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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를 던져보는 것

[13. 물음표를 던져보는 것 ]



질문은 무섭다. 귀엽게 생긴 물음표 하나가 머리에 동동 떠다니면서 자꾸 생각하게 하고 괴롭힌다.

맞는지. 틀린 지. 맞는다면 뭐가 맞는지. 이 방향인지. 저 방향인지. 틀린 이유가 무엇인지 집요하게 답을 찾기 위해 사람을 피 마르게 한다. 그런 점에서 물음표는 스스로에게 제동을 걸고 잠시 멈추게 만드는 꽤 현명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질문은 사람을 고민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왜 이럴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갖가지 질문들을 쏟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맞물려 또 다른 생각으로 다다른다.  그 생각함의 반복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지혜롭게 만든다. 변화하게 만든다. 이러한 시간은 엄밀히 따지면 발산보다는 응축의 시간이다.  남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을 위해 행해지는 고독의 시간. 당연한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익숙한 사람이 특별해 보이게 만들기도 하는 신기한 질문의 시간.

표현하고, 실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 잠시 멈춰 질문하고 고민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는  삶을 들여다보며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아닐까.  



'내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인가' 화두를 던지면 내 일상을 되돌아볼 명목 하나가 생긴다. 허비되고 있는 시간이 보이고 버려야 할 습관들이 수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면하지 않고 그 생각의 단편들을 알뜰하게 모아 조금 더 다른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질문 하나로 인해 사유하게 되고, 더 나은 나를 만들게 된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도 잠시 멈춰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같은 부모의 일상적 질문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노동력, 차별, 편견과 폭력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도 우리는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

과도한 업무로 결국 죽음에 이른 노동자의 시간이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청년들의 시간, 고령자라는 이름으로 사회 발 디딜 공간이 좁아진 사람의 시간, 육아노동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조부모의 시간, 타지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시간.. 누군가의 이야기가 곧  우리 삶의 일부이다.



나에 대한 질문에서 가족에 대한 질문으로, 가족에 대한 질문에서 사회 곳곳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태도에서

깊은 사유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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