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손과 잡힌 손
키가 크면 장다리고 키가 작으면 꺼꾸리였다. 콤비 중에서 말이다.
시장 골목이나 등하교 길엔 함께 다니는 꺼꾸리와 장다리가 더러 있었다. 장다리는 전봇대처럼 훤칠했고, 꺼꾸리는 어깨에 매달린 가방이 더 커 보일 만큼 아담했다. 둘이 나란히 서면 사람들 시선이 먼저 키 차이로 쏠렸지만, 정작 그들 둘은 그걸 유쾌한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알았다.
키는 달라도 걸음은 늘 같은 박자였다. 학교 가는 길, 시장 골목, 만화방까지. 장다리는 높은 곳의 일을 맡고, 꺼꾸리는 빠른 손으로 잔일을 챙겼다. 서로 없으면 하루가 헛헛했다.
“야, 꺼꾸리. 저기 간판 글씨 뭐라 쓰여 있냐?”
“잠깐만. 너 무릎 좀 굽혀. 내가 어깨에 올라가서 볼게.”
“또 타냐? 오늘은 네가 장다리다.”
사다리 대신 어깨를 빌려주고, 눈 대신 서로의 눈높이를 바꿔가며 세상을 봤다. 만화 속 ‘꺼꾸리군 장다리군’처럼, 현실의 둘도 늘 엇갈린 듯 꼭 맞았다.
시장 아주머니는 둘을 보면 웃으며 말했다.
“야, 너희는 딱 꺼꾸리와 장다리네!”
그 말에 둘은 괜히 더 붙어 다녔다. 별명이 우정의 도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표현이 참 오래 남을 말이라는 생각을, 그때는 미처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 신경 안 쓰여?”
“뭐가. 우리가 더 잘 보이잖아.”
“하하, 그러네. 너 덕에 세상 위에서 본다.”
어느 날 비가 쏟아졌다. 장다리는 우산을 높이 들었고, 꺼꾸리는 안쪽으로 바짝 붙었다. 비는 장다리 어깨를 먼저 적셨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꺼꾸리가 말했다.
“다음엔 내가 우산 들게.”
장다리는 고개를 저었다.
“키는 나, 약속은 우리.”
“?”
“내가 우산을 드는 건 내가 커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하기로 했기 때문이야.”
그렇게 둘은 각자의 몫을 알았다. 누가 더 크고 작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라서 균형이 맞았으니까.
세월이 흘러도 ‘꺼꾸리와 장다리’는 콤비의 다른 이름으로 남았다. 키 차이에서 시작해 마음의 높이를 맞춘 이야기에는 늘 웃음과 의리가 따라왔다.
‘꺼꾸리와 장다리’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일상에서 월등히 크거나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의 콤비를 지칭하는 말인데, 요즘은 신체를 비교하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가장 이른 기록은 1955년 6월 2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꺼꾸리와 장다리’ 만화 표기다. 이후 1977년 TBC 어린이 드라마 「꺼꾸리와 장다리」가 방영되었는데, 이는 김성환의 연재만화 「꺼꾸리군 장다리군」을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박동화가 쓴 단편 명랑소설 「꺼꾸리와 장다리」도 있고, 서수남·하청일 듀오 역시 키 차이로 그렇게 불렸다. 안데르센 동화 <Little Claus & Great Claus>가 「꺼꾸리와 장다리」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기도 했다.
이처럼 ‘꺼꾸리와 장다리’는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꺼꾸리 풍기와 장다리 길병’은 두 친구의 초딩 시절 콤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딱 맞는 말이다.
길병이의 말이다.
“어릴 때 일이라 내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때 풍기 어른이 새우젓 장사 나가시기도 한 것 같아. 어디 멀리 나가시면 시일이 걸리지 않겠어. 다 팔아야 돌아오시는 기라.”
“그래서 나한테, 우리 집에서나 길가에서 날 보면, ‘길병아, 니 우리 풍기와 잘 지내야 한다,’ ‘풍기 좀 잘 데불고 댕기라,’ ‘꼭 손잡고 다니거라이,’ 이러신 것 같아. 그때 풍기가 참 작았거든.”
“맞다. 그때 풍기가 좀 작았나?”
“만나면 매번 그렇게 부탁하시는 기라, 나는 ‘아이고, 걱정하지 마이소’ 하고는, 누가 풍기를 터치 못 하게, 절대 손도 못 대게 했지. 그러니까 내가 학교 댕길 때 풍기의 비서, 경호원 역할을 톡톡히 했능기라. 하하!”
“어쨌든 길병이 니는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컸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다리 경호원이라는 표현이, 그날따라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이쯤 되면 ‘꺼꾸리와 장다리’는 단순한 별명을 넘어, 우리에게 꽤 익숙한 관계의 한 유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꺼꾸리 풍기와 장다리 길병’은 두 친구의 초등학교 시절을 부르기에 더없이 알맞은 표현이다.
옛날 하이틴 영화 <꺼꾸리와 장다리>에서도, 꺼꾸리가 괴롭힘을 당할 때 장다리가 보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꺼꾸리는 장난꾸러기 키 작은 소년으로, 장다리는 심약하지만 키 큰 소년으로 등장한다. 두 아이가 악명 높은 생활지도 주임 고바우 선생에게 함께 곤욕을 치를 때, 장다리는 꺼꾸리를 감싸거나 대신 맞서며 보호한다. 이 과정에서 꺼꾸리와 장다리의 우정이 깊어지고, 선생님의 인정을 받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 장면들은 우정과 연대, 그리고 제자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코믹을 넘어, 성장의 한 국면을 담고 있다.
이제 장다리 경호원 길병이가 꺼꾸리 풍기의 손을 잡고 다닌 이유는 충분히 알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장다리 길병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꺼꾸리 풍기가 나선 적은 없었을까.
그건 아직 모른다. 다음에 다시 만나, 함께 있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한번 물어봐야겠다. 어쩌면 그 답도, 또 하나의 숨겨진 소설이 되어 나를 붙잡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