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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지 Nov 29. 2020

뭐 해먹고 살지?

오늘은 뭘 먹을까

'뭐 해먹고 살지?'라고 하면 대체로 앞으로의 진로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을 기대하실 수 있을 텐데요. 이 글은 말 그대로 뭐 해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살기 위해 먹든, 먹기 위해 살든,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지요. 그렇기에 그게 1인 가구이든, 2인 가구이든, 식사 메뉴에 대한 고민은 가구 수에 상관없이 따라오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독립 초반, 책상도 그릇도 뭣도 없을 때 일주일 내내 집 앞 분식집에서 포장해온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밥 위에 올라가는 계란프라이 하나도 포장 용기에 따로 담겨져 나왔는데요, 넘쳐나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는 시대인지라 먹고 난 후에는 항상 죄책감이 따라왔습니다. 


이후 살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본격적으로 장을 보러 다녔습니다. 독립 전에는 부라타 치즈를 얹은 샐러드와 예쁜 접시에 담긴 토마토 파스타를 하루 한 끼로 먹는 일상을 예상했지만 정작 독립 후에 먹고 싶은 건 갓 지은 밥 한 끼와 따뜻한 국물이었습니다. 평소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라면이나 시판 소스로 만든 파스타가 전부였기에 장을 봐도 뭘 사야 할지 몰랐습니다. 레시피를 검색해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대충 파악은 했으나 1인 가구가 먹기에는 마트에서 파는 식재료의 포장 단위가 꽤 컸습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소량 포장 제품이 대세라는 기사를 분명 본 것 같은데 아직까진 4인 가구의 양에 더 맞춰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차선책으로 시판용 찌개 소스를 구입했습니다. 파스타만 소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찌개도 소스가 잘 나와있더라구요. 이미 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소스와 재료만 넣으면 따끈한 국물요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순두부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로 소스가 좀 한정적이긴 했습니다. 특히 부대나 된장찌개는 들어갈 재료의 개수가 많기 때문에 저는 재료 하나(순두부)만 준비하면 되는 순두부찌개로 소스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양파가 주는 달큰함 만큼은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 양파 한 망도 함께 구입했습니다. 한 망에 7개가 들어있었는데 몇 주 전에 구입했음에도 아직까지 5개가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소량 포장된 깐 양파를 사자니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쌌습니다. 거의 한 망과 비등한 가격이었어요. 



손수 차린 밥 한 끼에 영혼이 충만해졌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제 자신을 먹이기 위한 식사를 차렸습니다. 밥하랴, 반찬 구우랴, 찌개 끓이랴,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된 것 같습니다. 퇴근길에 포장해가면 10분 컷으로 끝나는 과정인지라 요리하면서도 계속 고민했습니다.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찌개를 한 입 먹었습니다. 제 고민은 바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몇 주 만에 먹은 집 밥이라 그런 거라고 하기엔 차원이 달랐어요. 이게 뭔가 싶어 다시 한번 국물을 떠먹고 갓 지은 밥도 한 입 먹었습니다. 먹고 나서 '와..'라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영혼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맛의 차원이 아닌 감정의 차원이었습니다. 기분이 요상했습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정말 요상했어요. 완벽한 표현은 아니지만 보살핌을 받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부모님에게서 받는 보살핌과는 결이 좀 달랐어요.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 느낌,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의 스펙트럼이었습니다. 참으로 오묘했어요


요즘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시류를 타게 되어 밥을 차려 먹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야근으로 인해 밖에서 사 먹는 일이 많기도 하고, 첫 식사의 영향으로 순두부찌개를 너무 많이 해먹어 요즘엔 두부와 살짝 거리를 두고 있거든요. 하지만 주말 하루 한 끼만큼은 직접 밥을 해먹고 있습니다. 내가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에요. 요즘엔 오뚜기 즉석 카레를 즐겨 먹고 있는데요, 계란프라이와 소시지 몇 알을 구워서 카레밥과 함께 먹으면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뭐 해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카레도 이제 곧 휴식기를 둬야 할 것 같거든요. 혹시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괜찮은 한 끼가 있을까요?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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