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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들여다보면 내 삶의 정수가 보인다

[8. 시간을 들여다보면 내 삶의 정수(精髓)가 보인다.]



내가 보내는 시간.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내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삶의 정수가 보인다.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돈하고 혹은 확장하고 있는지, 내가 추구하는 활동은 무엇이며 소비를 할 때 큰 가치의 비중은 어디에 두는지 이 모든 것이 곧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1학년 입학을 할 때 엄마들이 참석하는 반 모임은 당연하게 진행되는 통과의례였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커피 한 잔 마시는 자리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 분위기가 불편했다. 참석해야만 하는 자리, 참석하지 않으면 학교생활에 큰일이 날 것 같이 종용하는 분위기에 저항하고 싶었다. 엄마들끼리 친해야 아이들이 친해지고, 아는 엄마들이 많아야 정보를 많이 얻어 더 나은 미래를 영위할 수 있다는 무언의 압박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정확히 '나는' 불편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공부보다는 뛰어놀고, 책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건 지금도 변함없다. 책 읽을 시간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종 문제집으로 학습을 단련하는 것이 옳은 방향인지 의구심이 든다. 잘 먹고, 편안하게 책 읽으며 좀 더 너른 하게 시간을 보내는 하루. 이런 환경을 맞춰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줄이고 프리랜서 강사로 강의를 하며 칼럼을 썼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 시간은 아이들의 시간대로 흘러갔다. 아이들의 시간이 주고 그 틈새에 내가 추구하는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일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여전히 아이들의 학습환경에 많이 신경 쓰지만 학원보다는 '책'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읽고 쓰는 삶이 익숙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전히 잔소리로 들릴 수 있는 말들을 포기하지 못하겠다. 강의를 할 때도 읽고 쓰는 중요성에 대해 나도 모르게 열변을 토하고 있고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좋아하고 중요한 것. 그것들을 위해 내 시간을 아낌없이 할애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쌓여 나의  삶의 정수가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 달랐다면 다른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패션에 더 관심이 많았을 수도 있고 여러 모임에 참여했을지도 모른다. 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의 경험치를 늘려 주었을지도 모른다.

삶에서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그 삶의 주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 중 나는 '이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랑의 가치에 대해 논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에서 개인의 자유. 선택.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며 살아가고 있는가.

사랑인가. 인류애인가. 평화인가. 성장인가. 권력인가.

아무리 폭넓게 생각해 봐도 반복해서 떠오르는 건

책과, 사람, 그리고 그것과 그들을 사랑하는 나이다.



여전히 나는 혼자 고요히 읽고 쓰는 시간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며 아이의 공부만큼 나의 공부와 성장도 중요하다. 그런 가치관 덕분에 시간을 쪼개며 바쁘게 일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밥까지 하는 초능력을 발휘한다. 톨스토이와 니체가 곳곳에서 표현한 삶에 비하면야 내가 끄적이는 것들은 사소한 일상의 열거 같지만 그 시간이 곧 '나'라는 사실을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내 시간 속에 답이 있다. 내가 추구하는 무언가가 보이고,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들이 즐비하다.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내 시간을 들여다보면 내 삶의 정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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