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선 건 정확히 8시 55분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널브러진 이불을 정리한 뒤 문을 열고 환기를 하며 재빠르게 청소기를 돌렸다. 첫날이니 풀타임으로 일 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부여된 업무가 많을지도 모르니 일단 집은 깨끗하게 하고 나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 아! 설거지.”
아이들이 먹은 아침밥그릇이 그대로 담겨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핸드크림을 바른 뒤라 다시 물을 묻히기 싫었지만 다시 깨끗하게 손을 헹구고 컵 두 개와 밥그릇 2개, 국그릇 2개 그리고 종지에 담겨있던 김치도 말끔하게 닦아냈다.
설거지를 하며 입고 있던 셔츠에 물 자국이 미세하게 남았다.
‘ 에이.. 역시나 엄마의 옷이군.’
오랜만에 다시 향하는 일터. 일터라는 곳은 나에게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다. 늘 바쁘게 뛰어다니고, 정신없이 회의를 했다. 점심을 느긋하게 먹을 수도 없었고 시즌이 바뀌기 전 잡지 콘셉트 회의가 마무리되면 세상에서 가장 피곤하고 가장 성격 급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되어버린 곳이 바로 예전의 일터였다. 그들이 가진 전문적인 무언가는 그들의 리그에서 미묘하게 신경전으로 드러났고 나는 때론 갑으로, 때론 철저한 을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당연한 절차였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일정한 루틴. 아이가 생겨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그래서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였지만 쉽게 나의 루틴을 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서아의 갓난아기 시절부터 예쁜 말을 쏟아낸 시기까지 나는 서아의 엄마라기보다 늘 딸을 애타게 만드는 매정한 엄마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아는 어릴 때 도맡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북한군도 피해 간다는 중2병이 도질 때도 할머니에게만큼은 그렇게 살가운 손녀가 따로 없었다.
왜 엄마한테만 그렇게 못된 송아지처럼 그러냐 하면 엄마는 내 옆구리를 툭 치면서 어릴 때 서운한 거 이렇게 풀어야 되는 거라고 말하곤 했다.
“ 하루 종일 엄마 엄마 기다리다 울며 잠든 날이 몇 년인데 엄마가 이거 못 기다려주나. 쯧쯧-”
“ 정말 둘이 쿵작 참 잘 맞아.”
“ 얼마나 다행이냐. 할미랑이라도 쿵작이 잘 맞으니 마음 붙일 곳 있고. 아이가 거리를 둘 땐 너도 멀찍이서 바라봐. 결국 엄마한테 팔 벌리며 오는 게 자식이니까.”
팀장 직급을 달기 바로 전 해였던 것 같다. 그때 몇 개의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쏟아져 밤낮 기한 내에 해결하느라 야근이 잦았다. 덕분에 만성 위염으로 고생하며 겔포스를 영양제처럼 빨아먹으며 시간을 버텼다. 잘 견뎌내던 서아가 왜 이렇게 칭얼거리며 보채는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는 하루에 몇 번이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 봐라. 서아야 엄마 여기 있다. 엄마 빨리 오세요 해볼까.”
칭얼거리다가도 영상통화를 하며 내 얼굴을 보면 서아는 활짝 웃어주었다. 만약 계속 칭얼거리고 나를 찾으며 울었다면 분명 더 일찍 일을 그만둬야 했을지도 모른다. 고맙고 미안하게도 항상 금방 웃어줬다. 일하는 엄마 마음 편하게 해 준 건, 그래서 전쟁터에서 월급도 더 많이 받고 인정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건 엄마 덕분 그리고 우리 딸 서아 덕분이다.
내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서아와 서우는
“ 지하철 노선표 다 알지?” 하며 웃었다.
“ 저기요 아가씨들?”
등교를 하면서 무심하게 던진 서아의 말 한마디.
“ 잘 다녀와! 엄마.”
어린 딸은 나를 기다려주었고, 때론 이렇게 나를 응원해주기도 한다. 나를 조마조마하게 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엄마 오늘 집에 언제 와? 빨리 와야 해.”
서우는 아직 엄마의 빈자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아마 서아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된 엄마를 기다리며 애타는 시간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집안이 조금 덜 깔끔해질 것이 분명하다. 반찬의 수가 조금 줄어들겠지. 가끔은 빨래를 할 시간이 없어 수건이 없다며 발을 동동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때론 남편과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한다로 다시 철없이 싸울 때도 있을까. 그래도 예전이랑은 마음이 조금 달랐다. 오래 쉬어서 생긴 여유일까, 나이가 들어 생긴 연륜일까. 전쟁터보다는 안전한 공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가지 모두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부터 나는 보라매역에 내려 4번 출구로 수 없이 오고 갈 것이다. 즉, 보라매역은 나에게 단순한 7호선 지하철 노선이 아닌 다시 내 마음을 휘저어놓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0시 30분 출근.
파트타임.
일주일 두세 번, 원하는 요일과 시간 최대한 협의가능.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상황을 이렇게나 배려하며 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일터는 없다. (다신 없을 것이다.) 일확천금을 얻지는 않겠지만 경제적인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도 생길 것이다. 또 누가 아는가, 기획 이벤트가 대박이 나거나 엄마잡지가 건물에 있는 401호가 아닌 건물 전체가 될는지.
내 능력을 발휘해서 엄마잡지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늘 앞서 나가는 이런 생각이 나의 단점이자 거만이라고 스스로 타일렀다. 컴다운 하자 박연수. 그래 너 신난 거 알아. 그래도 진정하고 차분하게 컴 다운.
면접 후 연락을 몇 번 나누긴 했지만 다시 사무실 문을 두드리니 처음과 똑같이 심장이 쿵쿵거렸다. 처음 보는 분이 문을 열어주었다. 아이보리 티셔츠가 하얗고 맑은 얼굴을 더 밝게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성이 가득한 유지성이라고 소개했다. ‘지성이 가득한 유지성?... E다.’
낯선 기색 없이 자기소개를 하며 활짝 웃는 그녀를 보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E성향 일거라 생각했다.
테이블에는 방금 따뜻한 물을 넣은 듯한 카모마일 차가 두 잔 올라가 있었고 작은 접시에는 미니 약과와 유부초밥이 통에 담겨 있었다.
“ 모닝커피가 좋아요? 모닝 티가 좋아요?”
“ 아 저는 아무거나..”
“ 여기는 아무 거나 가 없어요. 분명해야 해. 원하는 걸 알려줘요. 기억할게.”
“ 아우 그렇게 하면 이제 한 가지만 먹어야 되는 줄 알겠어. 지성 씨. ”
목소리 톤이 조금 높은 분은 눈 화장을 진하게 해서 눈에 띄었다. 히피펌 머리에 스모키 화장, 긴 속눈썹 연장이 그녀의 성격을 대변했다.
“ 아.. 그런가. 하하. 에이 저기 음료도 있고, 차도 있고, 커피도 있으니 원하는 것 가져옵시다! 그게 낫지요?”
“ 네- 하하.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 이름이 연수 씨라고 했지요? 이거 먹어요. 내가 오늘 아침에 유부초밥 두 봉지를 싸 왔다는 거 아니에요.”
“ 연희야, 칼럼 메일로 지금 보내놔.”
“ 아 맞다. 알았어요. 정숙언니. 오늘 희라 씨 오는 날이죠?”
“ 응 희라 오늘 오는 날. 희라 오면 회의 시작하자. 희라 오는 날이니 오늘 점심은 비빔밥이겠고만. 아, 연수 씨 희라 씨는 채식주의자라 고기를 안 먹어요. 개의치 말아요. 그 맛있는 걸 왜 안 먹는 담? 우린 많이 먹으니 걱정 말아요.”
10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지만 나는 10시쯤 도착했고 현재시각 10시 40분이 될 때까지 누구 하나 일을 하려고 앉지 않는다.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뭘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애먼 캐모마일 티백만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물을 몇 번이고 다시 부어 마셨다.
“ 연수 씨 지금 세 컵 째다. 그러다 오줌 싸겠어. 지금 미치겠죠. 그냥 즐겨요. 우리도 처음에 만날 때 딱 연수 씨 같았는데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그거 딱 오늘까지다. 이따 회의할 때 우리 미친 듯이 달려드는 거 보면 왜 이리 쉬는지 알 거야. 연수 씨? 그만 마시고 명상해요. 10분 뒤 회의 시작.”
특이한 곳이다. 만만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어쩌지, 일터가 싫지 않다. 일터가 싫지 않다는 것은 이제 일 복이 터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연희 54살. 히피펌.
유지성 48살. 하얀 피부.
임정숙 59살. 요리에 진심.
송희라 46살. 채식주의자.
오늘 서로 주고받은 이름을 혹시나 잊을까 싶어 휴대폰 메모장에 재빠르게 남겼다.
“ 대표님 오늘 나오셨네요?”
임순자 대표님이었다.
“ 오늘 새로운 식구도 있고, 3개월 뒤에 잡힌 큰 행사 이야기도 나눌 겸 들렀지요. 함께 합시다. 오늘은.”
“ 대표님, 오늘 희라 씨 와요.”
“ 하하 그럼 비빔밥이겠고. 아! 거기 황탯국도 팔고 불고기도 팔고 다양하게 다 파니까 걱정 마시고 연수 씨는.”
“ 네! 뭐든 잘 먹습니다.”
엄마 잡지 사무실은 거실로 사용하는 곳에 커다란 대형 테이블이 하나 있고 앞에는 가로 100센티미터는 넘을 만한 화이트보드가 세워져 있었다. 딱 두 가지가 엄마 잡지를 대표하는 것 같았다. 별다른 것들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잘한 것들 사이에 무지막지한 테이블과 무지막지하게 큰 보드 판은 여기서 얼마나 중요한 물건들인지, 얼마나 막중한 임무를 해내고 있는지 위엄 있게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 알로하! 오랜만입니다앗!”
희라 씨다. 긴 롱 치마와 누빔 조끼, 알록달록한 스카프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니. 에코백에는 그래, 너라는 고딕체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딸아이가 학교에서 만든 가방이라고 했다.
희라 씨가 오자 느긋했던 분위기가 일사불란하게 회의태세로 바뀌었다. 한 명의 존재라도 존중하는 마인드를 가진 곳일까 아니면 희라 씨가 막중한 임무를 맡은 1인일까. 오늘 서로의 업무가 공개될 것이고, 나는 그들의 말투나 태도 속에서 그들의 성격을 빠르게 캐치하려 할 것이다. 아마 나 역시 대답과 질문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성격들을 마구 노출하게 될 테고.
지성 씨는 노란색 포트폴리오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커다란 글씨로 이번 달 추진계획인 행사들을 차분하게 써 내려갔다. 느긋했고, 글씨체가 예뻐 눈을 뗄 수 없었다. 달마다 평균 3-4개 정도 행사가 있고 그 행사는 투자자까지 있는 꽤 규모가 큰 행사였다. 엄마 잡지라는 곳은 ‘엄마’만으로 이뤄진 곳은 아니었다. 잡지 속에는 미혼모들의 자립이나, 맞벌이 부모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연계,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의 재취업, 재능을 알아보고 그 재능을 다시 한번 뽐낼 수 있는 기회제공까지 연결고리는 꽤 다양했다. 인상적인 것은 모든 엄마들에게는 ‘엄마’라는 이름은 곧 직업이라고 대우하는 태도였다. 엄마잡지에 투자를 하고, 취지가 맞으면 협업을 하는 잡지회사도 많았다.
가장 먼저 진행되는 행사는 ‘엄마잡지와 함께하는 새로운 나의 일터’라는 타이틀로 큰 틀이 잡혔다. 재취업에 성공한 분들과 현재 새로운 비상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초청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엄마잡지의 특별한 점 한 가지는 달마다 발행되는 표지에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사람을 표지모델로 세워 촬영을 한다는 점이다. 사진 촬영 작가가 석이, 아니 재력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재력이 가 회사에서 나와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은 회사를 그만둔 뒤 종종 주고받던 연락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잡지 사진촬영을 전문으로 하면서 능력도 인정받고, 이쪽에서 평이 좋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데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회사에서 한 번 놀라고, 내 두 번째 회사에서 다시 만난 것은 어떻게든 이어진 인연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한 사람이랑 오래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근데 이 작가 분은 진국이예요. 한 번도 일을 틀어버린 적도 없고, 우리 못생겼다고 뭐라 한 적도 없고 하하”
“ 인물 사진을 기가 막히게 찍어. 연예인들 보면 인물 멋지게 찍어주는 그 작가 이름 뭐더라... 여하튼 그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준다니까.”
우리 둘은 전보다 조금 더 살이 붙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엄마잡지 테이블에서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동시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 흣 – 아 정말!”
사람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니 어머 세상에나. 인연이다. 이게 웬일이니. 엄마잡지 대박징후다. 등등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재력이는 익숙하다는 듯 커다란 손으로 박수를 세 번 치더니 사진 콘셉트부터 확인하시죠!라고 말했다. 등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은 한 여인이 뒤돌아 서있고 고개를 살짝 돌려 바라본다. 정면이 아닌 살짝 아래를 보고 있는 그녀의 아래에는 [내가 두고 온 것들]이라는 작은 글자가 보인다.
재력이 가 설명을 이어갔다. 저번에 대표님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반영해서 이번 잡지에서는 일을 하면서 놓치는 것들에 포인트를 잡고 사진 콘셉트를 잡아봤어요. 돈과 명예 일과 인정이라는 이면에는 사실 나만 아는 ‘내가 놓치고 있는 것,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사진 느낌을 한 번 보시고, 수정은 언제든 회의를 하면서 우린 고쳐나갔으니까요. 하하
콘셉트를 살피자마자 눈에 들어오거나 거슬리는 부분을 말하는 것은 오래된 직업병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컨펌을 더 빠르고 확실하게 받기 위함이지만 아직 정착하지도 못한 낯선 곳에서 직업병이 발동되어 버렸다.
“ 내가 두고 온 것들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부정적인 어감이지 않아요? 일을 위해 뭔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포커스가 과하게 맞춰진 느낌이라..”
지성 씨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역시!”라고 분위기를 맞춰주려 애를 썼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공기의 흐름을 느낀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 그 부분도 한 번 고려해 봐요. 큰 틀에 맞춰 ‘비상’이나 ‘다시 시작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면 표지 느낌은 다르게 가야 하는 게 맞고 양면성이 있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 아 다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가 너무 선을 넘었어요. 불쾌하셨다면 다들 죄송합니다. 직업병이 사라지지 않았네요.”
“ 괜찮습니다. 이런 게 회의죠. 이렇게 합시다! 하고 바로 오케이 나버리면 재미가 없지 않겠어요? 서로 의견도 적극적으로 내주시고 서로 정말 진지하게 고민도 하고! 재미있게 해 봅시다!”
처음 재력이 가 내민 표지사진을 봤을 때 정체되어 있는 내 생각에 한 번 좌절하고, 나보다 몇십 배는 다각도로 생각하는 재력이의 태도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엄마잡지....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푸근한 미소를 떠올렸던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차별을 좀 두면서 생각하자, 고루한 생각이지 않나? 같은 말들을 지껄이며 잘난 척을 하던 내 모습이 스쳐갔다.
“ 재력아 넌 여길 어떻게 오게 된 거야.”
“ 아.. 일이 좀 복잡하긴 한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순자 이모덕에 여기 있게 됐죠 뭐. 순자 이모 가게 문 닫혔을 때 즈음 제 형이 사고로.. 병원에서 3일 버티다 결국 잘 안 됐어요.”
“ 뭐야... 진짜? 왜 아무한테도 연락 안 한 거야 그럼?”
“ 형이랑 원래 오래 묵은 갈등도 있었고 저희 가족사가 얽히고설켜 있어서.. 가족끼리 잘 보내드렸죠 뭐.”
“... 그랬었구나.... 그래 맘 고생했겠다.”
삼촌이 떠났던 때가 떠올랐다. 매번 다 끝내고 나 혼자 죽으면 된다는 삼촌의 목소리가 갑자기 맴돌았다. 마지막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제발 단 며칠만이라도....라는 목소리를 남겨 엄마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던 장면도 떠올랐다.
재력이의 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의 가족은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보내주었을까 상황을 그려보았다. 재력이는 늘 배려심 깊고 따뜻한 아이였다. 어디서든 살갑게 행동해 선배들에게도 칭찬을 많이 받았고 무엇보다 고민에 빠진 누구나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귀를 열어주고, 마음을 내어주는 공감능력이 많은 사람이었다.
“ 형이랑 5년 만인가 다시 만난 날이었어요. 가족에게 늘 상처만 주고 늘 바람처럼 사라지는 형이었는데 5년 동안 연락 한 번 없이 살 줄은 아무도 몰랐어요. 형 때문에 전 뭐.. 집에서 조용히 모범생 아들로 자라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나까지 엄마를 걱정시키면.. 정말 가족이 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20대 중반도 중학생 착한 아들처럼 살았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마 두려움 아니었을까 싶어요 누나.”
나는 말없이 재력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근데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5년 만에 나타나면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게 또 형을 품어 안아줘. 그리고 형은 다시 뭔가에 화를 내 거다 비수를 꽂아버리고는 또 홀연히 사라져.....
그럼 또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형을 무작정 기다려. 그 모습을 나는 착한 아들로 위로하며 또 버텨... 그 지긋지긋한 모습을 원망하면서. 갑자기 형이 또 돌아온 날, 새벽에 짐을 챙겨 나가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리고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3일 후에 떠난 거고.. 다시 떠난 거죠 형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아빠 엄마가 형의 팔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우는데 나만 눈물이 안 나는 거예요. 나쁜 새끼지.. 가족이 잘못됐는데 눈물 한 방울 안나.. 근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순자 이모님이 떠오르더라고. 왜인지 모르겠는데... 상 치르고 소주 한잔 하려고 가게에 들렀다가 간판이 없어진 걸 보는데 그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뭔 기분인지 모르겠는데 진짜 어린애처럼 이모 가지 마 이모 어디 있어 소리 지르면서 울부짖었다니까...”
재력이는 이모를 찾아 헤맸다. 나보다 먼저. 그리고 이렇게 연결이 닿아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 우리 보면 말이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참 끈질기다 싶다. 우리 참 끈질긴 희망 그거 하나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지?”
나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왜 모두 알 것 같았을까. 지켜보는 사람이 더 힘든 사랑도 있는 법이다. 놓아버릴 수 없이 애증으로 묶인 끈질긴 희망, 끈질기게 희망을 품고 나아가려는... 끈질긴 희망. 나는 모든 이의 삶이 어쩌면 끈질긴 희망 아닐까 생각했다. 마음 같아선 순자이모와 나 재력이 셋이 원형 철판 테이블에 둘러앉아 소주 한 잔 먹고 싶었다. 끈질기게 희망을 품으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갔던 예전의 그날처럼...
“엄마! '엄마'가 무슨 뜻인지 알아”
서우가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 엄마는 음... 아이를 낳고...”
“ 땡!”
“ 놀라라. 너무 야박하게 땡! 하시네 우리 딸?”
“ 선생님이 오늘 학교에서 말했는데 엄마는 엄청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이르는 말이랬어.”
“ 엄청난 마음?”
“ 응! 엄! 엄청난!! 마!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
“ 하하 오늘 글자로 삼행시 만드는 날이었구나?”
서우네 반 선생님은 금요일마다 다양한 글자로 이 행시, 삼행시를 만들게 한다. 아이들의 삼행시를 읽다 보면 ‘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정말 기발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모두 잠재적인 카피라이터라는 생각도 들었다.
디렉팅을 할 때 칼럼이나, 기획안 주제를 늘 고심했었다. 그때마다 반짝이는 문장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며칠을 끙끙거릴 때가 있었고 연차가 쌓이자 후배들이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 더 창의적인 대안은?” 지껄이는 선배가 됐다. 아이들을 회의에 참석시키면 누구보다 반짝이는 생각을 훅 던지고 사라질 것 같았다.
서우는 뭐라고 했어?
“ 엄: 엄마 / 마: 마요네즈 어딨 어?”
“..... 아 서우가 자주 하는 말이네?”
“ 크크크 ”
후원금 1억 원. 우선 놀라운 금액이었다.
이곳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이 엄마 잡지는 꽤나 촘촘한 네트워크라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의 엄마이며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할머니, 누군가의 딸,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지지해 주는 또 옆의 사람들이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엄마잡지의 행사는 독특했다. 먼저 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언제 이번 행사를 개최하냐는 문의를 주는 것부터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 도대체 왜!’
“연수 씨, 신기하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뭔가를 위해 함께 달려가고 기부하고 후원하는 모습. 예전 회사랑 느낌이 조금 달라요? 늘 처음 참여하는 분들이 이곳의 분위기가 특별하다는 말을 자주 해서요.”
“ 생각보다 후원금 금액이 꽤 큰 것 같아서.. 다들 좋은 일에 동참해 주시는 모습이 대단하세요. 가족은 가족이지만 뭔가 대가족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하하”
연희 씨가 웃으며 말한다.
“아너 소사이어티 있잖아. 1억 이상 기부하는 고액 기부자. 그런 사람들이 돈이 남아돌아서 기부하나? 아니거든. 기부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은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고 실현하는 거야. 나도 여기 와서 그런 걸 많이 배워. 혼자 움켜쥐고 잘 사는 그런 삶 말고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고 우리 같이 잘 살아 봅시다! 하는 그런 마음 같은 것 말이야.”
월급을 모으기 바빴고, 성과급에 혈안이 된 적도 있었다.
모으기에 바쁘기만 했지 누군가를 위해 가치 있게 돈을 쓴 적은 없는 것 같았다. 후원을 해주시는 대부분은 엄마잡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미혼모 지원, 한 부모 자녀 지원, 육아 돌봄을 위한 대책 마련지원 등 여러 부분으로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한다고 하셨다. 단순히 여성을 돕는다는 의미보다는 더 넓은 의미의 ‘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노력을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해 주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었다.
아주 소소한 잡지 발간이나, 엄마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를 진행하는 줄 알았던 나는 뒤늦게 큰 판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혼돈에 빠졌다.
몇 번의 회의 끝에 전체 콘셉트는 희망으로 잡혔다. 조금 더 밝은 이미지로 사진을 찍고 문구를 변경했다. 잡지 발행을 처음 참석하는 사람은 무조건 칼럼 하나를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에 얼떨결에 A4반장짜리 짧은 칼럼도 써내야 했다. 마음이 바빴고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한 편으로는 내 실력이 아직 이 정도라고 드러내고 싶기도 했다.
데드라인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날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모니터 속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 바라보았다. 모니터 하얀 종이 안에 모든 이들의 삶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고단함이 격하게 공감되자 눈물이 핑 도는 것 같았다.
엄청난 마음을 가진 모든 이들. 그들은 누군가를 위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니었을까.
나의 부모, 나의 남편, 내가 힘들 때 마음을 열어주고 시간을 내어준 고마운 사람들, 삶의 끝자락에서 삶을 부르짖으며 희망을 갈구하던 사람들과 그런 사람을 쓰러지지 않게 꽉 붙들어준 가족들, 차별과 핍박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굳게 선 사람들.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을 건네며 끈질긴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구차하게 보일지라도 끈질기게 삶을 부여잡고 희망으로 걸어가는 자의 뒷모습을 우리는 존경하고 손뼉 쳐야 한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아가려는 용기를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숱한 날 넘어지긴 했어도 상처가 났다며 포기하고 퇴직하지 않으며 버텼다. 나는 왜 버틸 수 있었던 것일까. 함께 나와 나아가야 할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나 역시 ‘희망’을 갈구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경자고모가 아무리 가슴에 뾰족한 화살촉을 수십 개 날려도 근처에서 엄마를 보호해 줄 호위무사는 단 한 명이라도 존재했다. 우울하고 슬픈 날들을 공감해 주고 위로를 건네주는 가족과 친구들 역시 서로를 끈질기게 토닥이고 응원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줬다.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이자 대단한 존재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끈질긴 희망을 지닌 당신들]
박연수
끈질긴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얼마 전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사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만날 수 있었다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살았던 나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녀와 나의 추억을 곱씹었고, 순간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의미일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쉽게 누군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 때문이고 믿음 때문이며, 희망 때문이다. 그 희망이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하고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사람의 다리를 움직이게 만든다.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 적이 있는 당신이라면 당신 역시 끈질긴 희망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 빛이 되어준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조용히 손수건을 건네주는 것, 소주 한 잔을 함께 기울여 주는 것, 날카로운 말을 듣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을 꼭 안아주는 것, 안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는 것.. 이 모든 행동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끈질긴 희망에서 비롯된다. 나는 일터에서 바쁘게 지내던 시간을 지나 경력이 단절된 한 사람으로서 한동안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간간이 일을 했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하는 회사원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하루였다. 바쁜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빨리 퇴근하기만을 기다렸고 나는 그 아이들과 가족을 생각하며 고단한 시간을 버텼다는 생각을 한다. 그 시간 나 대신 아이를 도맡아 돌봐준 엄마는 자식이라는 희망을 끈질기게 부여잡고 애써주셨다는 걸 이제 마음 깊이 알게 된다. 혼자 일구는 삶은 있을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끈질기게 응원하고, 끈질기게 희망하며.. 그렇게 버티는 것 아닐까. ‘ 난 당신을 끈질기게 응원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희망이 보여요.’라는 끈질긴 메시지가 우리를 다시 일어나게 한다. 나는 당신을 끈질기게 응원할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어떤 고민을 지니고 실의에 빠져있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끈질긴 희망을 가질 것이다. 끈질긴 희망을 지닌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끈질긴 희망만이 답이다.
메일로 칼럼을 전송했다.
-와 누나! 선배. 글 이대로 그냥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사진 콘셉트랑도 잘 어울리고 좋은 데요?
재력이 에게 문자가 왔다.
응 한 번 회의시간에 살펴보고 수정할 부분 있나 확인해 보자. 땡큐.
임순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은 임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을 응원하며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허름한 돼지 갈빗집에 오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울 언니 순자언니도 빨리 돌아오라고.. 끈질기게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지금 임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은 임순실이라는 한 사람을 끈질기게 추억하고 기억하며 이곳에 서있다. 잠시 뒤엉키고 뒤바뀐 이름이었지만 임순자라는 이름은 누군가에게 희망이었다.
재력이는 순자라는 이름 때문에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인생에서도 임순자, 그녀의 지분을 생각했다.
“ 선배, 우리 근데 임순실 이모님이라고 안 하고 임순자 이모님이라고 계속 부르는 거 알아요?”
“ 그렇네. 너무 익숙하니까. 그냥 우리에게는 영원한 순자이모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 그렇죠?”
세월이 참 빨리 흘러간다. 아이들의 키가 훌쩍 커있고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소복하다. 나와 아이들도 이리 달라진 시간인데 그 시간 속에서 작아진 부모님의 얼굴은 말해 무엇할까.
“ 선배 뭐 다른 계획은 없어요? 여기서 계속 일하는 거예요 아님 다른 쪽으로 다시 알아봐요?”
“ 왜 나 스카우트하게?”
“ 능력자 분을 제가 감히 어찌.. 스카우트합니까.”
“뭐든.. 끈질기게 해 보는 거지 지금처럼.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디서든 길은 생기는 법이니까. 안 그래?”
재력이 웃는다. 나도 웃었다.
“ 그래 예전이나 지금이나 끈질기다 정말 우리.”
그래서 이렇게 웃잖아요.
2024년 엄마 잡지는 희망 어워드라는 이름으로 공모전을 개최했다. 모든 이의 희망을, 희망을 부여잡기 위한 애씀을 글로 녹여내면 되는 수필 공모전이었다. 몇 명의 지원자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무려 첫 공모전에 4천 명이 넘는 지원자가 지원했다. 놀라운 수치였다. 그들의 글을 읽고 간행물에 꾸준히 글은 올라간다. 그들은 아마 나의 글이 언젠가 간행물 안에서 발견될 거라는 끈질긴 희망으로 다시 글을 쓰게 될지 모른다. 임순자대표님, 아니 임순자 이모가 바란 것이 이런 모습 아니었을까. 희망이 희망을 부르는 선순환 효과.
“ 잘했다 연수야. 내가 오늘 맛있게 겉절이 담아 놨으니 따신 밥에다 많이 먹고 힘내자. 인생은 다 그런 거야.”
퇴근길 올려다본 하늘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다.
주황색,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이 섞인 그럴싸한 노을빛이 언젠가 본 유화작품 같았다.
노을을 타고 순자이모의 목소리가 귀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