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할머니. 모두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아마 목포가 고향이거나, 목포에서 살았었거나, 자식들이 목표에 있을 거라고 혼자 추측하며 머리를 말렸다. 가족이름이 통용되고 내 거주지가 드러나며 남과도 가족 같이 끈끈함을 공유하는 수영장은 그런 곳이니까.
수영장에서 가장 연세가 많을 것 같은 목포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해 지상에서 걸을 때 엉거주춤한 자세가 됐는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렇게 느리고, 그렇게 굽은 자세로 지상을 걷다가도 물 안에 들어가면 유유히 헤엄치는 한 마리의 커다란 고래 같았다. 물고기보다는 고래가 떠오르는 기품 있고 거대한 느낌이었다. 키판을 잡고 발차기 2번을 하며 오고 가는 동안 우리는 눈인사를 한다. 그리고 잠시 서서 강사님의 다음 오더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소소한 일상을 묻기도 한다.
낯선 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미소를 건네고, 안부를 건네는 것은 어쩌면 ‘내 하루에 당신도 일부 포함되어 있답니다.’라는 무언의 존중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수영장에서는 수영 말고 여러 가지를 배운다. 지금처럼 낯선 이와 소통하는 법, 무던하게 넘어가는 것,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인내하는 것, 어르신에 대한 예의 또는 나보다 어린 사람을 존중하는 배려 등등.. 몇 주 보이지 않던 할머니 다리에 멍이 가득한 걸 보고 샤워실에서 말을 걸까 하다 괜히 꺼내기 싫은 치부를 건드는 것은 아닐지 주춤하며 입을 닫았다.
“ 지구력이 정말 최고이세요!”
연세가 많은 분들은 힘보다는 지구력이다. 제 아무리 속도를 내서 몇 바퀴를 도는 젊은이들도 20바퀴 이상 호흡 조절하며 쉼 없이 헤엄치는 분들을 따라가기 힘들다. 나이를 믿고 힘으로는 까불 수 있어도 지구력으로는 까불면 큰코다치는 곳이 바로 이 수영장이다.
“ 다 늙은 사람들은 치료하러 오는 거야. 물 안에서는 관절이 덜 아파. 슬렁슬렁 운동삼아 하는 거지.”
이렇게 한 번 대화를 주고받으면 이 공간에서 만큼은 등도 밀어주고, 수건이 없으면 대신 빌려와도 주고, 샤워실 자리도 선뜻 내어주는 깊은 인연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짧은 대화로 ‘깊은 인연’이 되었다. 세대를 초월한 우리의 대화는 꽤나 재미있었다. 근처에 생긴 한식 뷔페집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트로트 노래를 공유하기도 했다. 지금은 눈이 침침해 책을 읽기 힘들지만 젊을 때 책을 좋아했다는 할머니 말에 나는 내 책 한 권을 고르며 큰 글자 책을 한 권 더 샀다. 두껍지 않고 행간이 넓어 읽기 더 편한 시집이었다. 책 한 권을 선물해 드리려고 가져간 날 나는 무말랭이 선물을 받아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 만든 무말랭이무침을 나에게 먹여야겠다며 가져오신 것이다. 이렇게 뭔가 자꾸 나누며 정이 깊어지는 곳.. 여긴 이상한 곳이다.
“ 목포 형님은 손녀가 생겼네!”
오며 가며 장난스럽게 묻는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 이런 손녀만 있으면 내가 집도 사주지!”
라고 말하곤 했다. 눈 마주치면 하는 인사가 뭐 그리 고마운 일인가 싶어 멋쩍게 웃으면 내 등을 토닥거려 주시며 다시 한번 “예뻐 예뻐. 노인네한테 인사도 잘해주고 예뻐.” 하고 말했다. 가끔 가방을 느리게 뒤적거려 작은 플라스틱 통을 꺼내곤 가져온 요구르트나 작게 잘라온 감자나 고구마 조각을 내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정말 우리 할머니 같이.
나는 등이 굽어 걸음을 느릿하게 걷고, 지상에서의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한 마음이 드는 목포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였다. 월, 수, 금 반은 월요일에 오리발을 착용하고 수영한다. 2 레인 중급반이 되면 로켓처럼 빠르게 물을 가를 수 있는 오리발 착용이 가능한 것이다.
“ 오늘 날아다니다 수요일 날 또 죽어나겠지.”
월요일 날은 오리발 덕분에 빠른 속도로 더 수월하고 즐겁게 수영을 해서일까 결석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샤워 실도 가장 붐비는 날이었고.. 아차! 샤워실에 오리발을 두고 와 다시 들어가는 중이었다. 샤워실에서 비누로 수영복을 문지르는 목포할머니가 보였다.
“ 안녕하세요. 오늘 좀 늦으셨네요.”
“ 조금 늦게 나왔는데 많이 늦게 도착해 버렸네. 다리가 아파서 영 걷기가 힘들어.”
“ 도와드릴까요?”
“ 어이 들어가. 천천히 하고 갈게.”
비누거품 때문에 바닥이 꽤 미끄러웠다. 순간 수영복을 입으려던 할머니는 중심이 흔들려 휘청거렸고 나는 팔을 잡았다.
“늙으니 앉았다 서는 것도 일이야. 일. 큰일이지.”
“에이 무슨 말씀을요! 물속에서 오늘도 가뿐하게 헤엄치실 거 저 다 알아요.”
우리는 조금 늦은 수업 시간, 나란히 수영장 문을 열고 레인으로 들어갔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속도를 늦춰 속도를 맞췄다. 느릿느릿 걸음도 동작도 느렸지만 지금껏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온 인생이었을지 두꺼워진 관절마디를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다.
“ 계단에서 굴러서 2주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았어. 다리가 흉했지?”
“ 어머! 진짜 큰일 날 뻔하셨어요.”
“ 넘어졌다고 얘기하면 늙은이 소리 들을까 봐 물어봐도 입 닫고 얘기 안 했어. 비밀이야 비밀.”
“ 쉿! 입 지퍼 닫을게요.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에요.”
1년 치 넉넉하게 사서 엄마에게 보내드린 관절 영양제 중 2통을 엄마가 내게 주었다. 무슨 관절약이냐며 선반에 넣어뒀는데 꺼내 가방에 넣었다.
‘ 수영 가서 드려야지.’
마음이 쓰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관심이다. 목포 할머니는 티켓 한 장을 건넸다. 늘 내가 한 발 늦는다.
“딸이 준거야. 난 다리도 그렇고 가기 힘들어. 뭔지 모르지만 좋은 거라고 하니 넣어 가져가봐.”
“ 진짜요....? 너무 감사해요... 저도 드릴 게 있는데... 이건 저의 사랑이에요.”
“ 아고 내가.. 정말...”
목포할머니가 울었다. 고마움의 눈물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냥 꼭 안아드렸다.
티켓에는 프리다칼로 그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리다칼로, 프리다 칼로 전시회였다.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처음 접한 프리다칼로의 그림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부러진 척추]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지진으로 갈라진 텅 빈 땅 위에 온몸을 관통당한 채 서있는 프리다칼로의 표정은 고통과, 체념, 불굴이라는 단어 그 어딘가였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완성한 작품일지 궁금했다. 뭔가 기괴하게 느껴지던 사진을 다시 보게 된 건 집안을 정리하며 발견한 옛날 노트 때문이었다. 이사준비를 하며 책장 속 책들을 따로 빼놓다 대학생 때 쓰던 유물 노트를 발견한 것이다. 두꺼운 스프링 연습장인데 몇 장 쓰지 못해 버리지 않고 그대로 꽂아 놓은 듯싶었다.
“이 사진을 내가 프린트까지 해놨네?”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미술 교양수업일뿐이었는데 사진 한 장을 프린트까지 해놨던 이유가 잘 생각나지는 않았다.
수영복을 수건에 감싸 꽉 짜며 전시회 일정을 확인했다.
“ 내일모레 가면 되겠다.”
아이들도 늦게 오고 둘째도 와서 바로 학원을 가는 날이니 다른 요일에 비해 시간이 한가한 요일이었다. 일은 다음 달부터 시작하니 어쩌면 내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문화생활일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려보니 회사 그만두면 여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다 하면서 살 거야!라고 외쳤던 모습이 스쳐갔다. 일을 그만뒀지만 여유롭게 전시회를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목요일은 수영을 가지 않는 날이었다. 월, 수, 금 수영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며 문득 생각했다.
‘하.. 수영 집착.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 딸 맞구나.’
차를 가지고 갈까 하다 지하철을 탔다. 사는 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교통편이 좋다는 것이다. 지하철, 버스 모두 이동 편이 좋으니 운전을 할 필요도 없었고 불안한 주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랜만에 혼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읽으면 딱 좋겠다 싶었다. 책을 가방에 넣고 여분의 마스크를 하나 챙겼다. 전시회에 가기 전 도서관에 들러 [프리다칼로] 책 한 권을 대여해 놨다. 여러 책들 중에 설명이 자세하고,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선택했다. 지하철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와이파이가 너무 빵빵한 것이 대한민국의 독서율을 떨어뜨리는 데 크게 한몫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기계에 온 에너지를 쏟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경을 코 중간까지 내려쓰고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책에는 인덱스가 색깔별로 붙여있었는데 나와 독서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아 계속 눈이 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인덱스나 포스트잇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책을 지저분하게 읽는 편이라 대여보다는 구입해서 편하게 읽는 편인데 집안에 책들이 넘치고 쌓이다 보니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대여를 해 깔끔하게 읽는 방법도 터득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덱스다. 파란색 인덱스는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발견하거나, 감동받은 순간 붙여놓고 빨간색은 궁금하거나 깊이 있게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붙여 놓는다. 노란색의 경우 내가 일적으로 활용할 만한 자료다 싶으면 붙인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책 한 권이 멈춰진 신호등 같기도 한데 가족들은 책 한 권을 참 저돌적으로도 읽는다며 한 마디씩 하곤 했다. 나는 독서에 대한 그 저돌적인 달려듦이 나를 책 속에 더 깊이 있게 빠져들게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나를 그리는 것은, 그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 좋다.”
파란색 인덱스를 한 개 떼어 붙였다.
그리고 입을 움직여 웅얼거렸다.
내가 나를 그리는 것은 / 그것이 / 내가 가장 / 잘 아는 / 주제이기 때문이다.//
공감되는 말이었다.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게 될 때 내가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썼던 연재 칼럼 때문에 관련 글쓰기 문의가 왕왕 들어왔다. 그 연재 경력 덕분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프리랜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4-5편 정도의 신문 칼럼을 쓸 수 있었다. 소싯적 리포터로 일했던 1개월 정도의 경력은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가르치는 기반이 됐다.
“ 칼럼보고 연락드렸는데요. 리포터와 진행자로 일하셨다는 글을 읽고.. 혹시 몰라 연락드려 봐요. 글쓰기나 말하기 함께 수업도 가능하실까요. 방학기간 동안 2-3주 특강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고요. 초등학생 대상이에요.”
엄마로서 아이들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좋은 책들이나 문장을 이용해 발표를 이끌어내고 분위기를 띄우니 반응도 좋았다. 3주 특강은 결국 정규강좌로 이어졌고 몇 년 동안 아이들과 성인들 대상으로 스피치 강의도 이어갈 수 있었다.
“ 참 신기하지. 작은 점들이 하나의 선들로 연결되는 게. 누가 예전 그 경험들이 지금 일로 연결될 줄 알았겠어? 그때는 힘들어 죽겠다고만 했었지..”
“ 쓸데없는 시간은 단 일 분도 없는 거야.”
엄마가 말한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오프라인 스피치 강의는 아쉽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잠깐 다시 일을 했다고 피곤함이 밀물처럼 밀려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침잠했다.
‘박연수, 간사한 인간.’
나는 가끔 이런 모순적인 태도를 발견할 때마다 독백한다. 나란 인간이 얼마나 편협하고 간사한 인간인지 잊지 말라고.
프리랜서로 시작해 전문직 여성으로서 발바닥에 땀나듯 일하던 나는 육아에 전념하다 어느 순간 문득 일에 대한 욕구가 샘솟아 때마다 ‘자발적 프리랜서’로서 돈벌이를 하려고 애쓴다. 자발적 프리랜서!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오롯이 나의 열정과 도전으로 얻게 되는 불안정한 삶.
그 불안함을 견디는 것도 자발적 프리랜서의 몫이며, 언제든 자발적으로 잠시 멈추고 다시 내달릴 수 있다는 것도 달콤함이었다.
9년이란 시간 회사에 얽매여 일하는 신세였지만 늘 회사보다는 자유로운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결혼 전에는 아이를 낳고 빨리 복직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 생각했다.
아이를 낳았으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다시 당신의 업무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하며 고단하고 고민스러운 일인지 몸으로 알게 됐고 난 엄마에게 그 시간을 떠맡아달라고 아이를 밀어냈다.
밀어냈다는 표현이 과격하지만 그 당시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부탁보다는 밀어냄이 더 솔직할 것이다. 회사에 오면 업무만 생각하면 되니 마음이 괜찮다가도 아이가 아프거나, 회식이 잡히는 날, 기획회의가 너무 딜레이 될 때 시간을 보며 초조해하는 모습이 거슬리기도 했다. 스스로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게 거슬렸다. 꽤 긴 시간 박연수 이름으로 일을 하고 선택한 육아휴직 역시 그때는 말 그대로 잠시 육아로 휴식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나보다 업무를 더 잘하는 사람은 없고, 돌아가는 상황을 빠삭하게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자만했다. 그리고 처절하게 깨졌지만.
집에서 시청역 미술관 까지는 50분 정도 걸렸다. 책도 보고 사람을 구경하거나 지하철 창문 밖에 간간이 지나치는 풍경을 보기에 지루하지 않은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책을 읽던 분이 안경을 벗고 가방에 넣었다.
이번 정차역은 시청, 시청역입니다. 내리실 쪽은 왼쪽입니다.
익숙한 지하철 안내방송이 들렸다. 곧이어 기관사의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관사 황범일입니다.
이번 정차역은 시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지하철로 이동하시는 동안 불편함 없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좋은 계절을 만끽하는 하루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와아-이 사람 누구지.”
입에서 얕은 탄성이 나왔다.
‘덕분에 놓칠 뻔했던 계절을 다시 한번 잡겠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기관차 곳곳에 빨간 인덱스를 붙이고 싶었다.
가방에 책을 넣고 왼쪽 문 앞에 섰다. 아까 책을 읽던 한 분도 내릴 준비를 하며 책을 가방에 넣고 계셨다.
우리 둘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살짝 움직여 인사를 건넸다.
“ 혹시 프리다칼로 전시회가요?”
“ 아.. 네. 맞아요. 거기 가세요?”
“ 신기하네요. 프리다 칼로 책을 읽고 있길래 눈이 가서.. 아까 책 읽는 것 보고 책 읽는 것도 나랑 참 비슷하다 싶어 신기해 힐끔거리며 봤는데..”
“ 인덱스요?! 하하 저도요. 다들 휴대폰 보고 있는데 선생님만 책을 펴서 읽고 계셔서 저도 눈이 가더라고요. 인덱스가 저희 공통점 맞죠?!”
“ 하하.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감사하고, 관심 있게 바라봐준 것도 감사하네요. 오늘 참 좋은 날이네요. 기관장님 말씀처럼.”
“ 저도요. 하루가 너무 행복하네요.”
“ 또 발길이 맞으면 얼굴 봐요 우리.”
발길이 맞으면 만나자는 꽤 시적인 표현을 남기고 그녀는 백발인 단발머리를 휘달리며 걸어갔다.
우리는 [두 명의 프리다] 작품 앞에서 발길이 맞았다.
두 명의 프리다칼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조금 더 꿋꿋해지자고 위로하는 느낌의 그림이었다. 미술학도가 아니고, 배경지식이 해박한 것도 아니었기에 전시회를 가면 날 것 같은 느낌들을 총 동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친구는 그런 날 보고 너처럼 자기 멋대로 작품을 해석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어쩌면 작가가 원하는 것은 이런 해석능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파란 밑줄을 긋고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파악하며 달달 외우는, 객관식 문제풀이 접근법이 아니라 누구나의 해석도 정답이 될 수 있는 주관식 접근법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작품을 오래도록 관찰하며 나는 나와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의 시간과 내 시간이 어쩔 수 없이 공유되어야만 하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 둘은 괴로움도 즐거움도 함께하며 인생을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다 칼로 한 명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메달 속 디에고가 엄마에게는 가족이자, 남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 그런 생각들이 그날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상되는 것일까.
“ 인연이 닿았네요.”
“ 어!! 안녕하세요. 정말 또 뵙네요.”
“ 난 이 그림이 그렇게 애달파요. 뭔가 슬퍼. 이양반이 자기 얼굴을 많이 그린 작가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이 사람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자꾸 내 얼굴이 떠오르고. 내 힘든 삶도 떠오르고. 그래서 좋아하나 이 양반을?”
“ 저도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었어요. 뭔가 오묘하죠?”
“ 각자 느끼는 게 참 다를 거 에요. 그게 미술의 매력이죠 뭐. 나처럼 미술에 문외한도 전시회를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눈이랑 생각하는 머리만 있으면 누구나 와서 느낄 수 있으니 이곳이 천국이 아니면 어디겠어요.”
“ 왜 헤어지지 않았을까요?.”
“ 아! 그 남편이랑요? 디에고?”
“ 21살 연상에, 밥 먹듯 외도를 하고 솔직히 미남도 아니잖아요.”
“ 하하. 그렇죠?”
“ 인생에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바로 디에고랑 만난 거라고 했거든요. 그걸 알면서 왜 이 강인한 여자가 미련을 못 버렸는지.. 전 정말 그게 계속 이상하더라고요.”
“ 남편으로는 빵점인데 예술 선배로서는 버리지 못할 만큼의 매력이 있는 그런 사람 아니었을까요.”
“ 결혼을 하고.. 이 사람에 대해 알게 되니 그냥 뭔가 감정이입이 되면서 마음이 안 좋아요. 강한 사람 같지만 한편으로는 한 없이 약한 사람 같기도 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사상에 질질 끌려가는 나약한 사람 같기도 해요.”
“맞아요.”
짧게 대답하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프리다칼로는 분명 강인한 사람일 거예요. 자신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웠잖아. 그림을 그리며 무너지는 육체와 싸우고, 편견의 시선을 견디며 스스로 극복하려고 포기하지 않았지요. 사랑을 갈구했지만 사랑 때문에 파멸하지는 않았고, 사랑 때문에 망가져가는 자신을 알면서도 그 사랑을 끝까지 무시해버리지도 않았어요. 그게 그녀의 강인 함이에요. 인정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태도.’
전시회에 오기 전날 밤 식탁 위에 올려놓은 책을 서아가 들춰보더니 미술 책에 나온 사람이다! 라며 수다의 포문을 열었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게 많다는 거다.
프리다칼로의 눈썹이 의미하는 것이 뭔지 알아? 왜 자화상이 많은지 알아? 프리다칼로가 왜 척추수술을 받았는지 알면 엄마 기절할걸. 엄마 수술 몇 번을 했는지 알고 있어?
나는 모른 척 오랜만에 내 근처에서 아기처럼 수다를 떠는 딸아이를 눈에 담았다. 대학생 때 교수님은 프리다칼로의 남성성을 설명했다. 여성성을 배제하기 위해 더 두껍게 그리는 눈썹, 멕시코 특정 지역의 가모장 문화를 대표하는 테후아나 의상. 프리다칼로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둘 다 갖춘 인간이길 바랐던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을 말하는, 가모장 문화의 가운데 프리다칼로가 있다.
“ 폐경했으니 난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인간이야. 얼마나 홀가분하나!” 언젠가 엄마가 말했다. 테스토스테론이 아빠보다 많이 나와 우리 집에서는 남자 여자가 바뀌었다는 농담 섞인 말이나, 수영장에서 폐경이라 빠질 일 없다며 껄껄 호탕한 웃음으로 서로 손뼉 치며 동조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 뭐든 씩씩하게 해내고 하루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이 나에게 모두 한 명 한 명의 프리다칼로처럼 다가왔다.
사진촬영이 가능한 곳을 여러 번 둘러보았다. 수영장에 가서 목포 할머니에게 보여드릴 사진은 뭐가 좋을까 고심했다.
프리다칼로의 자화상 한 점 앞에 섰다.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각도를 조절하고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기념품샵에 들러 프리다칼로가 정갈하게 앉아있는 그림의 컵 하나를 샀다.
사진과 컵을 목포 할머니에게 선물로 드릴 것이다.
고통과 희망을 함께 담고 있는 듯한 프리다칼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 목포할머니도 자신의 삶들이 스쳐 지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