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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길고 뜨겁다

나에게 6학년, 13살은 특별하게 남아있다.

6학년 3반 두 번째 줄에 앉아 담임선생님이 누구일까 설레던 그때 어린 지은이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6학년 3반에는 처음 학교에 부임한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20대 중 후반 사회 첫 경험을 한 청춘의 선생님.


선생님의 열정은 정말 뜨거웠다. 체육을 자주 했고, 운동장에 나가 물감 분무기로 모래를 색칠했고

학예회를 열어 발표를 했고 교실 뒤 사물함 근처에 푹신한 매트를 깔아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고 엎드려 책을 읽었다. 지금 이 말랑말랑한 감수성은 부모님에게 50, 6학년 선생님에게 50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에게 순간순간이 특별했던 것 같다.


좋은 노래를 같이 부르며 외웠다. 생각해 보니 공부보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누구든 소외되지 않게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방법을 다양하게도 알려주셨다. 아이들지기라는 이름을 사용하셨는데 말 그대로 아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선장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글도 별로 공부도 별로 그림도 별로 발표도 별로.. 뭐든 다 그럭저럭 중간정도만 하는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글도 작가가 될 수도 있고 그림으로 화가가 될 수 있고 아나운서가 될 수도 있고 공부로 학자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누구보다 많은 학생이라고 말해주셨다.

중간밖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정도는 다 할 수 있는 아이. 그래서 누구보다 가능성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을 고치게 만들어주셨다.

6학년 3반에서 함께한 친구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만났다. 취업과 결혼과 이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연락을 이어가는 친구들은 많이 없지만 20살 기념으로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제자가 함께 만난 순간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다 첫 책을 출간했을 때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하고 인사드렸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연락을 드리고 고민이 있을 때도 연락을 드린다. 나에게는 영원한 선생님이셨으니까.

그런 나의 영원한 담임선생님이 3월 한 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 취임하셨다. 취임식 자리에 선생님의 첫 제자로서 나를 자리에 초대하고 싶어 하셨는데 일정이 겹쳐 함께 하지 못했다.

새내기 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이 된 시간의 흐름을 떠올리니 정말 놀랍도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만 같다.


따뜻한 선생님과 어울릴만한 것이 뭐일까 생각하다 선물을 골라 보내드리고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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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맛있는 간식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매년 좋은 글귀를 넣은 달력을 보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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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운 받아 한해 한해 6학년 학생 마음으로 힘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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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참으로 길고 뜨겁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행복한 일이다.

좋은 어른들을 보며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나 보다.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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