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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뇽쌤 Oct 07. 2023

기억에 남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어


운 좋게도 직업적으로 '교사'가 잘 맞는 편인 나는 의외로 별생각 없이 교대에 들어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교대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앞으로 초등 교사로 살겠습니다!'라는 의지의 표방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교대 들어오면 술자리에서 다들 야, 이거 너무 진부하다~~ 하면서도 꼭 묻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교대 왜 들어왔어?(≒너 왜 선생님 되려고 하냐?)

그러면 나는 솔직하지만 한심하게도 "아빠가 가라고 해서 왔다."라는 대답을 하곤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잘 살고 싶어 했던 나는 '장사(사업)'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중에서도 멋있어 보였던 해외에서 물건을 떼와서 한국에 팔거나 우리나라 물건을 해외로 파는 것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했던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그리고 약간의 멍한 정신으로 그 당시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아버지가 가라고 하는 대학(교대)에 지원하게 되었었다.



이에 대해서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자기 말 듣기를 잘 했지 않냐며 종종 얘기하시곤 한다. 물론 운이 좋게 잘 맞는 편이고, 운이 좋게 좋은 아이들, 좋은 학부모님, 좋은 동료교사들을 많이 만나서 잘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우습게도 장사에 대한 미련을 벗지 못해서 교대 다니면서 가게 장사를 알아보고 싶어서 일부러 포차나 빈대떡 집에서 서빙 알바를 많이 했었다. 당시에는 술 장사가 제법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사실 돈만 봤을 때는 교대에서 돈을 벌고 싶으면 과외를 여러 번 뛰는 게 훨씬 나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좋았다.



나중에는 철없이 교대 지도 교수님한테 나중에 막걸리 집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가 '공무원이 가족이랑 가게 하면 나중에 경쟁자들한테 신고당하고 고생한다. 일찌감치 꿈을 버리는 것이 좋다.'라는 교수님의 현실 조언도 얻었다. 지금은 장사가 인생을 갈아 넣어야 겨우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며 생각도 안 하고 있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그래서 그럴까, 실제로 임용이 될 때의 내 심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 기억에 남지 않는 교사가 되겠다."였다. 



보통 인생에서 정말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겠지만, 사실상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은 나쁜 기억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대부분 '나쁜 교사'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허황된 꿈 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나쁜 교사만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교직을 시작했다.



그것이 잘 되었는지는 오로지 내가 가르친 아이들만 알겠지만, 지금도 내 교사관의 가장 기본은 여전히 기억에 남지 않을 교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짝꿍은 내 교대 동기로 내가 20살 때부터 만났던 친구인데, "교대 왜 들어왔냐"라는 똑같은 질문에 "GTO의 오니즈카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일관되게 얘기를 하던 친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반항하지 마'라는 제목으로 오니즈카가 아니라 영길이라고 나온다. 나는 만화로 먼저 읽어서 오니즈카라는 이름이 입에 쫙쫙 달라붙는 편이다.



GTO는 'Great Teacher Onizka'의 약자인데, 이 오니즈카가 과거 폭주족 출신이었다는 것도 참 재미있는 점이다(관련된 만화가 상남 2인조다. 일본의 리젠트 머리가 상당히 인상적인...). 



       


불량스러운 아이들 옆에서 항상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어쩌면 친구처럼 함께하는 교사 오니즈카인데, 이런 선생님(응큼한 건 제외하자..)이 되고 싶다고 하니까 그런 점이 신기했었다. 


그리고 잊혀지고 싶다는 나와 달리 '평생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는, 정말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어렸던 우리는 벌써 13년의 세월이 보내서 둘 다 벌써 9년 차의 나름 알거 알만한 교사가 되었다. 어쩌면 나름의 보신 주의에 물들어서 할 수 있는 안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나와는 달리 짝꿍은 자신이 말한 대로의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애들이 수시로 전화하고 카톡 하는데 그거에 전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동기이자 교사인 친구가 옆에서 진짜 애들한테 전화오는 거 보고 놀랬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덧붙이면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짝꿍 개인의 성향인 것이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직장이 분리가 안 되면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말 잘 듣는 아이들보다 말 안 듣고 학교의 꼬마들을 자기가 맡겠다고 2월 반 배정할 때 얘기하고 그 반을 먼저 맡겠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믿지를 못했는데(같이 근무 안 한다고 거짓부렁이냐!),교직생활하면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다. 근데 매년 그렇게 학년의 대표 말썽꾸러기를 데려간다고 한다.
아무도 안 시키는데 자기가 혼자서 여러 종목 스포츠클럽 만들어서 매일 7시 반에 학교 출근하고, 한 학기에 4-5번씩은 꼭 아이들이랑 대회를 나간다. 심지어 교장선생님이 선수시킬 거냐고 말리신다.



옆에서 보면 같은 교사로서 진짜 신기하기도 하지만 같은 교사이자 가족으로서는 걱정이 많이 되는데, "너 그러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조심해."라는 말을 계속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렇게 자기가 어릴 적에 말한 대로, 누가 뭐라고 해도 열심히 교사 일을 하고 있는 짝꿍을 보면, 그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다. 겁도 많고 아직은 능력도 부족하다. 치졸하지만 짝꿍을 옆반 교사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ㅎㅎㅎㅎㅎㅎ



자기는 애들이랑 노는 게 좋다고. 애들이 나이 먹은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으면 그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사는 짝꿍인데, 정말 그 말대로 아이들이 짝꿍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는 때가 되면 그만둘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정말 오래오래 했으면 한다. 좋아하는 일을 만나서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또 만나기가 쉬울까. 



나는 따뜻한 느낌만 가득한 선생님이 되어야지. 아이들의 기억 속에 평생 남겠다는 주제넘은 욕심은 없다. 교사로서 앞뒤는 잘 가리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 꼬마까지 셋이 있는데, 엄마 아빠가 둘 다 앞뒤를 안 가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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