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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떠나볼래'

8년이라는 시간

by 니지

"성형수술? 하고 싶지 않아. 그냥 유럽 보내줘"


스무 살부터 줄기차게 이야기했다. 혼자 유럽으로 떠나겠다고. 그런 나에게 부모님은 "친구랑 같이 가지 않는 여행이라면 성형수술을 하든 다른 곳에 투자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8살,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많은 나이도 아닌. 어중간한 나이가 됐다. 평범한 20대 후반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14년 지기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퇴사 소식과 함께 78일 동안 유럽여행을 떠난 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혼자가 아닌 친언니와 함께" 떠난다고 친구는 이야기했지만 퇴사와 그 오랜 시간을 여행한다는 용기 자체가 부럽고 또 부러웠다.

2016-08-16-14-30-30.jpg 거대하고 또 거대했던 개선문


그 친구 이야기에 패기 넘치던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다. 20대 초반 대학생이었던 나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넘쳐났다. 그러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 불안했던 부모님을 난 설득하지 못했다. 이 조차 핑계지만. 결국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기를 놓쳤다.


20대 중반 역시 경제적,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그러나 난 유럽을 가지 못했다. 편입 이후 학과 전공을 살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과 지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했던 결정이기에 남들보다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내 결정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줘야 했기 때문에. 결국 언제 취업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행을 맘 편히 떠날 수 없었고 이 시기마저 취업준비생이라는 핑계로 유럽을 가지 못했다.


20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면서, 유럽 여행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다니며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시간과 심적 여유가 있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일에 치여 살면서 유럽은커녕 가까운 곳의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사치였다.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치는 일을 하지 않는 날, 사랑하는 이 혹은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하루 이상을 나를 위해 온전히 투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생활에, 사회에 찌들어가던 나에게 유럽을 떠나는 친구의 이야기는 불씨가 됐고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친구의 여행 소식은 용기가 돼 줬다. 그때 문득 과거 패기 넘치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 나도 20대가 가기 전에 유럽을 가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지"


결국 내가 늦었다고 생각했던 28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저질렀다.


"부모님, 저 이제는 유럽 가보려고요. 혼자"


20대 초반 세상 물정 모를 때와는 다른 나이기에, 사회생활을 해보고 떠나는 여행은 덜 위험할 것이라는 어머니의 지지 속에 2016년 6월 30일 파리행 티켓을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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