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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진지 Dec 19. 2022

우산 쓰고 달렸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

지금은 저녁 7시.

일기예보를 보니 10시쯤 돼야 비가 그친다고 한다. 3시간의 여백을 어떻게 채울까 잠시 생각하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재택근무로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기 때문에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환기가 무조건 필요했다.


현재 기온 -5도.

"-8도에서도 뛰었는데.. -5도면 따뜻하다 따뜻해!"라고 육성으로 내뱉으며 굼뜬 몸을 재촉했다. 무릎 보호대를 차고, 바지를 갈아입고, 추위를 극도로 타는 상체를 위해 얇은 옷 여러 겹을 챙겨 입었다. 경량패딩 위에 다시 경량조끼, 마무리로 플리스를 걸치니 살짝 으슬으슬 하긴 했으나 견딜만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 정도 세팅이 적당하다.


밖으로 나와 비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휘몰아치는 비는 아니었고, 우산이 뒤집어질 만큼의 강풍도 불지 않았기에 이미 2개 정도의 살대가 고장 난 나의 3단 우산도 충분히 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트랙에는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처럼 우산을 쓰거나 모자를 쓰고 묵묵히 자기만의 루틴을 하는 행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날씨에도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 동기는 무엇인지 각자의 사연이 궁금했다.

그날의 시야

역시 나오길 잘했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5k를 인터벌로 달린다. 이 루틴으로 2년간 달려왔는데 우산 들고뛰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컨디션은 의외로 괜찮았다. 두툼한 장갑 덕분에 손이 시리지도 않았고, 우산을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들으니 앞뒤로 휘젓는 팔의 밸런스도 잘 유지되었다. 무릎은 소모품이기 때문에 조깅 수준으로 달리는데, 덕분에 우산이 뒤집어지고 휘청거리는 일도 없었다. (달릴 때 무릎이 아프다면 강도를 조절하거나 휴식을 취하자!)


달리기는 나에게 해방감을 준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며 의지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어떤 의지나 목표가 있어서 달리는 건 아니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달리는 이유는, 좀처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숨이 벅차면 잠시 멈추고, 컨디션이 좋아 더 달릴 수 있으면 더 달리고. 모든 행위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그리고 가끔씩 오는 러너스 하이의 도파민까지, 극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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