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재료가 계란인 나는
냉면을 먹게 된다면 계란을 가장 마지막에 먹었다.
쫄면이나 라면에 들어간 계란도 마찬가지였다.
먹는 내내 뻘건 국물 속에서
슬쩍슬쩍 보이는 흰 자태의 계란을 보면서
나중에 먹게 될 그 순간을 내심 기대했다.
그리고 면까지 다 먹고 나서야
숟가락으로
계란을 조금씩 잘라서
국물과 함께 떠먹었다.
막상 먹게 된 계란은 맛있긴 했지만,
내가 먹으면서 기대했던 그 맛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계란을 먹게 될 때면
이미 배가 불러서 기대했던 그 맛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보다 식어버린 국물은 덤이었다.
사실 그쯤이면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은 식사를 마쳤을 때라서
원하는 만큼 느긋하게 먹지도 못했다.
아껴 먹는 것은 이뿐 아니었다.
냉장고에서 귤 같은 과일을 보관하다 보면
같은 봉다리 안에 상태가 헤롱헤롱한 것도,
갓 따온 것처럼 신선한 것도 같이 있게 된다.
먹으려고 제일 아래에 있는 과일, 야채 칸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제일 예쁘고 매끈한 것들은 안에 집어넣고
항상 제일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만
골라서 먹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이 과일들을 버리지 않고,
모두 다 먹게 되겠지,라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제일 시들시들하고 쭈글해진 것을
세심하게 고르고 골라
먼저 먹어 버렸다.
그런데 결국엔
매끈매끈하게 상태 좋은 과일을
먹어볼 수가 없었다.
다음에 먹게 되겠지, 싶었지만
그 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내가 먹고 있는 것들은
온통 쭈글해지고 퍽퍽해진 과일이었다.
처음 사 왔을 때 반짝이며 윤기났던 과일들은
어느새 곯아버려서 처분하는 게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의문이 드는 것이다.
도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아꼈다가 먹었나?
다음에 먹어야지,
이따가 먹어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 '다음'이나 '이따가'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하기 싫은 일,
고통스러운 일, 어려운 일을
먼저 하는 것을 추구하는 편인데,
음식에서만큼은 예외인 것 같다.
먹는 것만큼은 주어진 상황에서
제일 좋은 것들을 먼저 먹는 게 좋은 것 같다.
음식들은
그 순간에 반짝이는 것이고
시간이 다르게 시들어간다.
이건 나를 위해서
제일 좋은 재료, 제일 맛있는 음식부터
먹자고 하는 약속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