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손과 잡힌 손
이 나이가 되어 보니 기억이란 게 머리보다 몸에 먼저 남는다는 걸 알겠다. 그중에서도 손의 감각은 오래 버틴다. 무엇을 잡았는지, 언제 놓았는지, 그때 힘을 주었는지 말았는지까지를.
나는 누군가의 손을 많이 잡아 본 사람은 아니다. 대신, 잡고 있었던 순간의 내 손은 뚜렷하게 기억한다. 아버지의 자전거 안장을 잡은 내 손을 말이다.
살다 보니 손은 늘 한쪽만의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잡아주고, 누군가는 잡힌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순간마다 두 역할은 자주 바뀌어 있었다. 붙잡고 있다고 여긴 손이 사실은 붙들리고 있었고, 잡히고 있다고 느낀 쪽이 오히려 버티고 있던 때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 손들의 무게가 어디서 서로를 받치고 있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형제 중에서 아버지가 태워주시는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탔다. 면사무소에 출근하실 때 아버지는 나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구불구불한 들길을 달리셨다. 높낮이가 있는 논길 밭길이어서 자전거는 늘 흔들렸지만, 아버지는 그 길을 익숙하게 잘도 달리셨다.
나는 자전거 짐받이에 앉아 아버지가 앉은 안장 아래를 두 손으로 꼭 잡아야 했다. 그게 나름의 요령이었다. 손을 놓치면 그대로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아버지는 자기 허리를 감으라고 하셨고. 특히 겨울에는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잡아야 해서 손이 몹시 시렸다. 차가운 쇠의 감촉이 손바닥에 그대로 전해졌고, 바람은 손등을 먼저 파고들었다.
논길과 밭길은 생각보다 더 많이 흔들렸다. 자전거가 덜컹거릴 때마다 나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넘어질까 봐서라기보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그때 손에 들어가 있던 힘을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꽉 쥐고 있으면서도, 어딘가에 의지하고 있다는 걸 몸으로 알던 순간이었다.
그 시절, 빼빼 마른 아버지의 등은 이상하리만치 든든해 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려다보시던 아버지의 등은 크지도 넓지도 않았지만, 그 등 뒤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없던 등, 그러나 방향을 잃지 않던 등이었다.
면사무소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한마디 하셨다.
“손 안 시리나?”
그 말뿐이었다. 아버지의 이 한마디 질문이 오래 남아 있다.
나는 어머니의 손에 잡혀 본 기억이 없다.
형제자매는 많았고, 어머니는 늘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밭일을 나가고, 다시 집안일로 돌아오는 하루였다. 아이의 손을 잡아줄 만큼 시간이 남아돌던 시대도 아니었고, 그런 여유를 허락하던 삶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어머니들 가운데 자식의 손을 자주 잡아주던 어머니가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싶다. 아이들은 스스로 컸고, 길도 혼자 건넜고, 넘어지면 흙을 털고 다시 일어났다. 어머니의 손은 늘 부엌에 있었고, 우물가에 있었고, 밭고랑에 있었지, 아이 곁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에야 상상해 본다.
유년 시절, 집 앞 큰 못에서 놀다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 못은 크고 깊었다. 어른도 아이도 빠져 죽은 일이 있던 못이었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겨울이면 얼음이 얼었다. 겨울철, 철사를 구부려 만든 쓰께또를 발에 묶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기억이 있다. 넘어질 때마다 옷은 젖고, 손발은 얼어붙었지만, 멈출 줄을 몰랐다.
그때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멀리서부터 호통을 치며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는 끌고 못둑 위로 올라왔다. 위험하다고,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런 말보다 먼저 손이 나왔을 것이다. 꽉 잡아당기는 손, 얼음보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분명한 온기를 가진 손.
그 손에 이끌려 못둑을 올라오면서, 나는 징징댔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멈춰 선 놀이가 아쉬워서였을 것이다. 혹은 그제야 느껴진 손의 힘이 낯설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 다다르면,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갔을 것이다.
실제로는 그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자꾸 또렷해진다. 내가 만들어 낸 기억인데도, 그 안의 손은 점점 분명해진다. 잡아끌던 손의 힘, 놓아주던 순간의 짧은 정적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손을 잡아주지 않은 게 아니라, 손을 놓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손이라도 비우면 하루가 무너질 것 같은 삶 속에서, 아이 손을 잡는 일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의 손은 늘 거기 있었다.
밥상 위에 있었고, 빨래를 비틀고 있었고, 땔감 나무를 쪼고 있었고, 새벽마다 식구들의 하루를 먼저 시작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지는 못했지만, 모두를 떠받치고 있던 손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 손을 생각한다.
잡히지 않았기에 더 오래 남아 있는 손, 기억 속이 아니라 삶 전체에 스며 있던 손, 만져보지 못했기에, 더 늦게 아프게 다가오는 손…. 어머니의 손은 나를 끌어올린 적은 없지만, 내가 빠지지 않도록 평생 가장자리에서 버티고 있던 손이었을 것이다.
길병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아버지 자전거를 꽉 잡던 내 손과, 그때 보이던 아버지의 등이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한 번도 잡혀 본 적 없는 어머니의 손을, 이제야 상상하게 되었다.
풍기의 손을 잡고 고개를 넘고, 삼거리를 지나 학교까지 오던 길병이의 손. 그리고 쟁기 손잡이를 붙들고 땅의 깊이를 맞추던 그의 아버지 손. 그 손들은 붙잡고 놓아주는 시점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지, 언제 놓아야 하는지를.
나는 지금 그 손들을 글로 붙잡고 있다.
이미 놓여 버린 손들이지만, 기억 속에서만큼은 다시 이어 붙여 보고 싶어서다. 아마 이 이야기는 손을 잡았던 사람들보다, 그 손을 뒤늦게 돌아보는 나 같은 사람의 몫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길병이가 풍기의 손을 잡고 학교를 오가던 일과, 그의 아버지가 쟁기의 손잡이를 잡고 땅의 방향을 맞추던 일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다.
앞에서 끄는 힘이 있고, 뒤에서 방향을 잡는 손이 있고, 그 사이에서 길이 나고 땅이 갈라졌다. 아이의 걸음이 너무 빠르지 않게, 소의 힘이 헛되이 빠지지 않게. 보폭과 깊이를 가늠하는 일은 늘 손의 몫이었다. 손은, 넘어지지 않게, 어긋나지 않게, 끝까지 가게 했다. 그 손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학교에 닿았고, 논과 밭은 생계의 터전이 되었다.
나는 이제, 우정도 기술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무게를 견디던 ‘손’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