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뵙기로 하죠.
장소는 다시 한번 보냅니다.
지도 함께 첨부합니다.
블랙 정장을 꺼내놨다가 너무 과한 듯싶어 다시 넣고 블라우스와 슬랙스를 꺼냈다. 남편에게는 오늘 면접을 따로 말하지 않았다. 알아서 결정하라는 무심한 대답에 상처받을게 뻔하고, 일을 하든 안 하든 그와는 어쩌면 별개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아이들 교육이나 육아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여행이나, 집안의 대소사, 주말 아이들이 칭얼거리지 않는다면.
평일 대부분 시간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엄마의 시간으로 채워졌고 부탁했던 남편 육아휴직 신청도 결국 하지 않고 아이들은 초등2학년을 넘어섰다. 직장 후배들이 육아휴직을 하는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결정이라고 얘기하지만 정작 자신은 일터에 매달린 채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걸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가 아파도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다행이다. 학교 행사가 있어도 엄마가 있으니 다행이다. 뭐든 엄마 덕에 다행이다.라고 말할 거라면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은 다행이지 않아 어찌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엄마가 집에 있는 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 나는 그냥 있는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회사생활을 떠올리며 남편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생각하며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단순하게 결론내렸
다.
그래, 온전히 아이들이 필요할 때 달려갈 줄 사람이 있어 다행인 걸로. 남편이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건 다행인 걸로.
내 덕분에 가정이 평화로울 수 있다고 자위했다.
“ 내일 어디가?”
평소보다 분주하게 거울 앞에서 이 옷 저 옷 걸쳐보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물었다.
“ 응 잠깐 볼일.”
“ 어디?”
“ 그냥 아는 사람 만나.”
“ 그래. 애들 오기 전에 들어와?”
“ 응”
누구를 만나는지 궁금해서 질문했다면 나는 상황을 설명해 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태의연하게 설명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오랜만에 화장품들을 다 꺼내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일 할 때 아침에 앉아있던 화장대는 처분한 지 오래였다. 거실에 앉아 기초제품을 바르고 선크림을 펴 발랐다. 광대근처로 올라온 거뭇한 기미가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예전에 주기적으로 피부과에서 미백 케어를 받거나 리프팅 시술을 받기도 했지만 주기적으로 가지 않으면 결국 다시 돌아오는 중력의 힘에 굴복당한 뒤로는 조금 편하게 얼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 내 팔자주름이 짝짝이네?”
화장을 하면 얼굴의 장. 단점이 더 눈에 띈다. 20대 때부터 방송화장을 하면서 얼굴이 더 예뻐 보이는 법,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아버린 나는 화장을 잘하는 편이었다. 직장에서도 꼭 아침에 화장을 단정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섀딩이나 눈썹 마스카라까지 풀 메이크업을 했다. 화장을 두껍게 한 날일수록 덜 피곤하다고 느꼈는데 일을 하면서 나오는 나의 기름이 보기 좋게 얼굴에 광택을 내줘 아름답다며 스스로 도취됐던 다소 민망스러운 과거가 있었다.
거울 속 기름기가 쏙 빠진 마흔 중반의 여성은 지금 면접을 위해 화장을 한다. 박연수의 화장법은 달라진 게 없지만 통통하던 볼 살이 빠져 광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나는 광대 끝에서 안쪽까지 은은한 브라운 계열의 치크로 분위기를 냈다.
눈썹을 따로 정리하지 않았지만 아이브로우로 듬성듬성한 눈썹까지 메꾸니 한결 생기 있어 보였다. 뷰러로 속눈썹을 올리다 속눈썹 한 가닥이 빠져 눈물이 났다. 눈물 덕에 피부 메이크업이 눈물자국대로 지워져 다시 스펀지로 톡톡 눌러 수정하느라 신경이 거슬렸다. 마스카라를 칠하다가는 붓으로 눈알을 찔렀다. 다시 눈물이 나서 스펀지로 수정을 했다.
수정을 하니 아까 가려졌던 광대 위 기미가 보여 컨실러로 다시 덧칠했다. 마스카라가 마르기 전 재채기가 나와 눈이 감기는 바람에 눈 아래 마스카라 자국이 그대로 도장 찍혔다. 젠장.
결국 면봉 하나에 워터클렌저를 살짝 묻혀 살살 닦아낸 뒤 피부화장을 다시 했다. 젠장. 계속 계속 다시 했다. 다시 덧칠해진 눈 밑 부분은 자세히 보면 색감이 달랐다.
‘이 정도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 ’
세수를 다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싹 화장을 고쳐버릴까... 고민을 수백 번 하다 말았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바지도 어색하고 블라우스도 어색하다. 머리도 어색하고 화장도 어색하다. 립스틱을 바르고 활짝 웃으니.. 웃음도 어색하다. 어색한 박연수여. 그대는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자주 하던 화장도 잠시 내려놓으니 어설픈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차를 가지고 가려다가 주차할 때가 있는지 확인하는 걸 깜빡했다는 것을 깨닫고 지하철 노선표를 검색했다. 그리 멀지 않았고 한 번만 갈아타면 되니 이 시간에는 자가용보다는 지하철이 편할 수 있겠다 싶었다. 9센티미터 스틸레토 힐을 신었다가 착용감이 별로라 그보다 조금 낮은 6센티미터 구두를 신었다. (사실 오랜만에 신어 어지러웠다.)
‘키가 좀 커 보이는 게 좋은데... 그래도 불편하면 고생이니까.’ 열 살이 어렸더라면 분명 불편함을 감수하고 9센티미터 힐을 선택했었을 것이다. 6센티미터 그 신발은 쉽게 발이 피곤해지던 내가 특별히 수제 구두 집에서 주문한 신발이다. 닳아 없어질 것을 대비해, 또 그 가게가 돼지갈비 집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해 거금을 3켤레를 맞췄다. 신발 앞 쪽 바닥에 고무창을 특별히 달아주셨는데 그 구두를 신은 날에는 깜빡거리는 횡단보도도, 지하철이 도착했다는 음성을 듣고 또각 거리며 전속력으로 뛸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져 수제 구두 집에는 가지 않았지만 사실 구두 신을 날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발이 붓는지 사이즈가 살짝 작아진 느낌이 들었었는데 오늘 신으니 신데렐라 유리 구두처럼 발이 쏙 들어가서 기분이 좋았다.
“ 좋았어.”
지하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폰을 보느라 머리를 박고 있었다. 박옥분 여사 같았다. 할머니는 목에 힘을 바짝 주고 고개를 추겨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었는데 아래로 고개를 처박은 그들에게는 고개를 들 작은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바깥 날씨가 청명했다. 계절이 또 한 번 바뀌어 가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공기에서도 느껴지는 계절의 느낌이 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나무 색이었다. 가지의 느낌, 잎의 색이나 풍기는 풍경 등이 가장 먼저 계절을 알리는 신호등 같았다.
엄마 잡지라는 회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지하철 출구로 나가 건물을 찾으니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보였다. 바로 옆에는 세무사, 회계사라는 글씨들이 반복되고 있는 건물이 보였는데 거기 아주 작은 간판 엄마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 여기는구나.”
합격을 위한 면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괜스레 심장이 콩닥거렸다. 혹시 임순자 이모님이 날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이 너무 지난 것 아닐까. 돼지갈비 집 언급을 혹시 싫어하시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찾아도 돼지갈비 집 이야기가 없던 것이 이상하고 신경 쓰였던 나는 그녀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지로 머리가 복잡했다.
건물 앞에서 남자 두 명이 담배를 태우다 내가 지나가자 고개를 돌려 건물 구석으로 들어갔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블라우스에 스며들었을까 봐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코를 몸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이제 문을 두드리면 누군가 나를 향해 인사를 하고 안내를 해줄 것이다. 면접이 길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대충 대답하지는 말자. 이력서의 소설은 나의 앞날을 상상하며 적은 것이라고 이실직고하자.
“ 안녕하세요.”
문이 열리자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입이 너무 커서 치아가 다 보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도 더 밝게 인사를 해야 할 것만 같아 “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했다.
“ 여기 오셔서 잠시 앉아계시면 따뜻한 차 한 잔 드릴게요. 대표님이랑 실장님은 지금 미팅 중이시라 10분 정도 뒤에 나오실 거예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아, 네. 감사합니다.”
여자는 다시 한번 큰 입을 벌려 치아를 활짝 보이며 웃었고 녹차 한 잔을 나에게 건넬 때도 치아를 한 번 더 활짝 보여주었다. 웃음이 그녀의 건치를 더 빛나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테이블 위에 다양한 도서들과 잡지, 종이 묶음들이 가득했다. 여기가 사무실이 아니라고 했다면 도서관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책장에도 책들이 가득했는데 책장 앞쪽에는 대표님이나 여기서 함께 힘을 모으는 사람들의 행사 사진, 인터뷰 자료 등이 액자에 정갈하게 넣어져 있었다. 간간이 상장도 보였는데 멀리 있어 글씨가 보이지는 않았다. 기사를 검색해 본 내 추측이 맞다면 지역에서 지역 한 부모 엄마들을 위한 사회공여로 받은 상장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전화통화로 들었던 음성을 듣고 의자를 빼 일어났다.
“ 앉으세요. 연수 씨. 오랜만이죠?”
“ 순자이모, 아니, 대표님 안녕하세요. 임순자 대표님 맞으시죠?”
“ 맞아요. 임순자. 연수 씨가 돼지갈비 집 단골손님 맞죠? 동생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내가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가게를 동생이 도맡아 다 관리해줬어요. 아 동생 이름은 임순실이에요. 순실이.”
“ 아 간판에 있는 이름만 생각하고서.. 얼굴이 너무 닮아서..”
“ 쌍둥이니까. ”
“ 정말요?”
인자한 미소처럼 보이지만 호탕한 성격이 엿보이는 표정은 내가 알던 돼지갈비 집 사장님이랑 똑같았다.
쌍꺼풀 수술을 했어도 내 눈에는 두 자매가 영락없는 쌍둥이처럼 느껴졌다.
“ 순실이 이모님은.. 잘 지내시죠?”
“ 순실이는 저 멀리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순실이가 혹시 내 병간호하면서 몸이 나빠진 건 아닌가.. 돼지갈비 집 혼자 지키면서 힘든 건 아니었을까.. 돼지갈비 집 얘기를 꺼낼 수가 있어야지. 미안한 게 많은 언니라... 그래서 대신 이렇게 좋은 일 하면서 사는 중이에요. 동생에게 마음이 빚도 갚고 좋은 어른으로 나이도 들고.”
기사에서 돼지갈비 집 이야기를 쉽게 찾기 힘들었던 이유가 언니의 이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더 관심 있게 찾아보지 못했던 것일까. 다시 한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왜라고 묻고 싶었지만 질문이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놀랐지요.”
“ 네....”
동생을 잊으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자꾸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마음이 내려앉아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게 된다고. 우연히 이력서를 보다가 경력에 순실이가 얘기했던 회사이름이 보여 유심히 봤다고. 내가 궁금하고,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고, 능력은 이력서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된 것 같고, 혹시 함께 일 할 생각 있는지 면접에서 물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 대표님 사실... 이력서에 있는 소설은 앞으로 써서 출간하고 싶은 책을 미리 써놓은 거라 올리면 안 되는 부분이었어요.”
“ 하하 좋아요. 이건 체크.”
“ 그리고... 이모님에게 마음에 빚이 있어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온 게 사실 더 커요. 그리고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아직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정확한 답을 모르겠어요.”
“ 정확한 답을 안다고 얘기 안 하니 더 합격. 그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도 1년 지나고 또 한 해 지나면서 고쳐나가 일궈낸 것들인데.. 그래요. 아이들이 중학생, 초등학생이라고 했죠? 아직 아이들에게 해줄 것들이 있어 어떤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을지 내가 다 알아요.”
다시 당장 일을 시작하면서 바뀌게 될 집안의 공기를 상상했다.
아이들의 간식, 일정하지 않은 출퇴근 시간, 아이들이 아플 경우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 등등 아이들이 어릴 때 무턱대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겼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상상을 하다가 눈 한 번을 다시 깜빡이니 거실에 서있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도대체 나에게 지금 간절한 것이 무엇인가.
일인가. 탈출구인가. 사람인가. 사랑인가. 관심인가. 인정인가. 돈인가.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인가.
본질적인 질문,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나는 지금 여기 왜 와있는가에 머물러 있었다.
“ 파트타임으로 조금씩 일을 한 번 해봐요. 잡지사에서 발휘하던 실력 다시 발휘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가정에서 다시 일터로 갈 때 너무 무리하면 탈 나. 우리도 그런 것은 원하지 않고. 우리 회사의 취지는 엄마의 재능을 발휘해 보자! 다시 서로 인정해 주자. 이 거 하나니까. 연수 씨는 워낙 일에 욕심 많고 똑 부러진다는 말을 순실이에게 많이 들어서 이미 다 알고 있어요. 한 번 고민해 봐요. 우린 언제든 환영입니다.”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때도 들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냈을 때. 모든 사람들은 잘 지내고 또 보자고 언제든 환영이라며 웃으며 날 보냈다.
가벼운 인사치레일 수 있는 그 말이 난 얼마나 고마웠던가..
역시 나의 사람들, 나의 시간들이라며 얼마나 감동에 마음 따뜻했던가.
사무실을 나오는 길, 대표님은 나가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 내 동생 겉절이를 가장 사랑했던 분이라고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어요. 분명 거길 찾아올 텐데 건물이 허물어져 실망할 거라고 그 성격에 악을 쓰며 울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회사에 가서라도 꼭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전해달라고 말했어요. 내가 너무 늦게 갔어.. 미안해요 빨리 가서 전하지 못해.”
“ 아니에요. 무슨 그런 말씀을요.”
“ 어릴 때부터 희생만 하다 간 아이라 마음에 생채기가 되네.. 순실이 생각하면서 이 늙은이가 이렇게 힘을 내서 일을 하게 된답니다. 살아야지 두 배 몫으로. ”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남편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 주부터 일 하게 됐어.
-잘됐다. 정말 축하해.
무슨 일을 하는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을 하는지, 하는 업무가 무엇이며 얼마를 버는지 등등등 궁금한 것이 많지만 남편은 애써 질문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며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에서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한 사람의 모습이 마치 내 인생처럼 느껴졌다. 나는 휘청하는 것일까, 달리고 있는 것일까.
6센티 지상 위에 두둥실 떠있는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지하철 손잡이를 꽈악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