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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영지라는 여자

문을 열자마자 집안의 향기와 집 밖의 향기가 오묘하게 뒤섞여 새로운 향기를 만들어낸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강렬해서 흡사 기체가 곧 고체인 듯 느껴진다. 향기란 것은 딱 그 집만의 것이다. 똑같은 브랜드의 디퓨저가 곳곳에 있는 게 아닌 이상 향기라는 것은, 냄새라는 것은 고유하고 특별할 수밖에 없는 유일성을 가진 그런 것이었다. 

집의 내부를 굳이 세심히 확인하지 않아도 일상이 묻어나고 주인의 성격이 가늠되는 그런 것.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주인의 게으름 정도나 좋아하는 취향정도도 저격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진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 첫 느낌은 아마 주인의 분위기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강렬한 향도, 참기 힘든 향도 잠시 코가 얼얼한 순간만을 견뎌내면 무뎌진다. 사람은 간사하게 새로움에 재빨리 반응하고 무뎌진다. 그래서 다행이다.

후각신경이 반응하자 의식적으로 내 어깨로 코를 대어 혹시 풍길지 모를 냄새를 향해 킁킁 거린다. 내 근처 언저리를 부유하고 있는 갖가지 향들이 하나의 집합체로 섬유에 들러붙어 나도 모르는 어떠한 향을 내뿜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건조기에서 긴 시간 구겨져 있는 티셔츠 하나를 꺼내 입을 때 풍기던 섬유유연제의 향은 이미 날라 간지 오래, 브런치로 함께 먹은 샌드위치의 소스 향이 언제 스며들었는지 식당을 몸에 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든 것들에는 향기가 있다. 이렇게 덧입혀지는 향기도 있고, 가려지는 향기도 있으며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향기도 있기에 본질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늘 기분 좋게 웃으면서 문을 열고 들어가 싹싹하게 사람들을 모시는 영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브런치를 먹으면서 커피도 한잔 마셨기에 위장이 가득한 느낌인데 굳이 집에서 따뜻한 차 한 잔 더 하자고 일으켜 세운 것만 봐도 그녀의 성격은 드러난다. 누가 하면 분명 푼수 짓일 수 있는 것인데 그녀는 푼수 짓과 예의의 적당 선을 지혜롭게 지킬 줄 안다. 여기서 불필요한 학벌얘기를 들추자면 나는 분명 서울 근처 4년제를 나왔고 그녀는 대학이야기가 난데없이 흘러나온 상황 속에서 입을 닫고 웃음으로만 대체했었는데 아마도 ‘내가 그녀보다 학벌은 더 높을 거야’ 생각하다가 불현듯 어쩌면 토론이 일상화되어 있고 파티문화가 자리 잡은 외국에서 대학을 나와 우리에게 굳이 나불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즉흥적이면서도 지혜로운 그녀의 말과 행동은 서비스 교육이라도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있어 보이는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서울 4년제 대학, 그까짓 것 나와 봤자 저기서도 치이고 여기서도 역시 치인다는 자격지심이 갑자기 동했다. 나이를 불문하고 영지는 아는 동네사람들이 많다. 초대를 자주 하니 옆집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늘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고 친밀해 보였다. 그런 친밀함이 선천적으로 없이 태어난 나는 그런 곱살스러움이 늘 신기하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이 아파트는 영지네 집에 초대를 받은 사람과 초대받지 않은(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적어도 이 101동 아파트 내에서는 영지의 입지가 나름 굳건했던 것이다. 언제 저렇게 화장할 시간이 있나 놀라울 정도로 늘 단정한 영지엄마의 얼굴이나 그 얼굴 위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깔끔하게 정리된 날렵한 눈썹과 맑은 피부를 더 부각하는 매트한 빨간 립스틱은 언제든지 자신만만하게 사람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계절에 맞게 바뀌는 운동화, 로퍼, 슬리퍼, 쪼리, 키높이 운동화나 앵클 부추 같은 것들은 육아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애정을 쏟으면서 살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졌고 근처 여성들도 그렇게 일어나라고 부르짖는 ‘자존감을 부추기는 도구’로 보였다.

늘 운동화와 푹신한 슬리퍼를 신고 아이와 동네를 배회하는 나는, 놀이터에 나가느라 또는 아이 돌보느라 내 얼굴, 내 머리 내 몸뚱이 하나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나로서는 영지 엄마의 모습 자체가 자극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던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머리색이 변하거나 신발이 교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는 그 순간 난 건조기 속 구겨진 옷이 되어버렸다. 아이 엄마가 아이나 잘 키우면 될 것이지 엄마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해 봤자 어디서 작은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나 싶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애보다 늘 먼저였던 것은 내 마음속 ‘자존심’이었다.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킬까 봐 가끔 먼저 자리를 일어서려 하면 서로 애 키우는 입장에 너. 나. 우리 하면서 허물없이 지내서 나쁠 것 없다는 도윤엄마의 뼈 있는 한 마디 속에 ‘나만 유별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고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도 몹쓸 자존심 때문이라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난 한정된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이와 관련된 사람들과 소소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내가 말단 대리라면 영지는 적어도 만나는 우리들 중 팀장급은 족히 될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늘 우위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었고 모두 그녀를 따랐으며 결국엔 늘 많이 베풀고 인정도 받으며 동시에 입방아에도 많이 오르고 권위에도 높이 오르는 그런 위치.

나는 그런 영지를 보면서 때론 생각했다. 나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주거나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아 보이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공들여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노동 중에 상노 동이며 그러한 행위는 마음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이와 서점을 갔다가 우연히 들춘 심리학책에서 이 글귀를 보고 지영이 엄마, 영지의 얼굴을 떠올린 날은 그녀가 계절이 바뀌었다고 머리를 염색하고 새로 산 구두를 신은 날이었다. 손에 물 하나 안 묻힐 것 같은 고운 손 위로 보석 박힌 네일들이 반짝이던 날. 내가 건조기 속 잔뜩 구겨진 옷같이 느껴지던 날, 우연히 그 글귀를 발견한 것이고 또 우연히 영지얼굴을 떠올린 것뿐이었다. 내가 그녀를 싫어하고 남몰래 험담하는 게 아니라......     


#101

101동은 우리 엄마들의 아지트다. 엄마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한 가장 편한 곳은 우리들의 공간, 우리들이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공간 ‘집’이라는 사실을. 아이들과 함께 커피숍을 가서 엄마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아본 엄마라면, 노키즈 존이라는 글자 앞에서 괜히 주눅 드는 기분을 느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집이라는 공간이 엄마들에게 얼마나 기고만장한 공간인지를. 그래서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101동에서 만났다.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공간. 101동의 암묵적 우두머리는 지영엄마, 영지씨다. 영지와 가장 가깝게 지내고 항상 장을 같이 보러 다니는 도윤이 엄마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로 비치는 사람이다. 늘 영지씨와 비슷하게 꾸미려 노력하지만 기본 바탕이 다르니 아무리 노력해도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니 엄마들 중에 이름을 아는 엄마는 영지씨 한 명뿐이다. 늘 도윤이 엄마는 도윤엄마로 불려졌으니까. 도윤엄마는 남편 회사 할인을 받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명목으로 늘 영지씨가 장을 보러 갈 때 동행했다. 분명 그 전달 두 보따리 봉지를 힘겹게 들고 올라가는 걸 봤는데 이튿날 또 동행해 전날에 버금가는 짐을 두 보따리 들고 오는 게 신기했다. 

101동 406호. 가장 자주 모이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다 나는 흠칫 묘한 냄새를 느꼈다. 멈칫하는 게 딱히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아 재빨리 눈알을 굴려 다른 사람이 내 표정과 멈칫하는 행동거지를 확인하지는 않았을까 동태를 살피고 긴밀하게 몸을 움직였다. 

“ 집 너무 좋다! 뭐야 또 인테리어 바꿨어요??” 세정엄마가 말했다. 

이런 말은 초대를 받아 집에 처음 방문하거나, 간혹 이사를 한 후 집들이를 할 때 의례적으로 하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집 너무 좋다 / 예전보다 훨씬 집이 분위기 있다 / 리모델링 어디서 했어요? / 몇 평인데 이렇게 넓어요? / 평수에 비해 훨씬 넓어 보인다 같은 말들이 그러한 반응들이고 여기에 화룡점정은 “정말 부럽다.”이다. 하지만 101동 406호 지영이네는 수시로 벽지를 바꾸거나 부분 시트지를 사용해 분위기를 정말 다채롭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존경심이 생기게 만드는 부지런함과 인테리어감각이었다. 내가 냄새에 민감해진 이유는 딱히 없지만 몇 달 전 건조기에서 구겨진 옷을 입고 101동 집합소 406호에서 모인 날, 은찬이 엄마가 웃으면서 옷 좀 다려 입으라고 농을 친 것 때문이었을까?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나 빼고 모두 깔깔 웃어댔으니. 구겨져도 너무 구겨졌다고 자기 집 에어드레서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라는 말을 말이라고 내뱉은 은찬이 엄마를 나무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은찬 엄마 등을 살짝 치며 쓸데없는 소리 지껄인다고 내 편을 살짝 들어주는 척하다가 어디서 꿉꿉한 냄새나는 것 같다고 옷 덜 말려 입으면 그런 냄새난다고 지껄인 쌍둥이 세준 엄마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 이상하게 예전보다 자꾸 냄새에 집착하고 냄새 때문에 눈치 보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하나는 분명하다. 나에게 초라한 향기가 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것. 101동에서 그 향기는 더 진동했고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가 내 몸뚱이를 환기시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 

그날 모임은 시트지를 새로 바꾸면서 거실에 티 테이블을 하나 들였다고 그 테이블에서 차 한 잔을 하자는 게 명목이었다. 엄마들의 연령대는 비슷했지만 우린 다양한 연령대의 생명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아이 엄마의 이야기는 늘 돌고 돌게 된다. 도돌이표처럼. 아이 키우는 이야기, 남편과 시댁이야기, 운동, 건강, 학업, 학원, 반찬걱정 같은 소소한 일상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우리들은 가족보다 때론 더 가까운 사이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은찬 엄마도 도윤엄마도 영지씨도.. 또 초대되는 누구나 너무 익숙하고 편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 공간이 아마 101동 아니었을까. 101동에서 우리들은 10대, 20대, 30대.. 우리들의 인생을 추억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01동 속에서 움트고 있는 우리들의 음성과 의미들은 실로 어마어마한 가치일 것이다. 아무도 몰라주지만 그 엄청난 값어치들의 추억들을 부동산정책만은 알아줘서, 그래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아니 여기는 정말 신이 내린 아파트 단지라잖아. 저기 옆 단지는 집값이 잘 안 오르는데 여기는 역이랑 가까워서 그런가? 평수 때문인가? 너무 잘 오르지 않아? 부동산으로 돈 벌기 글렀다는데 아직은 부동산도 한몫 단단히 하는 거지 뭐 안 그래?”

“ 전 잘 몰라서.. 남편이 그래도 1억 넘게 올랐다고는 하던데. 난 통 관심이 없어서 그래도 1억이면 많이 오른 거죠 뭐 그렇죠?.. 전 잘 몰라요 사실..”

순박한 얼굴을 하고 ‘저는 잘 몰라요..’라고 말을 하면 엄마들은 그걸 그렇게 좋아했다. 내가 더 잘났다는 확인을 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지아 엄마네도 좀 오르지 않았어?”

이럴 때는 쉽게 넘어가면 안 된다. 처음에 이사 오고 나서 대놓고 물어보는 질문( 몇 평? 자기 집이고?) 몇 개에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세라고 얘기하면 다른데 아파트 사놓았나 보다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냈고 사야 할 시기를 자기들이 정해주기도했다. 정말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심으로. 

이제는 살짝 고개만 까닥인다. 내 집이라고 내입으로 말은 안 했으니 명백히 거짓말은 아니지만 본심은 숨길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살짝 웃으며 고개 까딱이기. 아직 나는 지아가 멀리서 놀고 있어도 몸에 주인 없는 아기 띠를 매고 있는 짠한 엄마인지라 그러려니.. 정신없으려니.. 제대로 답 할 시간 없겠거니.. 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더욱이 수시로 나에게 매달리는 지아덕에 내 감정과 표정은 온전히 드러나기가 쉽지 않았고 덕분에 101동에서 내 상황만 온전히 까발려지지 않았다. 지아 덕에.

난 101동 전세민이다. 그놈의 전세 값 때문에 언제 또다시 이사계획을 잡아야 할지 모르는 약간은 불안한 입주민. 아이들 학교 보내고 유치원 보내고 어린이집 보내고 잠깐씩 누리는  자유시간조차 아직 없는 유일한 수유티 차림의 남루한 입주민. 

그래도 괜찮다 난 101동 사람이니까.     

#우리 집 냄새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바람결에 무의식적으로 맡게 되는 정체불명의 향기가 있다. 한 여름 복도식 아파트를 지날 때 반쯤 열린 창문으로 안쪽의 공기가 바깥으로 슬금슬금 새어 나올 때 맡아봤을 법한 향기 같은 것.  

신체의 감각기관은 반복되는 생활 때문에 혹은 몇 십 년 동안의 삶의 방식으로 무뎌져 본인에게만 자취를 감춘다. 코를 들이마시면 자연스럽게 흡입되는 산소처럼 입을 벌리면 자연스럽게 내뿜어지는 이산화탄소처럼 그냥 그렇게 당연하게 냄새가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 일상 속에서 특별한 감각적 자극이 없는 한 우리는 덤덤하게 신체를 보전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타인의 후각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는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보이지 않게 향기로 그 집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공포스러운 일인가. 가격대 다양한 디퓨저로 인공적인 향기를 내 집안 곳곳의 현실적인 냄새를 감추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지금처럼 일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향기를 내뿜는 집도 존재한다. 향기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운 아주 현실적인 것. 우리 집은 냄새가 진동한다. 

어제저녁으로 끓인 삼계탕 냄새가 아직도 거실에 진동을 한다. 초를 켜두면 냄새가 빠진다는데 아직 아이가 어리니 화재위험이 걱정되며 불안증이 도지고 향초 성분이 아이 호흡기에 안 좋다는 얘기가 떠오르며 건강염려증까지 도지면 딱히 답이 없다. 그냥 이 집에서 후각을 마비시키는 수밖에.. 회사 근처 신림에 작은 오피스텔에다 신혼집을 얻었었다. 그 작은 공간에는 아주 단출한 향기가 났었던 것 같다. 냄새가 아닌 향기. 아직 풋풋한 신혼은 서로의 설렘을 위해 각자 분주하게 노력 같은 것들을 이어나갔을 것이고 건강보다는 분위기를 위해 향초며, 향수며, 바디미스트며 갖가지들로 집안의 신혼분위기를 유지했으리라. 나도 생각한다. 그 향‘덕’에, 그 분위기‘덕’에 지금의 지아가 생긴 것만은 확실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아이를 낳고 3개월 정도까지 오피스텔에서 지내다가 겨울에 바닥이 너무 차가워 이사를 결심했다. 연탄 떼는 시절도 아닌데 때마다 바닥에 손을 올려가며 온도를 체크하는 짓은 못할 짓이었다. 둘이 살 때는 그렇게 춥게 느끼지 않았는데 목젖을 보이고 이도 없는 잇몸을 자꾸만 드러내며 울어대는 작은 핏덩이. 아이를 일부러 추위에 내던져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힘들기도 했고 그건 정신적인 학대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모성애였을까. 결국 난 모성애를 빙자하며 어쩔 수 없는 이사를 감행했고 사실 우리 둘에게는 경제적으로 버거운 이사였기에 어머님에게 돈을 빌렸다. 또 엄마에게도 돈을 빌렸다. 결국 이 집은 전세에다가 더불어 완벽하게 우리 집일 수도 없는 공간이 됐다. 주인도 우리가 아니었지만 들어간 돈도 우리 것은 몇 푼 안 됐었으니까. 이사를 하고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냄새였다. 아기가 모유를 먹고 개어낸 아기 토 냄새가 났고 시큼한 아기똥 냄새가 났으며 그 냄새는 갓 지은 쌀 밥 향과 비슷했다. 그래서 ‘증기가 배출됩니다.’라는 안내음성이 전기밥솥에서 나오고 치~~~~~~~하는 소리와 함께 밥솥에서 김이 다 빠지고 난 뒤 남편이 퇴근해 들어오면 어김없이 이 말을 했다.

“ 어구구 우리 지아 또 응가했네~~”

“ 우리 아가 똥 냄새랑 쌀밥냄새랑 그렇게 똑같아?”

“ 응 진짜 밖에서 들어오면 비슷하더라 난?” 

아이피부에 적합한 세제를 썼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과 나의 옷에서도 아이 유연제 향이 스며들었다. 아이 입가에 묻은 모유냄새, 늘 치대는 덕에 요란하던 음식냄새, 아이의 시큼하고 때론 갓 지은 밥 같은 구수한 똥 냄새들로 우리 집은 가득 찼다. 어른만의 향기가 아이와 공존하는 냄새로 변해가면서 나와 남편도 분위기보다는 편안함과 건강을 추구하는 의리 있는 부부가 되어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향기가 사라지면서 난 여자에서 엄마가 됐다. 그냥 느낌이, 기분이 그랬다. 인공적인 미가 점점 감소했다. 화장도, 치장도, 염색도 향기도 엄마에게는 사치였고 일상의 냄새에 후각이 둔감해졌다. 아기냄새가 또 다른 향수 냄새 같았고 몸에서 조금이라도 과한 화장품 향기가 나면 괜히 아이를 한 번 바라보고 눈치를 봤다.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싶어... 이렇듯 그 집의 냄새는 집 속 생활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집에 살고 있는 생활인들의 성격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화장실에서 하수구냄새가 올라오거나 싱크대 배수구에 물때가 덕지덕지 붙어 쾌쾌한 냄새가 나면 청소에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예측할 수 있듯이 집주인의 성향도 여지없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꽤나 깔끔을 떠는 인간이었고 내 몸 하나 말끔히 만드는 것 하나쯤은 자신 있는 사람이었는데 아기를 낳으니 그런 오해를 받기 십상일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청소에 ’ 청‘자도 모르는 사람이 분명해..’ 같은 오해 말이다.(이건 오해가 맞다)

여기서 잠깐, 내 상황에 대해 둘러대 보자면.. 난 원래 보이는 곳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의 청결도 엄청나게 신경 쓰는 깔끔 주의자였다. 깔끔도 깔끔이지만 감각도 꽤 좋았다. 신혼 때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사진작가같이 찍었다며 좋아요를 수십, 수백 개씩 받았던 그런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없다. 모유를 먹은 아이는 계속 똥을 싸고 나는 기저귀에 살짝 지린 그 똥이 혹시나 똥꼬를 헐게 할까 봐 염려증이 도져 수시로 갈고 그 기저귀는 동그랗게 모여 쌓이고 그 쌓여 더부룩하게 묶인 쓰레기봉지조차 들고나가 버릴 시간이.. 그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점점 얼굴 위로 올라가던 화장품 개수가 줄어들었던 것뿐이고 주방 근처를 정리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뿐이고 집안 곳곳 인테리어는 거들떠볼 여력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사진을 찍어 눈 올리는 것? 불가능했다. 아이는 내 냄새가 사라질 때 칭얼댔다. 하루 대부분은 내 몸무게에 6-7kg 분신의 무게가 더해져 둘은 거의 한 몸이나 다름없었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졌고 그 덕에 밤마다 어깨가 쑤셨다. 누구에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통증은 꽤 사람을 슬프게 한다. 대놓고 말할 곳도 없다면 더 우울하다. 난 내 몸을 닦고 매만지고 치장할 시간과 에너지의 부족으로 결국 이렇게 남루한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나 같은 깔끔 주의자에게는 이 자체가 파국 아닌 파국이다. 

돌잔치에 못 온다고 미안하다며 대학동기 미선이가 집으로 놀러 왔다. 아직 돌잔치는 한참 남았는데 뭔 미안이냐고 물어봤더니 당분간 한국을 뜰 거란다. 

“ 꺄악~~~ 우리 지아 엄청 컸네~~~ 소영아! 환기 좀 시켜라 환기 좀!”

그날 미선이가 지아를 바라보고 과하게 활짝 웃으며 했던 그 ‘환기 좀’ 시키라는 말이 그렇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게 이상했다. 다른 날 같으면 웃으며 넘기거나 아무런 의미 없이 넘기며 창문을 열면 그만이었을 그 말.

“ 아.. 어....? 어머 우리 집 냄새나?”

“ 아니~ 공기가 답답하지 않아? 우리 지아한테도 이런 공기는 안 좋다고요~~~~~~아 귀엽다 진짜!!”

귀엽겠지. 결혼 안 한 네가 바라보는 저 작은 아이, 매일 먹고 싸고 울고 토하고 놀고 자고 저지레를 하는 저 아이가 귀여운 이유는 너님이 키우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 까발리고 싶었다. 하지만 때론 진실을 숨겨야 마음 편할 때도 있는 법.

“ 그렇지~ 갈수록 더 예뻐져. 귀여워 죽겠어 진짜. 우쭈쭈”

사실 미선이도 알았을 것이다. 내 손목보호대가 내 고단을 말해주고 있을 테 였고 그 멋 내기 좋아하던 친구가 칙칙한 수유 지퍼 티에 다 늘어난 바지를 입고 헤벌쭉 웃고 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귀여워 ‘죽는 게’ 아니라 진짜 ‘죽겠는’ 사람으로 보였을 테지. 오랜만에 말끔한 친구를 보니 잡생각이 솟구쳐 괜히 또 기분이 싱숭생숭하던 순간 미선이가 갑자기 연애 이야기를 시작한다. 

101동 204호, 우리 집이랑은 왠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야기. 아기냄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심쿵한 이야기.

“나 그 만났던 사람 있잖아. 그 사람이 결혼얘길 여태 안 한다?”

“만난 지 1년 정도 된 거 아니야? 아직 좀 더 연애하고 싶은가 보지~ 결혼하면 연애 때랑은 다르다 너~즐겨 그냥.”

“왜 다르니? 그렇지 지아야~~~~~ 이렇게 귀여운 아기도 생기고 좀 안정적이잖아. 나이 39 먹어서 아직도 결혼 안 하고 연애한다니까 우리 아빠가 혀를 차더라 혀를”

“왜 어머님은 적극지원 아니었어? 비혼주의자 선언 했을 때도 어머님은 적극 지원 하셨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멋진 분이야~지금 생각하니까 비혼주의 나도 찬성!ㅋㅋ”

“울 엄마가 왜 적극지원 했겠니? 딸년이 결혼 안 하고 남자랑 사는 것 자신 없다는데? 다 자기 전처 밟을까 봐 걱정됐던 거지. 울 엄마 고생을 좀 했니? 너도 알잖아... 나도 그냥 그래서 더 싫었던 게 있었던 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발목 잡힌 기분.. 희생당하는 기분.. 묵묵히 참아야 하는 것도 그렇고. 울 엄마도 아마 자긴 고생해도 딸 고생할까 봐 겁이 났겠지.”

대학 동기들 중 나는 미선이와 가장 친했다. 처음엔 서로 만나는 남자 이야기 하다 가까워졌고 커플조인으로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다가 더 친해졌고 둘 다 헤어지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우리 둘이 더 자주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속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듣게 됐고..

나에게는 무조건 때에 맞게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부모님이 있었고 (그 알맞은 때는 26살이었다) 미선이에게는 전문직 여성이 돼서 밥벌이 잘하면 혼자 사는 게 답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있었다. 경제권만 쥐면 두려울 것 없다는 엄마의 말이 짜증 난다면서도 내심 미선이는 그런 전문직을 향해 취업준비를 했고 난 세뇌당했다는 듯이 ‘결혼을 하면 일을 그만두는 건가?’ 같은 얼빠진 질문들을 내뱉곤 했다. 미선이 엄마는 보기 드문 현모양처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현모양처라는 말은 폭언의 말이 분명하다. 난 지아가 다른 건 다 돼도 현모양처만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 엄마 딱 5년만 더 버티고 황혼이혼한대.”

“응? 5년은 뭐고 이혼은 뭔 소리래?”

“5년쯤 더 기다리면 나 부장쯤 달거나 아님 결혼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 아냐. 그때 맞춰서 상황보고 이혼 한다는 거지. 도와준다는 거야 선심!!”

“ 이혼을 왜 너한테 선심 쓰며 해.”

“ 소영아 너도 생각해 봐라. 지아가 30년 뒤에 결혼한다고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네가 진석 씨랑 이혼을 고민 중인 거야. 그냥 내지를래? 아님 좀 참을래?”

“... 음... 난 해버리지. 그냥.”

“ 아이고 퍽이나! 왜 그렇게 우리나라 황혼이혼이 많은 줄 알아? 다 자식 년 놈들 때문이야. 이혼도 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어 탱탱하고 멋지고 예쁠 때 해야 다른 사람이랑 사랑을 한 번 더 하든 말든 하지. 다 나이 들어서 왜 굳이 황혼이혼을 하겠냐고. 그건 사실 엄청 슬픈 거야 너~.”

나보다 인생사 20년은 더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미선이가 귀여웠다. 참고 참다 황혼이혼을 한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긴 했지만 ‘이제는 밥 하기 싫어서’, ‘이제는 그 사람이 싫어서’ 정도로만 생각했지 자식을 위해서 기다렸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았다. 이혼보다도 어른이 된 내 딸아이의 얼굴이 그려졌다. 너무 멀고 아득해서 상상 속 장면 같은 지아의 먼 훗날 모습. 내 딸 지아가, 이렇게 공들여 키우고 있는 지아가 결혼을 한다면? 나와 같은 손목보호대를 차고 아이를 돌보고 있다면.. 그보다 앞서 그 고통을 견디며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지아가 출산해야 하는 아픔이 고스란히 나에게 느껴졌고 갑자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지아가 비혼 주의자였으면 좋겠다...’

“ 야 보리차 냄새 진동한다. 불 꺼야 되는 거 아냐?”

우리 집이 지아가 먹을 보리차 냄새로 가득 찼다. 덕분에 환기를 해야 된다는 사실은 잊혔다.      


애 잡는 날.

단체카톡방 알람이 연속해서 울렸다.     

도윤엄마: 101동 티타임 콜?!

영지씨: 콜! 우리 집?!

도윤엄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샐러드 만들어놨어요~~~ 호호호홍 새로 공수한 유기농야채!

영지씨: 부지런도 해~ 도윤이 보내고 바로 만든 거?

도윤엄마: 어제 알려준 비법대로 만들었는데 맛이 난리 나요. 꼭 드시러 와야 해요~~

세정, 세윤 엄마: 전 병원만 들렀다 참석이요. 약만 받으면 돼요~벌써 먹고 싶어요~

은찬엄마: 당연합죠. 전 어제 남편이 사 온 떡 좀 가지고 갈게요. 샐러드랑 떡.. 조합 괜찮...?

도윤엄마: 지아 엄마만 답해줘~지아 재우나?

나: 죄송해요~~ 지아 간식 만들던 것만 다 만들고 참석할게요~ 집에 귤 좀 있는데..

도윤엄마: 귤 우리 집에 박스로 있어요~~~~ 그냥 와. 지아 놀잇감 하나 가지고 와~~     

이 상황에서 나만 빠지기는 힘들었을 뿐 아니라 숨 막히게 나열되는 카톡들을 확인하기 위해 재차 앞으로 되돌아가 맥락을 확인하는 건 꽤나 피곤했다. 시간이 되면 참석하고 아니면 그만일 수 있는 문제지만 때론 어린 지아를 데리고 가는 게 민폐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지아를 배려해 주는 그 세세함이 너무 고마워 몸 둘 바를 모를 때도 있었고. 또 나만 너무 초라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왜 내 자존감은 이럴 때 무너지는가.. 왜 수유지퍼티에 무너지고 왜 또 그 수유지퍼티는 벗을 생각을 안 하는가..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내 감정이 요동치면 어김없이 야박하게 아이를 대한다는 거였다. 아이를 교묘하게 혼내기도 하고 남편에게 괜히 짜증을 더 내기도 했으니까. 남편이나 아이나 내 기분 수틀리는 날이 곧 전쟁선포나 다름없었으니까.

101동 703호 안주인, 도윤엄마.

아이를 잡는 이유는 참으로 다채롭다. 도윤엄마는 어제 아이를 잡았단다. 아이가 소도 아니고 돼지도 아닌데 왜 잡았다고 표현을 하는지 나는 그게 계속 거슬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 엄마도 어릴 때 아빠랑 사이 안 좋은 날은 꼭 나를 잡았었다고 말하곤 했었던 것 같다. 도윤이는 집에서 놀기만 한단다. 학교 끝나자마자 놀이터 직행, 들어와서 밥 먹고 배 채우면 또 놀기 시작해서 찝찝하면 씻고 잔단다. “ 건강이 최고죠~ 도윤이 씩씩하잖아요”

라고 한마디 했더니 날 째려보며 도윤엄마가 한마디 말한다.

“ 지아 같은 나이나 건강이 최고지 10살 먹은 덩치가 매일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뭘 그렇게 휘젓고 다니는지 나중에 이런 아들 키워보면 내 말 이해하려나 지아엄마가? 호호”

도윤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래서 도윤이가 잡히는 날도 있는 거구나. 

“ 세윤이 감기 다 떨어지니까 세정이가 난리야 이제.. 번갈아가면서 아주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는데 남편은 매일 야근이고 쌍둥이는 내가 혼자 낳은 거지 뭐!! 그렇지?”

세윤이 세정이 엄마는 이란성쌍둥이 엄마다. 7살 아들 딸 엄마. 세윤이는 조용하고 딸 세정이는 씩씩하다. 한글을 떼는 중이라고 했다. 아직은 건강한 게 최고지만 슬슬 불안하다고 했고 그 엄마의 불안이 도지는 날이 내 아이를 잡는 날이라고 했다. 영지씨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을 오물거리면서 다 지나간다고 득도한 부처처럼 말했다.

은찬 엄마는 떡을 나눠서 접시에 올려놓으면서 우리 지아 때가 가장 걱정거리 없는 때라고 해서 나는 때 아닌 위로를 받았고 은찬이는 학원을 다니기 싫어해서 잡았다고 했다. 

자기가 다니겠다고 하는 학원도 중간에 그만두면 잡히는 거였다. 우리도 못다 한 책임감을 내 아이는 묵묵히 해내야 하는 것이었을 테니까. 너무 잘 놀아도, 너무 불안해도, 너무 고집을 부려도 아이들은 엄마에게 ‘잡혔’다. 가장 고집이 세고 가장 막무가내며 가장 잘 놀고 잘 싸고 잘 먹고 잘 자는 지아만이 평화롭게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행복한 표정이다.

“ 그나저나 다들 작작들 혀~~ 어제 여기서 부부싸움 한 사람 이실직고해!”

“아 맞아!!! 나도 들었어. 난리도 아니던데 어젠 뉘 집이야?”

매일 회식과 야근인 남편과 자주 다투던 나는 지아는 나 혼자 낳았냐고 쏟아낸 목소리가 방음이 안 되는 벽을 타고 사방으로 퍼진 걸까 싶어 순간 바짝 긴장했다. 그때 영지씨가 빨간 입을 움직였다. 순간 ‘내가 좀 잡아먹었어.’라고 말할 것만 같은 빨간 입이었다.

“ 안 싸우는 집이 어딨어!! 아우 여긴 다 좋은데 왜 이렇게 방음이 덜 돼? 다 들렸어? 어젠 나일세!!!! 남편들 마이너스 통장 있는지 없는지 다 확인들 해봐 들!!! 나 마이너스 1000이더라. 더 있을 줄 누가 알아. 그런 걸 왜 숨겨? 어제 그거 우연히 알고 저.. 저 뭐야 코렐 접시 하나 던졌어 내가.”

‘대박...’

정말 오묘한 것이 뭐냐면 이 101동 엄마들은 속마음을 완전히 숨기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속마음을 혈관까지 다 내어줄 듯 보여 줄 때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면 가장 의뭉떨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나’ 일 것이다. 여전히 아이가 예쁘다고만 말하고 남편은 잘 도와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직 부부사이에 이상전선은 없으며 시댁어른들과도 마찰 하나 없고 그냥 이냥저냥 살고 있는 조용한 여인내의 이미지.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말릴 필요는 없는 것이며 그것도 친척, 가족, 나와 관련된 사람의 이야기를 오르내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내 아이와의 마찰, 내 남편과의 이상기류를 이웃지인에게 말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에 내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살아간 것뿐이다. 

“아으~ 언니 말도 마 그래도 걸려주니 얼마나 감사해? 좋은 남편이다 그 정도면. 내 남편은 속을 안 보여 속을. 절대 안 걸릴 인간이야 그 인간은. 도윤이도 가끔 표정 없이 거짓말 쓱 해대는 거 보면 지아빠랑 똑 닮았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가끔은 가족보다 우리들이 더 가족 같아. 더 자주 봐. 징그럽게 자주 봐 아주~ 속마음을 우리끼리 더 잘 알고 정작 알아야 할 놈은 모른다는 게 이게 엄청난 일 아냐?”

“ 아니 볼 수가 있어야지 종일 일한다고 밖인데.. 나도 서울 4년제 나온 여잔데 말이야. 아으.. 이런 말 백날하면 뭐 해 도돌이표야 도돌이표. 그냥 이렇게 속 시원히 얘기하고 툭툭 털어야 사는 거지. 우리 오늘 살라고 만난 거잖아? 하하 호호 후후흐흐히히”

“ 아 맞다 그나저나 지아엄마 이거 받아. 귀여운 아이 키우는 집 101동에 한 집인데 아이 있는 집은 자식 덕에 원래 이렇게 많이 받는 거야, 복덩이. 우리들도 다 이렇게 주고받고 하면서 살았으니까 부담 말고 받아! 어서~ 별거 아녀~”

이웃언니님들이 봉투하나와 이불세트를 건넨다. 순간 이기적인 나는 생각했다.

‘이걸 나에게 왜.. 주는 것인 건지..’

원래 천성이 곱지 못해서 늘 삐딱하고 의심 많고 잘 못 섞이고 혼자 고고한 척하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 공간, 시간에도 지아에게만 눈길을 주며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한 귀로 흘려듣고 있었으니 눈앞에 흰 봉투와 큰 이불세트가 갑작스러웠을 수밖에..

“아... 어머... 엇...”

“말을 해 말을!! 지아 엄만 당황하면 말을 못혀~~~~”

“지아엄마가 아직 어려서 그려!!!!! 언니들이 주는 건 받는 겨~~~~”

갑자기 난데없는 사투리가 703호를 뒤덮었고 아까의 분노감은 깔깔거림으로 희석됐으며 나는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지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지아를 팔아 위기를 모면했다. 머리를 굴렸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것 / 내가 초대할 수 있는 날 / 내가 할 수 있는 뭔가.....

“지아야 감사합니다.. 해야지”

지아가 칭얼댄다. 민망하다. 미안하다. 갑자기 지아가 얄미워진다. 당황스럽다.

“왜 이래 갑자기~~얜~~~지아야아아!!”

목소리가 커졌다. 쓸데없이..

“ 왜 애를 잡고 그려!!!! 우리 지아는 이렇게 울 나이지 그렇지? 엄마 이상혀~~ 그렇지 아가?”

엄마가 민망해도 아이를 잡는 것이었다. 지아는 그날 703호에서 교묘하게 나에게 잡힌 것이다.      


오버랩누구나 경험했을법한 이야기

옆집에는 장성한 아들을 둔 부부가 산다. 우리 집에서는 하루 종일 아이소리, 아이냄새, 주방에서 물 쓰고 세탁기 빨래소리가 쉴 틈 없는데 옆집은 정말 고요하다. 

가끔 엘리베이터 앞에서 옆집 부부를 만나면 지아를 보고 활짝 웃어주면서 나에게 뼈 있는 말을 건넨다.

“이리 엄마~움마~할 때가 제일 귀엽지. 더 크면 집에 안 들어와. 볼일이 없어 볼일이.”

잠만 자러 집에 들어오는 거냐는 엄마의 잔소리를 따갑게 들었었던, 대학생이던 나의 그때가 오버랩 됐다. 바로 아래층에는 신혼부부가 산다. 아이 때문에 욕실이며 거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물을 써야 해 혹시 늦은 시간 불편하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시어머님에게 받은 과일을 좀 가지고 내려가 인사를 드렸다. 둘의 모습에서 애정과 설렘이 느껴진다. 나와 남편의 연애시절이 오버랩 됐다. 아이와 동네를 산책하면 학교가 끝나고 우르르 달려 나오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손에 달고나나 솜사탕, 불량식품을 들고 있는 날은 더 추억 돋게 내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됐다. 갑자기 누가 뒤에서 지아를 부른다. 하루 동안 내 이름보다 지아라는 이름을 더 많이 듣는 나는 가끔 존재는 하지만 투명인간 같다는 생각에 휩싸이곤 했는데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아이를 잠시 내려놓고 1분만이라도 홀가분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분. 지아를 뺀 내 인생은 이제 없는 것이겠지만..

“ 지아엄마 여기서 뭐 해? 애들 구경해요? 시커먼 애들이 뭐 예쁘다고 청승스럽게 여기 이리 앉아있어요~ 지아만 심심하겠고만 그렇지 지아야?”

“ 아 좀 답답해서요~”

“ 그나저나 그 얘기 들었어요?”

은찬엄마가 좌우전후 머리를 돌려 이야기를 꺼내도 되나 철저히 확인을 하더니 귓가에다 속삭인다. 

“지영엄마 이혼한대.” 

“지영엄마.. 아 영지언니요?!! 왜요 갑자기 무슨 일이래요?”

“그 마이너스 통장인가 뭔가 우리 모였을 때 얘기했었잖아. 그거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면서 쓴 돈이었나 보더라고. 그걸 어떻게 그리 걸려서는.. 아우 정말 속상해.”

“어머.... 시댁식구들 뭐 해준다고... 어머,,, 어떻게요.”

귀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입김이 불편해야 정상이었다. 늘 우리를 초대해 많은 것을 내어준 101동의 암묵적 리더, 주인공이 빠진 자리에서 그녀를 입에 올리는 자체가 어려운 일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난 걱정을 하고 있었고 걱정은 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지아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바람이 들어가지 않나 확인하며 이야기에 집중을 했고 아무리 이야기에 집중을 해도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었기에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충격은 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 순간 빨간 영지씨의 립스틱이 떠올랐고 늘 그 집만 가면 구겨진 옷처럼 느껴지던 내 얼굴이 떠올랐고 그 집의 향기와 우리 집의 냄새가 교차됐다. 

“시골에서 뭐 올라왔다고 영지언니가 소분해서 나눠먹자는데 모른 척하고 잠깐 들러요 같이. 그나저나 그 상황에 사람들이랑 같이 나눠 먹이겠다고... 아휴.. 정말 못살아.”

정말 못 살 것 같이 속상하면 그 집에 갈 수 없어야 정상이었다. 핑계를 대서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내어줘야 함이 당연했다. 모든 아픔이 치유되기까지는 무관심과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따라나선 나는 어떤 마음이었던 것일까. 나도 은찬엄마도, 그 집으로 향한 사람들도 모두 매한가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결론밖에 낼 수 없었다.

101동에는 벌써 단체카톡방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분명 영지씨의 상황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지씨만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나 비참하지 않은가. 나는 뭔 오지랖으로 영지씨에게 따로 카톡을 보냈다.      

나: 언니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알고 지낸 시간 동안 내가 누린 수많은 것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합리화시켰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덜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카톡은 확인됐고 여전히 빨간 립스틱의 여인은 무덤덤한 척했고 그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 그렇지? 모여 있을 땐 세상 가장 소중한 언니동생이고 좋은 일 있으면 같이 축하해 주고~~~ 아우 얼마나 좋아? 얼마나 훈훈해 이게? 남의 행복도 내 행복 남의 불행도 내 행복.... 안 그래?”

‘남의 행복도 내 행복..... 남의 불행도.. 내 행복..’ 리더의 일침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하다가 갑자기 일동 침묵이 됐다. 

“.... 어머 언니 뭔 일 있어요?”

은찬 엄마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분위기를 전환하려 애써보지만 앙 다문 빨간 립스틱여인을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다.

“.. 아 언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 괜찮아~~ 원래 별거 중이었고, 그런 얘기는 괜히 내 치부 같아서 내가 말 안 한 거고 어차피 동네 사람이 전해줘서 들은 이야기인데 나도 짐작은 했었던 거고 시집이야기는 둘러  댄 거니까 뭐 따지고 보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고~아우 됐어 됐어, 다들 분위기 왜 이렇게 초상집이야? 내가 괜찮은데 다들 왜 이래? 애들도 많이 컸겠다 이혼한다고 뭐 세상 무너져? 아니 이 분들 자식들 나중에 이혼한다고 하면 바짓가랑이 붙들고 말릴래? 세상이 어느 땐데 이혼에 무너져 무너지길~ 내가 해보고 어떤지 알려줄게~ 좀 기다려들 봐봐.”

“.... 아~~ 언니도 정말~~~” 

난 영지씨의 얼굴 말고 우리 지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순간 영지씨는 쓰러지고 갈기갈기 찢기지 않기 위한 보루를 쓴 것이다. 아무 일도 아닌 척해야 살 수 있다. 계속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고. 내가 당당할 수 있어야 101동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영지씨: 소영 씨 오늘 고마워. 진심이야.

늦은 저녁 휴대전화에 불이 들어왔다. 

소영.... 내 이름.. 내 이름이다. 지아엄마가 아닌 소영. 수유 지퍼티가 조금 열린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아이를 안고 달래던 나에게 너무 많이 샀다며 검은색 티셔츠 하나를 던져주고 간 여인내. 집에 올 때마다 잠깐 이리 와서 새로 산 립스틱 색을 봐달라며 내 입에 굳이 발라 입술만 동동 뜨게 만들고는 입을 앙 다물던 여인내. 염색하러 갈 건데 같이 가자고 물어봐준 여인내. 영지씨는 내가 소영이라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나 그랬었을 테니까. 아이를 키우며 누구나 경험해 봤을 마음이었을 테니까.

잠시 뒤 카톡 알림이 한 번 더 울렸다.     

영지씨: 소영 씨, 난 사실 소영 씨가 참 부럽더라. 뭐든 감추려 하는 게 없는 사람 같아. 그냥 그 자체로도 일상이 유지되는 사람. 난 집안에 향기라도 가득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거든. 내가 소영 씨 보면서 많이 배운다. 주책이지?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소영 씨는 이미 알고 있었을 테지만. 소영 씨처럼 살아. 지금처럼. 그게 난 참 좋아 보여.     

어떻게 답을 보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지아가 칭얼대는 바람에 미처 답장을 보내지도 못하고 잠들어버렸다. 그날 꿈을 꿨다. 

도윤아빠가 퇴근 후 다른 여자와 단둘이 술을 먹고 조용한 곳으로 향하는 장면을 나는 지켜봤다. 세윤 세정, 쌍둥이 엄마는 밤새 일자리를 구하느라 눈에 안약을 넣으며 컴퓨터 모니터를 봤다. 늘 술에 절어있는 남편을 향해 다 식은 주먹밥을 던지고 남은 주먹밥을 우걱거리며 다시 모니터로 힘겹게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대학 안 나온 걸 알면 혹여나 무시라도 당할까 봐 꾸미고 숨기고 포장하느라 늘 긴장하는, 손톱 옆 살이 다 뜯긴 은찬엄마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지켜봤다.

화장하나 안 해도 탱탱한 젊은 여자에게 나에겐 한 번도 사주지 않은 명품화장품과 명품 백을 수시로 들고 걸어가는 남편을 보며 빨간 립스틱을 더 진하게 바르는 영지씨의 덤덤한 표정이 정신없이 뒤섞였다. 

거기에 소영이가 서있었다. 최소영. 나를 보며 우는 작은 아이를 자꾸 밀어내며 나는 물었다.

“ 넌 누구니 엄마는 어디 있는 거니? 울지 마 엄마 곧 올 거야~~”

아이는 자꾸 내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아이의 엄마를 아냐고 수십 번 수백 번 소리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도 없다. 

난 아직 아이가 있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젊다고 꿈에서도 생각했다. 나를 도와줄 것만 같은 한 사람이 거침없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양손에 명품 화장품과 명품 백을 가득 들고 나에게 걸어온다. 나는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아이를 밀어냈다. 

그 아이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고 정말 자기의 엄마는 어디 있는 거냐는 멍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와 손을 잡고 아주 조용한 곳으로, 아늑한 곳으로 힘차게 걸었다. 

뒤를 보니 립스틱을 두껍게 바른 덤덤한 표정의 그 여자가 보인다. 

당연히 젊은 여자에게 가방과 화장품을 사줬을 거라고 생각하는 늙은 여자. 

수유지퍼티 입은 지아엄마는 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여자. 

고요하다고 생각했던 곳에 다다르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끝없이 펼쳐졌고 그 어둠 속에서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손 하나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어갔다. 

지아가 깼다. 그래서 나도 눈을 떴다. 뭐 이런 꿈이 다 있나 생각했다. 그냥 기분이 좀 그랬다. 내 앞에 지아가 활짝 웃는다. 아무것도 없던 잇몸이 하얀 이로 뒤덮였다. 

옆에 보이는 거울로 내 얼굴을 봤다. 지아가 큰 딱 그만큼 나도 늙어있었다. 

오늘은 우리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야겠다. 미처 하지 못한 답장은 만나서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날씨도 꽤 화창하고 지아의 컨디션도 좋고 내 기분도 가볍다. 

오랜만에 화장을 좀 해야겠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겠다. 냄새 아니, 향기 나는 우리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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