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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제목: 7시간     

#1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은 늘 이렇게 아름다웠던 것인가. 10월의 냄새는 이렇게 고소했던 것인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7시간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피곤했던 것뿐이었다. 출산 후 누구나 겪었을 피곤함을 경험하는 것뿐이었고 잠이 부족하고 움직임이 많으니 여기저기 삭신이 쑤시는 것뿐이었다. 

나는 15년 차 초등학교 교사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라 아이들을 돌보며 지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육아휴직을 쓰는 동료가 반 정도 되고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 때 쓰는 사람이 반 정도 된다. 육아휴직을 못 쓰는 엄마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기사를 통해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경단녀가 되어버린 주변 엄마들을 볼 때마다 선택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에 이기적인 감사함 같은 것을 느꼈다. 

난 어릴 때 친정엄마의 손을 빌려 신세를 졌고 아이들 유치원 때 시어머님의 손을 빌려 신세를 졌다. “이제는 제가 봐야죠. 죄송하게 어떻게 더 부탁을 해요. 어머님.” 말은 했지만 아이들의 입학에 맞게 육아휴직을 쓰고 싶었으므로 이건 어머님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와 아이를 위한 결정임이 분명했다. 이제야 비로소 내 차례가 왔지만 치밀하게 계획적인 결정이었고 나는 체계적으로 엄마노릇을 하고 싶었다. 

아이 둘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나를 낳고 내 손으로 온전히 기르지도 못하는 처지에 하나를 더 낳는다는 것은 소설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주변에는 아이를 둘 낳은 집도, 심지어 셋, 넷 낳은 집도 생각보다 많은 게 신기했다. ‘어떻게 돌볼 수 있지? 가능한가..’

정신없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뛰어가면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나를 봤다. 우리 엄마가 서아를 낳은 진짜 엄마 같았다. “우리 딸~ 오래 기다렸지. 엄마 왔어~” 아이를 받아 안으면 엄마는 저녁을 준비했다. “가서 언제 차려 먹어, 대충 먹고 가서 서아랑 놀아줘.”

대충 차린다는 음식은 매일 푸짐했고 미안해하면서도 엄마의 밥을 날름 맛있게도 먹었다. 그리고 서아를 데리고 왔다. 저녁목욕까지 엄마가 다 해주셨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유식을 점검하거나 아이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내어주며 놀아주는 것뿐이었다. 그러고는 서아와 함께하는 2시간을 그렇게나 피곤해했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님도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서아를 돌봐주셨다. 한 달에 돈 몇 푼을 쥐어드리면 그 돈으로 반찬이며 건강보조식품을 사서 다시 내어주셨고 서아를 위한 좋은 옷, 좋은 음식들로 그 몇 푼은 다시 내 딸의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여보, 나 일 확 그만둬버릴까?”

엄마가 밑반찬으로 만들어주신 반찬 뚜껑을 열어 진미채 한 가닥을 집어 질겅거리며 남편에게 말을 했다.

“뜬금없이 왜? 뭔 일 있어?”

“아니 그냥.. 어릴 때 애착형성이 중요하다는데 너무 떨어져서 지내는 것 같기도 하고...”

“방학 길잖아. 못해준 것 그때 몰아서 해주면 되지. 아깝지 않겠어?”

사실 뜬금없는 생각이란 자체가 모순이었고, 방학이 길다고 못해준 시간을 온전히 채워 수 없다는 걸 그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서아를 위해서는 더 좋을 것이며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때론 투덜거렸을 엄마에게도 효도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사실 그도 알고 있다. 둘이 벌어야 대출받은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말을 내뱉지 못한  남편의 마음이 훤히 보여 나도 그냥 진미채를 꿀꺽 삼켜버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선택에는 가치보다 현실이 먼저 반영된다. 아무리 내가 지향하는 삶이 있더라도 현실이 개입되는 순간 선택은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니까. 사실 선생님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으로 10년 넘게 일을 지속할지도 몰랐다. 늘 나랑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했었으니까. 그런데 난 여전히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작게나마 주어진 선생님으로서의 지위를 만끽하며, 엄마와 어머님의 응원을 받아가며, 일하는 여자라는 합리화를 해가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

이렇듯 인생은 알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하다. 엄마가 키우지 않으면 애착이 불안정한다고 너도나도 눈총을 줬지만 우리 서아는 건강하게 잘 자라났다. 분리불안 하나 없이, 몸과 마음 어느 한 곳 곯지 않고 자라났다. 많은 조력자들의 사랑을 온전히 받으며 7년이란 시간을 견뎌낸 것이다. 이제는 서아를 내가 돌보겠다고 말한 이유는 내가 학교에 있어서 학교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서라기보다 학교라는 공간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학교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아 선택하게 된 현실이 반영된 결정이다. 

연달아 담임을 맡으면서 알게 모르게 아이들의 상황을 눈여겨보게 됐다. 드러내려 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아이들의 행동과 학교생활. 그 안에는 가족의 관심부재가 늘 버티고 서있었고 부모의 바쁨이 드러났다. 아이는 혼자의 힘으로 꿋꿋하게 이겨내야만 한다. 부모님이 학교에서의 상황을 다 알 수는 없을 테니. 그래서 부모는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를 믿으며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고 아이는 체념과 독립심을 터득해 가며 나름의 방식으로 나아간다. 준비물이며 교우관계 등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것이 갑절은 더 많게 느껴지는 이유도 수업 후 오랜 시간 유인물을 만들고 주간학습계획표를 조정하며 현실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아이 혼자 모든 것을 챙기기는 버거울 것이고 엄마와 어머님이 모든 것을 안고 가기에는 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냈던 것이다. 엄마들과의 소소한 모임을 매일 참여할 의사는 없었지만 학급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면 가끔이라도 모임에 참여해서 얼굴을 비추는 게 도리 같았고 그 모임에 엄마와 어머님을 떠미는 건 못할 짓 같았다. 그렇다고 꿋꿋하게 눈 닫고 입 닫고 귀 닫고 줏대 있게 나아가지도 못할 나였고.. 참 어려운 것은,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만으로도 가능하던 관계의 폭이 넓고 복잡해진다는 거였다. 엄마와 아이, 아이의 친구들, 그들의 엄마들과도 연결된 이 복잡하고 끈끈한 관계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탄탄한 관계가 되고 때론 쉽게 풀어지지 않아 덩어리 지는 실타래 같은 관계가 되기도 했다. 담임이라는 위치에서, 철저하게 제삼자로서 상담을 통해, 엄마들의 개인적인 하소연 통화로 이런 분위기를 전해 들었었지만 이제 당사자는 나다. 제삼자가 아니란 의미다. 나는 어떤 위치에서 엄마의 노릇을 유지해야 할 것인가.. 육아 휴직 전 많은 고민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잘하고 싶었다. 

서아는 입학을 했고 나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침밥 먹이고, 등교시키고 하원시켰다. 계획표를 보고 꼼꼼히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고단했다. 아침밥을 먹이는 것은 늘 마음조급해지는 일이었다. 왜 엄마들이 아이가 교문으로 들어가는 순간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지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입학과 동시에 1학년 엄마들의 반모임이 큰 행사처럼 진행됐고 그곳에 속할 수 있어 마음이 그냥 든든했다. 엄마들과의 관계는 가족의 사소한 일상부터 교육관, 학원, 먹이는 음식이며 내복 브랜드까지 다채로웠다. 배불리 먹지만 나올 때는 꼭 뭔가 더부룩한 뷔페 같은 느낌. 정확한 주제가 없어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만 깊이 있는 대화가 될 리 만무했고 아이들의 교육이야기로 주제가 전환되면 다들 정글 속 우두머리를 정하기라도 하는 듯 입을 쉴 새 없이 으르렁 거렸다. 모든 내가 직접 가르치고 싶던 마음이 슬금슬금 불안해지는 것도 싫었고 나는 할 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불편했다. 그래서 듣기만 했고, 그래서 귀가 아팠다. 

서아는 본인이 좋다고 하는 학원을 몇 개 등록했다. 미술은 창의성을 위해, 피아노는 누구나 시작하는 타이밍이 이때라고 하니까, 운동 하나도 해야 한다고 하니 수영도 시작했다. 학원 3개와 국어, 수학 학습지를 하니 일주일이 빠듯했다. 결국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기대 이하였다. 서아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을 즐거워했고 나도 그 시간 나만의 짬이 생겨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종일 아이를 돌보며 어디 한 군데 보내지 않던 엄마와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고 야야~~ 서아가 8살밖에 안 됐는데 뭔 학원을 이리 많이 보내는고. 우리 서아 힘들게.”

“엄마 모르는 소리 마. 이렇게 해도 많이 하는 거 아니라니까? 하는 애들은 티가 나. 다 하는데 서아만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 거야. 난 그거 감당 못해.”

“육아휴직 한다더만 학원 보낼 라고 육아휴직 했고만 이것이”

무조건 품으라고, 많이 안아주고 아직도 아가인 것처럼 해줘도 되는 거라고 엄마는 늘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알면서도, 그렇게 다짐했지만 서아를 보면 불안함이 먼저 엄습했다.

혼자 굳건하게 해낼 수 있을 만큼은 만들어놔야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도 덜 불안할 것 같았다. 8살 정도 됐으니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내 딸이니 엄마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주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늘 아침을 차려주고 간식을 내어주고 저녁을 함께 먹으니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서아는 담담하게 1년을 보냈다. 난 육아휴직을 1년 연장했다. 2학년도 해줄 것이 아직 많은 나이라 생각했으므로. 서아는 2학년도 씩씩하게 시작했다. 난 가끔 엄마들과 또는 엄마와 차 한 잔을 마시며 오전시간을 여유롭게 보냈고 아이가 잠든 시간 화장을 하고 젖은 머리를 털어가며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행복했다. 그러다가도 아이와 실랑이라도 하는 날이면 엄포라도 하듯 “엄마 이제 일 다시 해야겠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이건 그때마다 진실이었다.

일 할 때는 그렇게 집에서 쉬고 싶다가 막상 쉬니 학교에 있던 그 시간이 그립기도 했던 것이다. 딱 그 일만 생각하면 됐던 나만의 독립적인 시간. 

“ 승미야, 너 건강검진 꾸준히 받아. 너 빈혈도 그거 조심해야 하는 거고.”

“ 빈혈 많이 좋아졌어. 괜찮아 컨디션도 좋고.”

“ 아이 낳으면 몸 안에 진이 다 빠져 버리는 거야. 지금은 잘 안 보여 야금야금 갉혀먹다가 어느 순간 빵 터져서 손도 못 쓰는 거지. 더 나이 들기 전에 몸 관리하고 쉴 때 운동도 하고 좋은 것 챙겨 먹고 체력 좀 길러놔. 뼈도 이리 얇아서 늙으면 얼마나 고생하는 데 미리 관리하라고.”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나만 보면 그렇게 건강타령을 한다. 동창 딸이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면서 우연히 몸에 종양이 발견됐단다. 다리에 금이 가서 몇 주 입원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가 얼결에 항암치료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렇게 나를 볶아대는 거다.

“엄마 괜찮아 엄마 딸! 좋은 거 많이 챙겨 먹으니까 걱정을 마셔요.”

“건강검진은 꼭 받아봐 신 서방이랑.”

“알았어. 엄마 서아 어제 수학시험 100점 맞았더라? 그 학원 좋긴 좋나 봐.”

“100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험점수 가지고 호들갑 떨면서 칭찬하고 애 잡고 그러기만 해 봐 우리 서아한테.”

엄마는 흔들리는 나를 주기적으로 바로 세워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서아 엄마로 온전히 바로 서있을 수 있게 때론 욕을 하고 때론 격려해 주며 그렇게 나를 진짜엄마로 세워주는 사람..

# 3

요새 서아 태도가 부쩍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말할 때 대꾸하는 태도나, 다른 사람이 있을 때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외에도 자주 나와 부딪히게 된다. 사춘기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나이, 9살이고 버릇이 없다고 하기 에는 애매하지만 결국 혼이 나는 상황. 

서아는 그런 나를 향해 한마디 내뱉었다. 

“ 엄만 꼭 필요 없는 것들만 잔소리하더라?”

난 켤코 필요 없는 것들을 말하지 않았기에 그날도 어김없이 목소리를 크게 냈고 결국 서아는 눈물을 쏙 뺐다. 아이를 혼내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잠도 잘 안 왔었겠지. 뜨거운 거라도 한 잔 마셔야지 하는 마음에 밤에는 잘 안 먹는 커피 한잔을 타서 홀짝거렸다. 기름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물을 뜨겁게 데워서 먹고는 ‘지방은 다 내려갔을 거야 이제.’ 생각하던 것과 비슷하다. ‘커피 한잔 뜨겁게 먹고 나면 이 답답한 마음도 가라앉을 거야...’ 

학교에서도 잘 안 먹던 믹스커피를 집에서 마시게 된다. 분명 커피 같지 않지만 오묘하게 중독성 있는 그것 때문에 네 뱃살도 늘어가는 거라고 엄마한테 늘 한소리 듣지만 나도 꿋꿋이 믹스커피를 탄다.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고집은... 말도 디지게 안 들어.” 

난 서아 같은 딸인 것이다. 

그날 커피 때문인지 속이 더부룩했다.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부탁해 소화제를 부탁했고 남편은 밥 먹고 아이 혼내다가 체했나 보다고 남 일처럼 말했다. 서아에 대한 걱정을 말하거나 하루일상을 이야기하면 늘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줬지만 이건 제삼자의 표정과 대꾸였다. 

다음날 엄마들과 차 한 잔을 마시다 보면 이 집 저 집이 다 비슷한 것 같아 이 슬픈 현실에 위로받으며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아 속이 너무 안 좋다.”

“백초 한 번 더 먹어보든지.” 

백초는 서아를 위해 구비해 둔 상비약이다. 소화가 안 되거나 변이 묽을 때 먹이던 약. 남편의 한 마디에 백초를 10ml를 더 먹고 잠이 들었다. 

“승미야 너 둘째 들어선 건 아니니? 얼굴이 요새 좀 푸석하다?? 엄마가 너무 오지랖인가? 호호” 

엄마는 엄마 삶의 지분 100중에, 70퍼센트 넘게 나와 서아에게 할애하고 있는 분 같았다. 

“응 오지랖이셔 엄마, 둘째는 무슨 지금 하나도 허걱 거리는데. 나이차이가 몇 살이야.. 서아랑 너무 차이 나는 것도 안 좋아 서로한테.”

“그래 애 더 낳지 말고 너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좀 편하게 살아. 지금 낳으면 고되다. 나도 고되고~”

“크크 엄마도 참~ 걱정 마셔.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리고 난 눈치 없이 둘째를 임신했다. 엄마가 귀신같았다. 얼굴만 보고 어떻게 그 중대사 한 일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일까. 둘째는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입덧과 서아를 동시에 전담하며 몸은 녹초가 됐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늙어서 생명을 잉태한 나를 향한 도움의 손길들, 말 한마디, 배려와 따뜻한 마음들.. 든든한 실타래 속 관계들이었다. 

첫째와는 다르게 입덧을 했고 오랜만에 다시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며 신혼놀이를 했고 남편과 대화가 더 잦아졌고 서아는 엄마의 배를 매만져줬다. 너무나 완벽해서 살짝만 건드려도 실금이 쫘자작- 가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기분이 들었고 그때마다 난 온 우주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한 마음에 취해 불안함을 잊을 수 있었다. 그날은 입덧이 심해 병원에서 수액이라도 맞아야 할 것 같았다. 먹는 족족 게워내니 뱃속 아기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겨내야 한다. 아이를 잉태한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잘 먹고 푹 쉬고 행복하게 영양분을 탯줄로 전해주는 것뿐이다. 그 모성애를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링거 주사를 꽂으며 의사가 한 마디 건넨다. 

“ 한숨 푹 주무시게 좋은 영양제 더 넣어드렸어요. 나이 차 많이 나게 임신하실 때는 각별히 더 조심하셔야 해요. 우리 몸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답니다. 한잠 푹 주무세요.”

마법같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서아와 달리기를 했다. 몸이 무거워 걸음이 느려진 나는 꿈속에서 내달렸다. 남편과는 바다수영을 했다. 

“바다수영은 섹시한 매력이 있어. 승미야 그렇지?” 

연애 때 남편이 말하던 음성이 바다 배경에 깔렸다. 남편이 보이면 서아가 사라졌고 서아가 보이면 남편이 사라졌다. 그때마다 나는 온전한 승미로 엄마였다가 연애 중인 여인이 되었다. 엄마가 멀리서 손짓을 했다.

“ 승미야 어서 와라. 밥 묵자.”

조금 더 있고 싶어서 엄마의 손짓을 못 본척하고 바다수영을 했다. 바닷속 넘실대는 해초들이 내 발에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때마다 몸을 바짝 세우는 나를 그는 귀여워했다. 

엄마가 서있었던 자리를 보니 아빠와 엄마가 함께 서서 우리를 보고 웃고 있다. 

‘수영을 끝내고 오늘은 그와 함께 부모님에게 가야지..’ 생각했다. 갑자기 온몸에 쥐가 난 것 같았다. 몸이 뻣뻣하고 어지러웠다. 차가운 물속에 너무 오래 있었나 싶어 해변가로 나와 잠시 앉아 쉬었다. 그리고 난 정신을 잃었다.(잃었었나 보다)      

#4

눈을 뜨니 난 빨고 빨아 글씨가 거의 지워져 흐릿하게 보이는 어느 병원 복을 입고 누워있었다. 링거를 맞고 있었다. 

“모르셨나요... 많이 어지러웠을 텐데.. 괜찮았어요?”

나는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것 같았다.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미각과 촉각이 따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옆에서 울고 계셨다. 기쁨의 눈물은 분명 아니었기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애썼다. 

“우리 승미가 무슨.... 왜... 말도 안 돼요.... 어찌...”

내 발이 절단이라도 된 것일까 발가락을 움직이니 움직여진다. 양 손도 있다. 무슨 일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눈알을 왼쪽으로 돌리니 그가 서있다. 그는 서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난 분명 그와 달콤한 바다수영을 하고 있었고 서아는 다른 화면 속 내 아이였는데.. 이건 뭔가 뒤 섞인 기분이었다. ‘꿈일까.. 현실일까...’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서아는 그의 손 위에 작은 손을 올렸다. 

“ 엄마 빨리 일어나.” 

서아를 향해 웃어주었다. 안심시켜야 한다, 이 작은 아이를..

“ 7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7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지껄였다. 미친놈이 분명하다며 실소했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오열했다. 나는 멀쩡했기에 이건 꿈이라고 확신했다. 정신없이 오가며 내 상태를 체크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의학용어와 약물로 나를 정상궤도로 복귀시켰다. 정신이 좀 돌아왔나 보다. 이제야 말이 나온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나는 뒤섞인 영상의 시간차를 애써 파악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가족, 그러니까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의 남편과 서아와 함께 병원 문을 나왔다. 바다수영을 한 여름에서 지금의 쌀쌀한 가을로 시간여행이라도 한 것 일가. 깊게 파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두려웠다. 엄마는 간단한 식사를 차린다며 또 푸짐한 한 상을 차리기 위해 집으로 향했고 아빠는 뭐라도 하는 게 몸과 정신에 좋다며 일을 하러 나갔다. 남편은 오늘은 말하고 빨리 들어온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로 향했다. 나는 서아와 남겨졌다. 서아는 학교를 가지 않았다. 엄마랑 손잡고 하루 종일 있을 거라고 작은 입을 오물거렸다. 나는 병원베드에서 흘려들었던 7시간을 돼 내이며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한 시간 남짓 남은 오전을 누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서아 손을 잡고 가을 오전에 가장 어울릴 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서아가 좋아하는 따뜻한 코코아를 사고 서아가 겨울에 할 예쁜 목도리하나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씩 손에 들고 걸었다. 서아가 가보고 싶다던 동네 옷가게를 구경했다. 깔깔거렸다. 서아의 큰 앞니가 반짝 눈에 들어온다. 내 아기는 앞니가 빠졌을 때 입에 구멍 두 개가 크게 났다며 혀를 자꾸 내밀었었다. 나는 서아에게 목도리를 해주면서 계절을 앞서가는 게 패션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한다고 서아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다 그렇게 할 때 서아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돼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그냥 웃는다 우리 서아가.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는 바람 같은 것이었나... 점심이다. 끼니를 채워가며 삶을 이어갔을 우리지만 남은 6시간은 밥을 먹기에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 엄마, 집에 가면 된장찌개 끓여줘. 난 엄마가 된장찌개 끓일 때 넣어주는 얇은 호박이 좋아.”

나는 서아를 위해 된장찌개를 끓였다. 호박은 얇게 썰었다. 후후 거리는 서아를 보니 나도 갑자기 입맛이 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매콤한 닭볶음탕과 미역줄기를 해서 식탁에 올려놨다. 닭볶음탕과 된장찌개, 미역줄기에 김치 하나를 올리니 진수성찬같이 느껴졌다. 

입이 까끌까끌하다. 이 맛있는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사실이 가장 성질났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고 싶지만 택도 없는 시간에 속수무책이던 나는 가족과 앉아 일상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서아는 작은 상을 펴고 그림을 그렸고 나는 익숙한 집 소파에 앉아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안았다. 햇빛이 보이지 않는 내 몸 독소들을 모조리 소독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현관을 봤더니 남편이 들어온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고 한 손에는 내가 예전부터 사달라고 조른 향 좋은 향수를 사가지고 왔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반차까지 쓰고 왜 이 시간에 집에 왔냐고 했더니 담담하게 말한다. 

“ 그냥.”

엄마로서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알려줄 게 너무나도 많았다. 서아에게 일러줄 것들.. 남편에게 전해줄 말들,, 엄마 아빠에게 해야 할 말..

“오빠 서아가 조금 더 크면 가슴도 나오고 초경도 할 거야. 그때는 진짜 같이 축하파티 해주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속옷 사 줄 거야 난.”

남편이 알아듣길 바라며 하고 싶은 말, 해야만 했던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매일이었던 일상이 그 모든 말이었다. 이 많은 것들이 다 전해질 수 있을까.. 불안했다. ‘꼭 전해져야만 하는데..’ 가장 바쁘게 돌아가지만 각자의 영역이 가장 확연하게 보이는 시간, 오후시간은 이렇게 내 영역을 쏟아내는 시간이 되었다. 내 영역과 시간이 온전하게 돌아가게끔 애써야 하는 시간. 손을 잡고 얼굴을 바라보았다. 농담을 하고 웃었다. 추우면 문을 닫고 잠깐 환기를 하기  위해 그 문을 다시 열었다. 서아의 침대를 정리하고 우리들의 침실도 정돈했다. 집안에 떨어져 있는 긴 머리카락들을 쓸어 모으고 또다시 소복해진 집안 먼지들을 한 번 쓰윽 닦았다. 몸이 개운하다. 어디 하나 아픈 사람 같지 않은 상쾌함이다. 

“뭘 했다고 벌서 5시야?”

입을 툴툴거리고 말했더니 왜 한 게 없냐고 남편이 씩 웃는다. ‘2시간이 남았다고 나에게...?’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중요한 일들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현실참작이었으리라. 나는 그들의 얼굴을 내 눈에 깊이 박기 위해 보고 또 봤다. 그들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듣고 또 들었다. 그들의 향을 간직하고 싶어 그들과 가까이 앉아 손을 잡고 매만지고 그들의 체취를 맡았다. 주방의 냄새, 안방의 냄새, 서아가 자는 방의 사랑스러운 향.. 남편의 체취, 엄마의 향, 내 딸 서아의 언니도 아가도 아닌 냄새...

이렇게나 시간에 무기력한 인간인 걸 난 뭘 위해 하루 24시간을 아등바등 살아왔던 것인가..

남은 이 시간 동안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은 평소에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난 그 중요함을 못 본척하고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되돌리고 싶다.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놓치고 지나간 그 보석 같은 시간을 다 껴안고 싶다. 이 시간 가장 중요한 건 학원도 공부도 집안청소도 아니었다. 그냥 그 사람들이었다. 내 사람들.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할 가을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의무 같았다. 난 그 가을의 아침, 점심, 저녁을 누린 사람인 것이라고 스스로 토닥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가정을 꾸렸고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 속에서 행복하게 살다 간 사람이라고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끝까지 울지 않을 것이다. 

담담하게 말할 것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 난 강하고 담담하게 모습을 남길 것이다. 

“엄마 사랑해.”

“승미야 사랑해.”

“내 딸 사랑한다.”

모두 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나도 그들에게 울지 않고 사랑을 고백해야겠다.


#5

“주삿바늘 빼겠습니다.”

눈을 뜨니 베개가 눈물로 다 젖어있다. 꿈을 꿨나 보다. 시계를 확인하니 7시가 아니라 오전 11시다. 다행이다. 7시간은 아직 멀게 느껴졌고 내 배는 여전히 부풀어져 있으니.

문자에는 오늘 야근이라는 남편의 일상적인 문자가 남겨져있고 아이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으니. 

“ 밥 챙겨라.” 엄마 아빠의 잔소리 메시지가 두통이나 와있으니. 

갑자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푸근한 간호사는 등을 쓸어내려주며 눈물이 나올 때는 실컷 울어야 아이에게도 좋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준다. 아이를 낳아본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이자 격려. 그래서 난 울었다. 그렇게 강하고 담담하게 떠나기 위해 이를 물고 또 물었던 나는 꿈에서 헤어 나오자 이제야 현실이 와닿아 참았던 눈물을 몇 배로 쏟아 내버렸다. 

난 집에 와서 서아가 좋아해 자주 끓이던 된장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도 먹었다. 얇은 호박을 씹어보며 학교에 있을 서아 얼굴을 떠올렸다. 옆집에서 준 실한 고구마도 열심히 쪄서 한 입 베어 물어봤다. 안도와 행복이 입덧을 보기 좋게 눌러버린다.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오글거리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남편님아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내 남편이라 정말 고마워 자기야.

곧바로 답장이 왔다.

내가 더 사랑해 승미야. 내가 더 고마워 승미야. 사랑해 승미야.

내 이름을 불러주던 바다수영 하던 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그가 입었던 잠옷을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거리니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그의 체취가 코를 간질인다. 그 체취를 없애기 싫어 빨래는 내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아의 침대로 갔다 서아가 일어나서 고대로 빠져나온 이불은 꼭 동굴 같다. 그 동굴 속으로 내 몸을 쏙 넣어봤다. 내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엄마 사랑해..’

배속 내 아기는 꿈속에서의 내 불안, 공포, 후회, 간절함을 다 느꼈을까. 

“ 아가야 엄마는 정말 다행이야. 엄마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 엄마는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해. 우리 아가.. 너무 고마워.”

그 수액주사가 아니었으면 이런 꿈은 절대 꾸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뱃속 내 소중한 생명이. 

입덧을 하는 것도 살아있음이었다. 꺼억꺼억 입덧으로 토하면서도 웃었다. 서아에게 챙겨줄 수 있는 준비물도 행복했다. 술 취한 남편의 모습도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이었기에 행복이었다. 

“승미야 너 얼굴 요새 파리 한 게 입덧이 심해서 그런가 보다. 빈혈 한 번 알아봐라 응?”

“응 엄마. 검사 한 번 해볼게.”

처음으로 검사 한번 해본다는 대답을 했다. 산부인과에서 피검사를 하고 영양제를 처방받고 꾸준히 약을 먹었다. 노력해서 달라질 수 있음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나의 걱정과 안위를 늘 세심히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 아프면 나에게도 죄를 짓는 거지만 엄마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다. 아프지 않아야 한다. 그녀의 딸, 내가 건강해야 한다. 

“엄마 나 이거 하나만 해줄 수 있어?”

“그럼 서아야 당연하지.”

못 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바로 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서아를 향해 걸어간다.

“여보 나 제육볶음 먹고 싶은데...”

“나도 먹고 싶다. 오늘 해서 먹자.”

내 음식을 떠올리며 침 고이는 그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제육볶음을 내어줄 수 있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난 오전을 만끽하고 점심을 만끽한다. 저녁을 음미한다. 나에게 주어진 그 시간의 빠름에 정신없이 휩쓸려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나의 시간을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느끼려 한다. 

오전의 상쾌함과 에너지를, 점심의 무료함과 일상의 편안함을, 저녁의 노곤함과 휴식을 난 뱃속 아가와 만끽한다. 

남편과 둘째 이름을 고민했다. 

“ 여보, 수지 어때?”

“ 예쁘다. 수지. 우리 딸 수지~아빠 엄마 목소리 들리니?” 남편이 호들갑을 떤다. 

난 수지 덕에 수지맞은 엄마인 거다. 수지는 나에게 7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그 7시간이 나를 다시 살게 한다. 그 꿈같던 7시간..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7시간.. 난 여전히 하루를 7시간처럼 살아간다. 

그 7시간의 귀함을 누구나 알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은 불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저녁 7시, 저녁향이 슬금슬금 맡아지는 그 시간 수지가 우리에게 왔다. 나의 모든 변화를 아는 유일한 사람, 수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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