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은 내 친구다.
어쩌다 보니 경과 대학에서 만나서
얼레벌레 13년 지기가 되었다.
경은 운동신경이 신기할 정도로 좋은 애였다.
배구면 배구.
탁구면 탁구.
당구면 당구.
심지어 다트까지 잘했다.
운동신경과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보드게임이나 게임도 잘했다.
게임이나 스포츠 종목에서는
영 소질도 관심도 없는 나와
눈부신 운동신경으로
활동적인 걸 좋아했던 경은
서로 놀던 무리가 달라서
처음부터 가깝게 지내진 않았다.
그저 설익은 20대에 누구나 겪는
애매한 인연과 상처 많은 손절,
그리고 지나간 사랑과 애정으로
서로가 울퉁불퉁한 20대를 보내는 것을
오히려 멀리서 지켜봤다.
쟤는 좀 괜찮은 앤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경과 나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보았다.
상대방이 조심스럽고
감정적으로 대단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오히려 너무 감정적으로 예민하다 보니
둔감해 보이고 무던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이 혹시나 불편감을 가질까 봐
괜찮아, 너 하고 싶은 걸로 하자,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와의 만남 끝에
혹시나 그 사람에게
무심코 상처 준 것은 없는지,
실수한 것은 없었는지,
홀로 서서 살펴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경과 나는 서로가 그런 부류라는 걸 알아차렸다.
어느 날 잘 만나서 놀고
돌아가는 길에 경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까 그렇게 말했던 건 좀 미안하다고.
혹시나 오해할까 봐 연락을 남겨둔다고.
우리가 이런 사소한 오해도 허용이 안 되는 사이냐?
이 바보, 혹시나 서운했어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잊혀질 일이잖아.
다음에 만났을 때는
너에 대한 서운함은 털어낸 먼지처럼
흔적도 없을 거야.
그래도 미안해서 남겨둔다는 경이
참 답답하게도 느껴졌다.
몇 개월 있다가 경과 재미나게 놀고서
내가 돌아가는 길에 경에게 연락을 남겨뒀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연락을 남겨둔다고...
똑같은 내용의 연락을 넣는 나를 알아차리고 나서는
그게 참 우습게 느껴지면서
또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어느 날 내가 경에게 말했다.
"나는 너한테 아무 말이나 해서 좋아."
"나도."
경과 나는 단 두 문장을 나눴지만,
그 마음은 비슷한 색깔을 하고 있었다.
"야, 이사하면 놀러 와."
"나 벌써 집들이 선물 3개 사놨어."
"야, 씨... 뭘 3개나 사놔."
"몰라, 그냥 생각나서 사놨어."
아유.. 이 바보.
이 바보는 속절없이 마음이 기울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