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손과 잡힌 손
길병이와 인중이, 정도가 자리를 뜬 후 우리는 2층 노래방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며 나는 아직도 조금 전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걸 느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학교 다니던 길. 그 장면이 계속해서 나를 붙잡고 있었다.
노래방 문을 열자 오래된 조명이 반짝였고, 마이크 두 개가 탁자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몇십 년 만에 잡아보는 마이크였다. 손에 쥔 감촉이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처음엔 현숙의 ‘내 인생에 박수’를 불렀다. 가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말들인데, 그날따라 하나하나가 새로 들렸다. 박수를 받아야 할 인생이 아니라, 그냥 여기까지 걸어온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돌아보니 박수를 받아도 될 인생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 손은 마이크를 놓지 않고 꼭 쥐고 있었다. 마치 조금 전 얘기에서 길병이가 풍기의 손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흩어졌지만, 나는 쉽게 마이크를 내려놓지 못했다. 곧이어 최유나의 ‘숨겨진 소설’을 눌렀다.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사실은 며칠 전부터 혼자 흥얼거리며 연습도 해두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 밤에는 꼭 이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며 나는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상엿집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날씨가 흐렸고 오가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 상엿집이 저기 앞에 보이는 지점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지나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내가 메고 있는 책보 끈을 잡았다. 같은 반이었는지, 한두 살 위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도 희미하다. 다만 그 아이가 아무 말 없이 내 책보 끈을 잡아당기며 먼저 상엿집을 통과했다는 것만은 또렷하다.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고, 괜찮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앞서 걸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상엿집을 다 통과하고 나서야 그 아이는 책보 끈을 놓았다. 우리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도, 다음에 또 같이 가자는 약속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특별히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 덕분에 그 지점을 지나갔고, 그 기억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는 깨달았다. 길병이가 풍기의 손을 잡았던 것처럼, 누군가가 내 뒤에서 책보를 잡아 조용히 나를 지나가게 해 주었고, 나는 그것을 그때는 알지 못한 채 지나왔다는 것을.
노래가 끝났을 때, 나는 마이크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이제는 놓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야기 속의 손도, 노래를 잡고 있던 손도.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 영천강을 건넜다. 나를 실은 차는 느린 속도로 다리를 건넜다. 하지만 내 마음으로는 다리 위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걸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혹은 잡히며 건너온 길들이 내 삶에도 분명히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병이와 풍기 이야기는 그렇게 내 이야기 옆에 나란히 놓였다. 같은 모양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결’로.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손은 잡히기 위해 존재하고, 어떤 손은 놓아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잡히기 위해 존재하는 손과 놓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손, 이 말은 손의 모양이나 쓰임을 나누겠다는 뜻이 아니다. 살다 보니, 어떤 손은 방향을 배우는 동안 잠시 맡겨져야 할 자리에 있었고, 어떤 손은 끝까지 붙들기보다 제때 힘을 빼야 할 자리에 있었다.
잡히는 손은 의지로 충분한 몫을 다하고 있었고, 놓아주는 손은 외면이 아니라 책임을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지, 언제 놓아야 서로 넘어지지 않는지를 아는 일은 말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차이는 살아온 시간만큼 손에 남아 있었고, 나는 이제야 그 감각을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은 게 아니었다. 흩어질 것 같던 이야기와,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의 시간을 잠시라도 붙들어 두고 싶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