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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못 마신 커피, 늦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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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입구, 목재 울타리


길뫼재 초입에 상징적인 울타리를 하나 세웠다. 울타리라기보다 경계만 슬며시 드러내는 표시 같은 것이다. 나무 작업을 하다 남은 토막들을 이어 붙여 볼 요량으로 먼저 뼈대를 세웠는데, 막상 자리를 잡고 나니 생각보다 든든하다. 엉성함과 단단함이 한데 섞여 의외의 멋을 부려준다.


완성한 뒤에는 결을 따라 칠도 입혔다. 햇살을 머금은 나무색이 주변의 흙과 풀빛에 어울려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굳이 제 존재를 드러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지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가만히 붙잡는, 그런 울타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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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아닌 울타리를 완성하고서 그 아래에 큰 돌들을 가지런히 또 놓으니 바라보는 시각적 효과가 또 다르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가벼운 선에 돌멩이들의 묵직한 기운이 더해져, 경계가 한층 더 안정되고 눌러앉은 듯한 느낌이 생겼다.


마치 흙과 나무, 돌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서로의 모양을 받쳐주는 것처럼,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조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울타리는 사람의 손이 닿았다는 흔적을 남기면서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풍경의 일부처럼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가지런히 놓은 돌


대충 놓은 돌을 가지런히 놓았다. 여기서 ‘대충’은 나의 일이고 ‘가지런히’는 편의 일이다.


이날도 일이 많았다. 나는 나대로 편은 편대로 된 더위 아래라고 해서 쉴 틈이 없었다. 줄을 쳐서는 잔디밭을 조금 넓혔다. 고추 이랑과 넓히는 잔디밭을 구분하는 돌을 난 대충 놓았다. 시간이 없어서도 그랬고 대충 놓아도 될 것 같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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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옥수수, 땅콩 이랑으로 가서 풀을 뽑고 왔더니 선이 달라져 있었다. 바닥에 돌을 까는 일에서 솜씨를 이미 편은 보여 준 적이 있다. 그것도 서너 번.


“놓으려면 좀 쪽 바로 좀 놓으시오.”


“선이 바르네! 돌을 잘 놓았네!”라는 나의 감탄에 대한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이제 샤워실에서 샤워


샤워실을 만들고 나니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늦봄부터는 땀범벅이다. 그래도 한여름 아니고는 샤워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한여름에도 주위를 살피면서 못 둑 아래서 겨우 했다.


지금까지는 해 질 무렵에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에서의 산지기처럼 비교적 마음대로 밖에서 했지만, 이제 마주칠 이웃이 바로 가까이 생겨 그렇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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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는 기쁨을 교대로 누렸다. 만들고 나서 편은 처음, 나는 두 번째 하는 샤워다. 된 더위의 땀의 양을 누가 짐작해 주랴? 팥죽같이 흘린 땀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이 샤워의 기쁨을 그 누가 알아주랴? 막 세운 샤워장의 사방 나무판자 냄새가 새삼 좋다. 실제 냄새보다 느낌의 냄새가 그렇다.


낮에 못 마신 커피, 늦은 지금


근 9시, 저녁이다. 둘이 마주 앉아 밭에서 바로 따고 뜯고 뽑은 고추, 가지와 상추와 열무가 반찬이다. 편이 섬진강, 악양 들판을 보고 앉았다. 파라솔을 머리 위에 두고는 난 편을 보고 앉았고.


치우고 다시 놓은 잔은 커피잔, 낮에 마시지 못한 커피를 밤에 마신다. 형제봉, 신선대, 평사리 들판, 섬진강, 백운산을 덮은 실루엣도 이제 가라앉았다.


명멸하는 건 마을 불빛들이다. 등이 하나둘 늘어나고, 몇 촉짜리를 다는지 모르지만 새로 세운 그 등들은 불빛이 더 크다. 그래서 아쉽지만, 아직도 지리산 기슭의 마을 위 이곳의 어둠은 골짜기만큼 깊고 악양 들판처럼 넓다.


이번엔 나란히 앉았다. 함께 보는 섬진강이다. 어둠의 저 먼 섬진강….


색소폰을 가지고 내려오지 못했다. 요샌 그렇다. 가지고 왔어도 불지 못했다. 주말에 부산 을숙도 문화회관 팀과 함께하는 합주가 있어서 연습 많이 해야 하는데도 그렇다.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가지고 왔더라면 편 앞에서 Merci Cherie, 별이 빛나는 밤의 시그널 뮤직이었던 이 곡을 없는 폼 다 잡아 한번 불어 제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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