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국가 언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는 자신의 영혼을 옭아매는 세 개의 그물로 종교와 국가, 그리고 언어를 지목했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기 위해 이 거미줄 같은 구속으로부터 탈피하고자 몸부림쳤다. 젊은 시절, 이 책을 읽었을 때 주인공의 몸부림에 무척 공감했었다. 이제 나는 나이가 들었다. 어쨌든, 나의 삶도 젊은 시절 꿈꾸었던 그것과 궤적이 달라졌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다시 읽었다.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 보니, 영혼을 가두는 ‘그물’이던 종교와 국가와 언어가 거친 삶의 풍랑 속에서 나를 지탱해 준 ‘세 갈래의 뿌리’로 읽힌다. 신앙(종교)은 ‘영성의 수직축’으로서 하늘과 닿아 있는 내면의 질서이자 흔들리지 않는 가문의 정신적 골조로, 서부 경남(국가)은 ‘대지의 수평축’으로서 내가 딛고 선 구체적인 땅의 기억이며 삶의 서사가 흐르는 실존적 터전으로, 사투리(언어)는 ‘생명의 순환축’으로서 사유를 길어 올리는 도구이자 삶의 질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정직한 울림으로.
첫째는 내 영혼의 질서가 된 가톨릭 신앙이다. 4대째 내려온 구 교우 집안이라는 배경은 나에게 종교가 단순한 선택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공기이자 혈액이었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나를 옥죄는 규범이 아니라, 삶의 근원적 불안을 잠재우고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든든한 정신적 지주였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기도는 나의 언어가 되었고, 그 영성은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나침반이었다.
둘째는 서부 경남이라는 대지의 정체성이다. 진주의 흙에서 태어나 지리산 천왕봉과 사천의 와룡산과 하동의 금오산을 보며 자랐고, 서울과 부산의 번잡한 도시 시간을 거쳐 다시 지리산의 품으로 돌아왔다. 낙동강이 보이는 백양산 기슭의 부산 또한 나를 지금까지도 안아주고 있는 온화한 품이다. 이 땅은 나에게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다. 한국인으로서, 특히 서부 경남 사람으로서 느끼는 장소의 기억은 내 삶의 서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악양의 들판을 바라보며 느끼는 안도감은 내가 비로소 마땅히 있어야 할 실존의 자리에 도착했음을 깨닫게 한다.
셋째는 내 사유의 무늬를 새긴 이 지역 사투리다. 조이스는 언어를 '이미 만들어진 사유의 틀'이라 경계했지만, 나에게 모어인 사투리는 가장 정직한 생명의 언어다. 투박하고 강한 억양 속에는 꾸밈없는 진심이 담겨 있고, 표준어의 매끄러움이 담아내지 못하는 삶의 구체적인 질감이 살아 있다. 나는 이 언어로 세상을 읽고, 이 언어로 나의 철학을 쓴다. 사투리는 나의 사유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오히려 나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게 하는 울림통이다.
결국 나는 이 세 가지 조건 속에서 빚어졌다. 조이스의 주인공은 날개를 달고 그물 너머로 비상하려 했으나, 나는 이 깊고 단단한 뿌리를 통해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종교적 영성, 대지의 정서, 그리고 모어(母語)의 생명력 등, 이 세 가지 실존적 조건이야말로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거푸집이자, 흔들리지 않는 삶의 근거이다.
결국 나를 구성하는 세 가지 조건 중,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가장 선명하게 남는 뿌리는 가톨릭 신앙이다. 국가와 언어 역시 내 실존의 거푸집이었으나,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인과 넓게 공유하는 ‘보편의 대지’에 가깝다. 누구나 딛고 서 있는 땅과 공통으로 사용하는 말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었지만, 오직 나만이 간직한 고유한 무늬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반면, 4대째 이어져 내 혈관 속을 흐르는 이 구 교우의 신앙은 대중의 광장 한복판에서 나를 나답게 구별 짓는 가장 사밀(私密)하고도 단단한 안마당이다.
그리하여 나는 조이스가 두려워했던 ‘그물’을 인생의 가장 귀한 ‘수확’으로 다시 명명한다. 국가와 언어라는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면서도 내가 길을 잃지 않았던 것은, 신앙이라는 묵직한 수직의 닻이 나를 절대자 앞에 정박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세월의 끝자락, 경남 하동의 대지 위에서 서부 경남의 사투리로 글을 쓰는 지금, 내 문장의 갈피마다 배어 나오는 것은 결국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성의 향기다. 나를 옭아매는 줄 알았던 그물은 이제 나를 보호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비로소 가장 나다운 자유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