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웠던 그날 밤
일요일 저녁 10시, 슬슬 한 주를 마무리할 시간. 갑자기 천장에서 드르륵, 드르륵 무언가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집에 오고 나서 특별히 층간 소음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이번 소음도 역시 잠깐 나는 소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1시를 지나 12시가 되었습니다. 자정이 다 되었는데도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위층에서 청소를 하나? 빨래를 돌리나? 홈트를 하나? 12시 30분쯤 되었을 때 잠깐 소리가 멈췄습니다.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사람도 잠은 잘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젠 끝났겠거니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제 신경은 천장을 향해 곤두서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 다시 소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4시간 동안 계속되는 소음에 참다 참다 못견디겠어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타인의 소리가 내게도 들린다면, 내 목소리가 타인에게도 들릴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윗집, 시끄러워요!!!"라고 목청껏 소리 질렀습니다. (옆집에게는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날 3시까지 뒤척이다가 졸음에 못 이겨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 건물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습니다. 쿵쿵 거리는 발자국 소리, 아저씨들의 커다란 목소리. 그날은 마침 제가 연차를 낸 날이었습니다. 직장인에게 연차라고 하면 알람에 의해 수동적으로 일어나는 게 아닌,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루를 시작하는 특별한 하루인데요. 하필 누군가의 소음으로 하루를 시작했기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연차의 늦잠을 포기하고 커피를 사러 문밖을 나섰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래층의 어느 집 문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 바로 윗집에서 들리는 소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해당 집의 소음과 진동이 벽을 타고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아랫집이 아니라, 아래 옆집이었습니다.
저는 이 집이 방음이 잘 되는 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가끔가다 의자 끄는 소리, 이웃집 아기의 자지러질듯한 울음소리 같은 생활 소음이 들리긴 했지만 밤이 되면 잠잠해졌거든요.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난 후, 제가 살고 있는 건물이 위,아래 구분 없이 소리가 잘 들리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은 건물 덕분이 아닌, 소음 빌런이 아니었던 이웃 덕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층간 소음으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제 친구는 옆집에서 지속적으로 내는 소음에 괴로움을 호소했고, 그럼에도 소음이 멈추지 않아 망치로 벽을 두드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예 망치를 베개 옆에 두고 생활했다고 해요. 오래전 일이지만 저희 집도 시도 때도 없이 뛰어다니는 윗집 아이의 발망치로 인해 부모님이 위층 부부와 크게 싸우신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안하무인 한 태도에 천장을 막대기로 두드리다가 천장에 구멍까지 난 적이 있었어요. 거의 25년 전 일이라 그때는 우퍼스피커란 것도 없었거든요.
해당 집이 이사를 가면서 늦은 밤의 층간 소음은 단 하루로 끝이 났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었지만 모든 신경과 정신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소음에 쏠려있다는 것은 그게 밤이 됐든, 낮이 됐든. 일주일이 됐든, 일 년이 됐든, 시간과 상관없이 타인의 삶을 망치는 행위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내는 소리가 혹여나 타인에게 피해가 되진 않을까 더욱 조심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혼자 사는 1인 가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타인과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었네요. 저는 함께 사는 1인 가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