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은 손과 집힌 손
사실 그 시대에 소의 쟁기는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었다. 소가 끄는 쟁기 즉 소 쟁기는 사람과 소, 나무와 쇠가 한 몸이 되어 땅과 맞서는 도구였다. 소의 힘이 앞에서 끌고, 사람의 손이 뒤에서 방향을 잡으며, 땅은 그 사이에서 비로소 갈라졌다.
그래서 쟁기는 기계처럼 찍어내는 물건이 아니라, 쓰는 논과 밭, 소의 성질, 사람의 손힘까지 고려해 만들어지는 ‘맞춤 도구’였다.
“쟁기 그거, 목수라고 해서 다 손댈 수 있는 거 아니다.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 기술 보통 기술 아니다.”
길병이 목소리가 더 진지해졌다. 그 말투에는, 단순한 설명을 넘는 존중 같은 게 묻어 있었다.
“말이 좀 길어지는데 내가 아는 지식을 동원해서 말하자면 쟁기 만드는 법은 이래.”
나는 전화기 너머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가 직접 부려보지 못한 쟁기였지만, 이미 하나의 풍경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나무부터다.”
“아무 나무나 쓰면 안 된다. 단단하고, 잘 마른나무여야 한다. 베어온 나무를 그냥 쓰는 게 아니라, 톱으로 자르고 끌로 파고, 대패로 밀어서 모양을 잡는다. 이는 쟁기 전체의 뼈대가 되는 작업이다. 이때가 제일 손이 많이 간다. 나무가 말을 안 들으면, 그날은 그냥 끝이야.”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쳤다.
“아, 그거 당거이겠지.”
“그다음은 몸체다.”
“쟁기 앞부분은 땅을 가르도록 뾰족하게 만들고, 뒤쪽은 손잡이가 붙을 수 있게 여유를 둔다. 특히 보습이 들어갈 자리는 미리 파둬야 한다. 나중에 생각 없이 파면 나무가 갈라지기 십상이다. 여기서 이미 반은 정해진다. 쟁기가 잘 먹느냐 안 먹느냐가.”
길병이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먼저 움직이는 듯했다. 허공에 나무 결을 그리듯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건 책에서 배운 순서가 아니라, 아버지 어깨너머로 몸에 밴 기억일 것이다.
“아, 그러니까 구조가 다 이유가 있는 거네.”
내 말에 길병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하이라이트는 그다음이었다.
“보습을 다는 작업이 젤 중요하다. 보습은 주물 공장에서 쇳물을 ‘가다’에 부어 만든다. 날이 잘 살아 있어야 하고. 그 쇠로 만든 보습을 미리 파둔 홈에 끼워 넣고, 나무쐐기로 꽉 고정한다.”
“이게 말이다. 울 아부지 기술이 제일 빛나는 데가 여기다.”
“어설프면 빠지겠네?”
“그렇지.”
“논밭 갈다가 보습 빠지면, 그날 농사는 끝이다.”
“논 갈 때 쟁기 보습이 너무 깊이 들어가도 안 되고, 얕아도 안 돼. 쟁기 가는 사람이 손만 대면 소가 그대로 가면서 딱 알맞게 갈리게, 쟁기의 깊이를 조절하는 게 기술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쟁기 봐달라고 그의 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이, 나는 자연스럽게 이해가 됐다.
“그리고 보습이 자리를 잡으면, 이제 뒤쪽이다.”
“손잡이를 연결한다. 쟁기 핸들이라고도 하는데, 이걸 몸체 뒤에 맞춰 끼우고 나무못으로 단단히 고정한다. 이때 손잡이 각도가 중요하지. 너무 서도 안 되고, 너무 누워도 안 된다.”
“소 뒤에서 사람이 잡는 거, 그러니까 손잡이 말이제?”
“맞다. 각도가 안 맞으면 허리 다 나간다.”
“그렇네. 차도 핸들을 잘 잡고 돌려야제”
내 말에 길병이는 씩 웃었다.
“마지막은 멍에다.”
“소에 걸 멍에 줄이 빠지지 않도록, 홈이나 고리를 만든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줄이 자연스럽게 걸리고 빠지도록 다듬는다. 여기까지 해야 비로소 쟁기 하나가 완성된다.”
“이게 다다.”
“말은 간단한데,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다.”
그는 덧붙였다.
“이런 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안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쟁기 만드는 법은 그렇게 길병이 몸에 남아 있었다.
나무에서 올라오던 진한 냄새, 쇠 보습을 쥐었을 때 손끝에 닿던 차가움, 그리고 수선 의뢰한 사람에게 쟁기를 넘기기 전, 한 번 더 훑어보던 아버지의 손길까지. 말로 배우지 않아도, 눈과 손으로 익힌 기억들이었다.
“와, 대단하다.”
내가 감탄하듯 말했다.
“니가 그걸 어떻게 다 아노?”
길병이는 잠깐 웃더니, 이유를 풀어놓았다.
“내가 그걸 왜 잘 아느냐 하면,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사천 시장통에서 공방을 하셨어.”
“사천읍 시장통?”
“맞다. 읍내 공방이었지.”
“아버지가 나무를 재단해서 주시면, 나는 대패질을 했다.”
“아버지 혼자 힘들잖아, 사람 쓰자니 잠깐 하다 나가 버리고. 그래서 토요일, 일요일 되면 나 불렀다.”
“그때 아부지 쟁기 만드는 거, 어깨너머로 다 배워 익혔다.”
“울 아부지, 내 일 참 많이 시켰다.”
“집에 있든, 읍내 공방에 있든, 나만 보면 일 시켰다.”
“그건.”
내가 웃으며 받았다.
“니가 일을 잘해서 그랬던 거 아니겠나.”
그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그건 기술 정도가 아니라, 예술이다.”
“?”
“공장 기계 돌리는 건 기술이고, 그런 손맛은 장인(匠人)이지.”
“그때는 알아줬지. 울 아부지 끗발 날렸지.”
잠시 뜸을 들이던 길병이가 낮게 말했다.
“지금은 없다.”
“쟁기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말이 공방(工房)의 마지막처럼 들렸다. 사람 손을 기다리던 나무와 쟁기, 그리고 그걸 만들던 기술까지, 모두가 시대와 함께 물러난 뒤였다.
이렇게 완성된 소 쟁기는 단순히 땅을 가는 도구가 아니라, 한 집안의 한 해 농사를 함께 책임지는 존재였다. 그래서 쟁기를 만든다는 건 물건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생계를 함께 맡는 일이었다. 길병이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기술자’가 아니라 ‘장인’으로 불렸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소가 없었다. 그래서 쟁기를 유심히 볼 일도, 만져볼 일도 없었다. 아니, 우리 집에 소가 있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풍기의 손을 잡고 다녔다는 길병이의 이야기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등하굣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제는 쟁기 앞에서 멈춰 서 있다.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던 힘이, 땅을 가르던 손의 힘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병이가 풍기의 손을 잡고 학교를 오가던 일과, 그의 아버지가 쟁기의 손잡이를 잡고 땅의 방향을 맞추던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었다.
앞에서 끄는 힘이 있고, 뒤에서 방향을 잡는 손이 있고, 그 사이에서 길이 나고 땅이 갈라졌다. 아이의 걸음이 너무 빠르지 않게, 소의 힘이 헛되이 빠지지 않게 보폭과 깊이를 가늠하는 일은 늘 손의 몫이었다.
잡아주는 손은 말이 없었고, 쥐고 있는 손도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넘어지지 않게, 어긋나지 않게, 끝까지 가게 했을 뿐이다. 그 손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학교에 닿았고, 논과 밭은 농지가 되었고, 한 해는 겨우 건너갔다.
나는 이제야 그 손의 의미를 알아챘다. 우정도, 기술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무게를 견디던 손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