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학벌이나 성적이 전부가 아닌 것 같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용기, 도전, 열정, 회복탄력성, 꿈 등..
학벌이 인생 목표가 되어버리면 아이들의 인생은 고달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공부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늘 이야기해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학원에서의 분위기가 아이들을 압도할 때가 있고
이 정도는 해야 해. 다 이렇게 해.라는 메시지에 세뇌당하기도 한다.
또래 친구들보다 학원을 늦게 다니기 시작했고 모두 아이들이 원할 때 시작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성향이 다른데 우선 큰 아이는 뭐든 하하 헤헤하면서 가볍게 해낸다.
작은 아이는 계획적이고 꼼꼼하다. 그래서 과정이 더 힘들다.
같이 숙제를 시작해도 늘 먼저 일어나는 언니, 늘 쉽게 해내는 것 같은 언니의 모습이 아이에게 또 다른 압박이 되었었나 보다.
영어 학원을 바꾸면서 숙제 양이 많아졌는데 오랜 시간 어떻게든 마무리해서 학원을 갔었다.
2달 정도 그렇게 버텼다. 나는 어제 그렇게 힘들게 버텼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너무 힘들단다. 다른 아이들은 수월해 보이는데 나는 느린 것 같고,
다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나는 모르겠고, 숙제는 남보다 오랜 시간 하는데 마무리하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숙제를 하고 겨우겨우 끝내면 다음 숙제를 해야 하는 그런 시간을
혼자 버텨왔던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너무 큰 아이처럼 생각했다. 큰 아이는 당연하게 해내고 웃으며 해냈으니 작은 아이도 그렇게 힘들지 않겠지 생각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영어 단어를 품에 안고 상기시키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뭔가 크게 잘못됐다 생각했다.
공부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인데 그렇게 마음이 힘들 정도로 내달릴 필요가 없다고.
공부를 하면서 마음 곪고 아프느니 엄마는 공부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남들과 다 같은 속도로 갈 필요가 없다고.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주니 아이가 귀 기울여 듣다 품에 안겨 펑펑 운다. 아이 모습을 보니 나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데 간신히 눈물을 참고 아이를 다독였다.
"학원을 잠시 멈추자."
'안돼. 엄마. 진도가 뒤쳐져. "
"괜찮아. 조금 느리게 가도 큰일이 나지 않아. "
"안돼 엄마. 불안해.."
그 불안함에 잠식당해서 아이가 힘들어하는 게 더 두려운 나는 과감하게 영어학원을 잠시 멈췄다.
충분히 설명하고 지금 이 상태에서 끙끙 참으면서 내달리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이해시켰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우리들은 때론 두려움 때문에 한 가지 방법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좌절해 버린다. 누구나 마음이 약해지면 더 자신감을 잃고 두려워져 버린다.
아직 어린아이. 얼마 전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뭘 그리 완벽해야 할까.
왜 자꾸 다 해내야 한다고 말하며 속도를 내는 것인가.
중학생이 해내야 하는 정도란 과연 어느 정도인가.
어려운 것을 해낼수록 더 성공할 수 있는 것인가.
남들의 속도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보낸 아이들의 어린 시절.
다 보내는 어린이집도 안 갔고 다 시작한다는 학원도 늦게 아이들이 부족함을 느낄 때 시작했다.
그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많이 놀고 많이 읽고 많이 대화하면서 자랐다.
학년이 올라가니 아이들 스스로 불안해할 때가 있다.
특목고, 승진, 취업 면접을 돕는 엄마도 문득 ' 정말 다들 이렇게나 열심히 준비하는구나...' 싶어 음악을 흥얼거리는 아이들을 슬쩍 바라보게 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분명한 것은 남들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해내야만 한다. 남들도 이 정도 하는데 당연히 버텨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
아이들마다 그릇이 다르고 성향, 기질이 다르고 속도가 다르다.
그 속도를 세심하게 알아채고 도와주며 함께 하는 것이 부모라고 생각한다.
학원을 멈춰도 불안해하던 아이가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내 품에 다시 안긴다.
" 엄마 좀 편안해."
마음이 편안해야 다시 힘낼 용기도 생기는 것이라고. 눈물이 나면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니까 ' 어? 내가 좀 많이 힘든가?' 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잠시 멈춰보라고.
이렇게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해주면 엄마도 더 다정하게 도와주겠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한 날이었다.
자기 전 아이가 말했다.
" 엄마 나 학원 아얘 끊지는 않을 거야."
" 그래. 우선 좀 쉬자."
무엇을 위해 우리는 내달려야 하는가.
'돈'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시간이 되는 것처럼 '입시'만을 위해 내달리는 아이들의 공부과정은 그야말로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조금 느려도 자잘한 즐거움을 느끼며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런 애정 어린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빠른 선행으로 앞서가는 쾌감이 아니라 내 속도에 맞게 걸으며 맛있는 간식도 먹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그래서 공부하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찰나가 있네? 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 코딱지만 한 즐거운 기억이 우리를 다시 힘나게 하니까.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보이지 않더라도 잊지 않고 자꾸 상기해야 한다.
' 건강한 마음'
' 행복할 마음'
' 응원받는 마음'
'두려운 마음. 힘든 마음. 슬픈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 긴장되는 마음..'
그 중요한 마음 뒤에 뭔가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다시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