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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부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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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부채란(蘭)?


딱 하루만 피는 꽃이다. ‘부채란’(蘭)으로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연구실의 부채란은 집의 것보다 더 빨리 핀다. 연구실의 꽃들이 지고 나면 집의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루를 찰나에 비교할 순 없지만, 부채란은 찰나적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면 지는 꽃, 피자 말자 지기 시작하는 꽃….


요샌 이 꽃에 시선 한번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고 6월을 보낸다. 몇 해째 그랬다. 길뫼재에서 헤아리는 풀들이 많기 때문이다.


‘부채란’이라는 이름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는데 그걸 모르겠다. ‘마당’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정확하지 않다. 마당이 맞는다면 ‘마당부채란’이다. 야생화에 박학다식하신 D 의원 원장 사모님께 물어, 그 이름을 정확히 인지해야겠다. 그래 봤자 금방 또 까먹고 말게 되겠지만.


'죽음' 이야기


‘죽음’이라는 주제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더러 생긴다. 직접적인 계기는 여러 해전에 시작한 간호대학원의 특강이다.


내가 맡은 주제는 ‘철학에서 보는 죽음’과 ‘신학에서 보는 죽음’이다. 그냥 철학이라고 또 신학이라고 말하면 범위가 무지하게 넓지만, 나름대로 하나의 관점을 잡아 해마다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장소에서 다른 대상을 앞에 놓고 말할 기회가 더러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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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금정구 보건소의 호스피스 저변 확대를 위한 ‘죽음과 삶’ 특강 두 시간이었다. 맥락을 어떻게 잡을까 골똘히 생각하는 중에 문득 떠오른 개념은 ‘죽음아 날 살려라!’였다.


그런데 놀란 것은 이 제목의 책이 있다는 것이었다. 순전히 내 머릿속에서 생각해 낸 말인데 정확히 일치하는 책이 있다니! 세상에!


‘노인’ 이야기


‘노인’ 이야기 기회도 마찬가지다. 아주 그전엔 ‘청소년기’를 주제로 한 이야기 요청이 더러 들어오더니 몇 해 전부터 들어오는 이야기 요청은 대개 ‘노년기’가 그 주제이다.


전화가 왔다. ‘부산노인사목연구위원회’를 만드는데 연구위원으로 함께 하자는 요청 전화였다. 모임 날 갔다. 가서 보니 여러 방면의 ‘노인학’ 전공자들이 미리 와 있었다. 전공으로서는 내가 어중간했는데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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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맡아주어야 할 분야와 일이 덜 있진 않으리라고 했다. 당장 떨어진 과제는 8월의 특강, 교황청의 ‘교회와 세상 안에서 노인의 존엄과 사명’이라는 문헌을 바탕으로 한 ‘노인 사목의 미래’였다. 8월 하순에 일정이 잡혀 있는데 원고는 7월 15일까지 내어 달라고 한다.


죽음과 노인, 딱히 내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밀착해 있는 내 이야기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이다. 노인과 죽음, 가까이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고 ‘머나먼 다리’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기엔 ‘노인과 죽음. 죽음과 노인’은 마당부채란 이다. 마당부채란, ‘피었네!’ 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지고 없다. ‘졌군!’ 하고 옆을 보면 다른 잎에 또 피어 있다.


워킹 아이리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건 전혀 엉뚱한 기억이다. 정확한 이름은 ‘워킹 아이리스’였다. 이를 ‘학란’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마당부채란은 전혀 생뚱맞게 들이댄 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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