면 갑자기 전망이 열려,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큰 정자나무가 마을을 지키며, 실개천이 흐르는 뒤로 나트막한 기슭에 옹기종기 집들이 다정하게 앉은 마을…, 그 풍경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대로였다.

이 노랫말은 숙자 인생의 뿌리였다. 숙자는 그 골짜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축동초등학교를 마치고 사천중학교에 입학하며 그 골짜기를 떠났다. 하지만 마음에서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 골짜기 앞뒤 집에 살던 아이가 숙자와 용규였다.

“용규 오빠는 참 착했다 아이가.”

숙자는 그렇게 말했다. 한 살 위였던 용규는 사람 좋고, 잘 생기고 키도 커서 인기 많은 오빠였다고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다래끼가 양쪽 눈에 번갈아 나는 통에 글을 읽을 수 없어 한 해를 쉬는 바람에 같은 학년이 됐다. 그 뒤로는 친구가 됐고, 중학교도 같은 학년으로 올라갔다.

축동초교 교실은 일본식 목조 건물이었다. 겨울이면 바람이 숭숭 들어왔고, 여름이면 나무 냄새가 났다. 교실의 풍경 중 내가 기억하는 여학생 이미지 중 숙자의 것은 란도셀을 메고 세라 복을 가끔 입은 아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난 걸로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6.25 전후로 세상을 떠나신 걸로 지레짐작했다. 이번에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학교에 자주 오시던 학부모는 흰 모시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와, 단정한 차림의 어머니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사친 회장과 육성회장을 겸하고 계셨는데, 입학식 때 축사하려 운동장 조회 시간 교탁에 오르신 적은 있어도 날 찾아 교실에 오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5. 숙자의 시간 - 뜻깊은 생일


저녁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술이 여러 순배 돌고, 분위기가 풀릴 즈음 누가 말했다.

“근데 숙자야, 이거, 니 생일 파티라며?”

그때 동현이가 일어났다.

“자, 우리 모두 2층 노래방으로 갑시다. 거기서 특별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2층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들고 온 케이크를 정련이와 금자가 세팅했다.

“빨리 성냥불 붙여라!”

“숙자야, 촛불 불고 소원도 빌어라.”

생일 축가가 시작됐다. 박수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팔순을 앞둔 나이들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초딩 얼굴 그대로였다.

“내가 한마디 할 게예.”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내 어릴 때 태어나고 살던 축동 사다골….” “나는 축동 사다골 말이 나오면 자다가도 퍼뜩 일어나는 사람입니더.”

숙자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초등학교 친구들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생일을 핑계 삼아 모임을 제안했다고. 숙자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초딩 시절, 사다골, 그 골짜기에서의 기억. 더 늙기 전에 친구들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다는 말….

“그라고 말입니다. 동현 회장이 그동안 밥도 많이 사고 돈도 많이 썼거든예. 이번에는 내 생일 맞아서 내가 한 번 해보자 싶어가, 동현이 하고 의논했십니더.”

동현이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뭔 소리고. 니가 하자 카이 내가 좋다 캤지.”

숙자는 또 말했다.

“내가 살면서 중딩 동기들은 종종 봤는데, 초딩 친구들은 생각도 못 했거든예. 이래 다 살아가 만나니께 참 좋네예.”

그러다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내가 오늘 깜짝 놀란 게예. 우리 초딩 친구 중에 박사이자 교수님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아입니꺼.” “그 축동 골짜기에서 같이 뛰놀던 채진이가 교수님 됐다는 게, 나는 참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더. 그동안 그걸 내가 왜 모르고 있었던지.”

그 말에 나는 가슴 한쪽이 묘하게 저렸다. 그리고 민망했다. 살다 보니 들어선 길이 그 길일 따름인데….

“아이고, 나 술도 적게 묵는디 오늘은 쪼매 마실라요.”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입시더.”

여흥이 무르익을 무렵, “일체 비용을 혼자서 기꺼이 다 부담한 숙자의 내년 생일 파티는 우리가 우아하게 챙겨주자”라고 말한 누구의 제안에 나도 기꺼이 동의했다.


6. 각자의 삶 – 서로 다른 길


숙자는 자라 무용의 길로 들어섰다. 진주검무의 대가가 됐고, 지금도 꾸준히 춤을 춘다. 십여 년 전에는 가톨릭에 귀의해 진주 하대동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봉규와 같은 성당이다.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춤출 때가 제일 기도 같다.”

봉규는 장례지도사가 됐다. 부산 등지에서 여러 일을 하다가 진주 경상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장례 예식장 쪽 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지금도 장례지도사로 일하며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진주, 사천 천지에, 아는 사람치고, 내 손 안 거치고 하늘나라로 주소 옮긴 사람 별로 없일끼다.”

“사람이 죽는 기, 끝이라 생각하모 안 된다.”

“잘 보내주는 거, 그거 하나다.”

그의 말엔 수많은 죽음을 처리한 사람 특유의 담담함이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본 장면들 때문일까. 그의 구수한 말투는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봉규 또한 가톨릭 귀의하여 숙자랑 같은 성당에 다닌다고 했다. 사다골 동네에서 출발하여 이어지는 우정을 숙자는 자랑스러워했다.

동현이는 결혼 후 천리교 신자가 됐다고 했던 거 같다. 신앙적 동기로 불우한 노인들을 돌보다가, 제도가 생기자, 사천 지역 첫 요양원 인가를 받았다고 했다. 성남두레복지원, 지금도 그의 삶은 거기서 봉사로 이어진다.

“내가 잘나서 하는 거 아니다.”

그는 아마 천리교 전국 임원인 것 같았다. 나는 천리교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동현이의 삶을 보고서, 민폐를 끼치는 다른 종파 또는 기성종교와 차별된다는 생각도 조금 했다.

“믿음이라는 기, 말이 아이고 생활이다.”

그 말엔 그의 삶이 다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숙자와 동현은 국중딩 동창이다. 사천중 17회 동창회에서 동현이 회장, 숙자가 부회장을 맡아 함께 일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스스럼없이 의논하는 사이라고 했다.


7. 밤 - 회상의 자리


숙소에서 나는 봉규, 용규, 대식, 영래와 한 방이었다. 영래의 고향 신촌과 봉규의 고향 사다골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현이 그 사람, 참 별나다 아이가.”

“별나다 못해 대단하지.”

동현의 봉사 이야기, 베푸는 이야기, 친구들 챙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나는 조용히 들었다.

퇴직 후 악양 동매리 길뫼재에서 은둔하다시피 살고 있는데 갑자기 ‘동창’이라는 사회관계망 속으로 다시 들어온 게 아직은 얼떨떨했다.

그날 밤, 우리는 각자에게 붙어 있는 사회적 이름들을 다 내려놓고 그냥 ‘초딩 동무’였다. 강변의 겨울새들처럼, 우리는 각자의 무리를 이루어 살아왔지만, 그날만큼은 ‘초딩’이라는 이름 아래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대식이 니도 초딩 때 복장이 참 깨끗했었지.”

말이 꼬리를 물었다.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살아온 이야기와 초딩 시절을 오갔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 밤만큼은 ‘축동’, ‘사다골’, ‘교실 한복판’이었다.


8. 겨울 아침 - 강변의 철새들

다음 날 아침, 강변은 전날과 달랐다. 아침, 잠자리 숙소에서 나와 다시 청와대 셰프 오리구이 집으로 아침 먹으러 가는 길, 영천강이 유난히 부산했다. 겨울 철새들이 무리 지어 웅성거리다가 날아오르는 등 법석이었다. 강너머 금곡 마을엔 아침밥을 짓는지 연기가 오르기도 했다.

오리 떼가 물살을 가르며 먹이를 찾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엔 백조들이 따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묘하게도 섞이지 않았다. 백조는 백조끼리, 오리는 오리끼리.

“참말로 그림 같다 아이가.”

누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다들 잠시 강을 바라봤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평생 각자 다른 무리로 살았지만, 이틀 밤 하루만은 같은 물 위에 있었다고.


9. 남은 것들 - 길뫼재로 돌아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는 영천강을 벗어나고, 산길로 접어들자, 어제의 얼굴들이 하나씩 마음속에서 스쳤다.

나는 낮에는 밭을 매고, 밤에는 글을 쓴다. 퇴직 후 이어 온 이 생활이 이제는 내 하루의 뼈대가 되었다. 세상과 조금 떨어져 사는 대신, 기억과는 더 가까워졌다.

문득 어젯밤 풍경이 떠올랐다. 숙자의 사다골을 이야기하던 목소리, 케이크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손, “더 늙기 전에”라는 말에 실려 있던 조심스러운 마음.

동현의 굳은 손도, 봉규의 담담한 말도 함께 떠올랐다. 각자 다른 믿음으로 살았지만, 결국은 사람을 향해 걸어온 길이었다. 대식이와 영래 또 삼도, 정련이와 금자, 풍기와 길병이, 정도와 인중이.

‘풍기와 길병이’는 내게 또 다른 글감을 주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 둘의 초딩 시절 이야기를 글로 재구성하려 한다.

이제 생각하니 우리가 다시 만난 이유는 추억을 확인하려는 게 아니라, 아직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축동 초딩 아이들은 늙지 않았다. 다만 우리 몸이 먼저 세월을 건너왔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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