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로서의 교회를 떠나 자연과 일상에서 발견하는 신성
[무엇인가 헤아리기 어려운 이유로, 지금 나는 성(聖) 제롬(S. Jerome)이 라틴어로 번역한 시편을 읽어보아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시편의 작자는 나의 물음들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 무렵 우리는(가족) 도시 바로 외곽에 살고 있었고, 내가 매일 대학으로 차를 몰고 갈 때마다 나는 커다란 호수를 지나가곤 했다. 거기에는 차를 세우고, 나무들 사이로 호수를 가로질러 저 먼 건너편에 있는 삼림지대를 바라볼 수 있는 장소들이 있었다. 매일 아침 나는 거기 한 장소에 차를 세우고, 그 책(성무일도)의 시편 중 몇몇 시를 읽었다. 시의 낱말과 이미지들은 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근원적 풍경을 불러내고 있었다.
하늘이여, 기뻐하라! 땅이여, 환호하라.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들이 노래하게 하라.
들판과 들판 속의 모든 것이
기쁨으로 춤추게 하라. (시편 96)
나는 시편의 언어들이 내 존재의 전부 속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이 그 아침마다 내가 시도했던 독법이었다.] (리 호이나키, 김종철 옮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Stumbling Toward Justice, 녹색평론사, 52-53)
오랫동안 나에게 성전은 성당 즉 건물 안이었다. 거대한 석조 건물이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정해진 시간에 격식을 갖추어 앉아, 정해진 언어로 읊조리는 것만이 유일한 통로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조직의 경직성이 신념을 짓누르고, 사제들의 언어가 광장의 구호로 변질되는 것을 목격하며 나는 조용히 그 '제도'의 문을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성전을 떠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진정한 기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의 새로운 성전은 지리산 자락, 섬진강의 굽이진 길 끝에 자리한 나의 일상이다. 새벽안개가 길뫼재 마당을 덮을 때, 나는 낡은 작업복을 입고 흙 위에 선다. 이것이 나의 입당(入堂)이다. 거창한 성가 대신 소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정제되지 않은 흙냄새가 향(香)이 되어 피어오른다.
블루베리 가지를 전지 하거나 매실나무의 마른 등걸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그 자체로 간절한 구도(求道)의 행위다. 정직한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대지에 닿을 때, 나는 어떤 강론보다 명징한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연은 선동하지 않는다. 다만 질서에 순응하며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뿐이다. 상식과 법치가 무너진 세상의 소란에 분노하기보다, 묵묵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대지의 '품격 있는 질서'를 보며 나는 내 안의 흐트러진 좌표를 다시 잡는다.
때로는 컨테이너 글 작업실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거나 색소폰의 첫 호흡을 내뱉는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경건한 예배의 시간이 된다. 악보의 쉼표 하나, 화폭의 여백 한 구석에서 나는 종교적 교조주의가 결코 채워줄 수 없었던 영적 갈증의 해답을 찾는다. 예술은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다리이며, 그 사다리 위에서 나는 비로소 어떤 조직에도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단독자(單獨者)가 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신을 만나기 위해 특정 건물로 향하지 않는다. 내 손때 묻은 호미 끝에, 소박한 찻잔의 온기 속에, 그리고 노안(老眼)으로 바라보는 저녁노을의 장엄함 속에 이미 신성은 깃들어 있다. 성전 밖으로 걸어 나온 뒤에야 비로소 온 세상이 나에게 성전이 되었다.
저기 섬진강 너머 광양 백운산을 바라본다. 좌측 구재봉과 칠성봉, 우측의 형제봉에 둘러싸인 악양 평야는 성전이고 그 가운데로 흐르는 악양천은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다.
Vidi aquam egredientem de templo, a latere dextro, alleluja! 비디 아쿠암 에그레디엔뗌 데 뗌쁠로 아 라떼레 덱쓰뜨로 알렐루야;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노라. 알렐루야! (부활시기 성수예식 안티폰;에제키엘 47장 및 시편 11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