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내 책상 손댔어?”
서아의 예민한 목소리에 조금 무던하게 반응하겠노라 생각하지만 늘 마음 한쪽에 찡-하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상처 하나씩이 생기는 것만 같다.
“.. 왜 뭐가 없니?”
“ 내가 어제 연습장에다가 BTS가사 정리했단 말이야.”
“ BTS가사가 왜 없어져. 잘 찾아봐.”
“ 그니까 내 말이. 잃어버릴까 봐 일부러 책상 위에 놨는데 발이 달렸냐고! 아 오늘 수행평가 때문에 일부러 늦게까지 정리해 둔 건데!!”
“ 서아야! 차분하게 찾아봐라. 그렇게 짜증 낸다고 찾아지니.”
등교 전 대거리는 서로의 기분을 완전하게 망가뜨려버린다.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서아에게 잘 다녀와 –라고 큰 소리를 내면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애가 문 닫고 나가자마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 한 모금 마시면 그래도 기분이 금방 좋아지곤 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다운된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생리 전인가.
삼촌의 기일이다. 삼촌은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동생이고 엄마의 인생에서 꽤 큰 지분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엄마는 대학을 포기하고 삼촌을 뒷바라지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말을 수십 번도 넘게 들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누군가의 삶을 위해 당연하게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삼촌이 성격이 너무 무르고, 한 직장에 오래 다니지 못하는 것은 가족들의 과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래도 괜찮다. 저래도 괜찮다. 넌 될 것이다!라는 긍정의 말속에서 자란 삼촌에게 세상이 얼마나 혹독 했겠는가.
싫은 소리 한마디에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조금만 어려워도 무기력해진다면서 일상을 스톱해 대는 덕에 가장 힘을 뺀 건 엄마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큰 이모는 멀리 살고, 작은 이모는 일을 한다. 엄마는 일을 하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 산다. 삼촌 역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해서 하소연을 했다. 마치 엄마가 삼촌의 엄마 같았다. 바라보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인상이라도 쓰며 전화 끊으라고 입모양으로 말하면 엄마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한참이나 삼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와서는 내 눈치를 본다.
‘휴.. 왜 또 내 눈치를 본담.’
무 자르듯 싹둑 끊어내라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바쁠 때, 힘들 때, 듣기 싫을 땐 전화 한 번 거부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늘 물었다. 난 엄마가 답답했다. 힘들어하면서도 묵묵히 다 삼촌의 힘듦을 받아 업어주는 느낌이었다.
하긴.. 그 착하디 착한 마음 때문에 거절 한 번 없이 내 아이, 내 동생의 아이들 돌보는 걸 불평 한 마디 없이 해낸 엄마이기도 했지만..
“ 싫지? 연수야. 삼촌 전화 오면?”
“ 좋을 리가 있어? 좋은 일로 전화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 그래도 힘들 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 한 거니. 그럴 땐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거야.”
“ 왜 또 자살소동 벌일까 봐 겁이라도 나는 거야?”
삼촌은 힘들 때마다 죽어버리겠다는 되지도 않는 협박으로 가족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죽을 용기는 없어 보였다. 뛰어내려도 3층에서 뛰어내려 다리 골절을 입었고,
약을 먹어도 조금만 먹어 위세척으로 깨어났다. 양치기 소년 같은 삼촌의 협박들. 우리들은 삼촌이 그럴 때마다 삼 또 겁을 주고 싶나 보다.. 정도로 받아들였고 나는 대놓고 더럽고 야비한 습관이라고 늘 한마디를 더 던졌다. 엄마는 그때마다 내 큰 목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그 해 겨울, 삼촌은 다시 한번 소동을 벌였다. 더러운 소동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난 삼촌이 단 한 번도 어른처럼 느껴진 적이 없다. 철없는, 아니 아직 사람이 덜 된 짐승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 마음이 아파서 그래. 마음이.”
“ 엄마 그런 얘기하면 진짜 큰일 나.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지. 정말 여러 사람 속 썩이고 뭐 하는 거야. 자기 혼자 죽으면 차라리 낫지 저러다 사고라도 치면 진짜 뉴스에 나오는 거라고. 마음 아픈 게 육체 아픈 거보다 더 무서운 거 몰라? 삼촌 신경 쓰다가 주변 사람들이 골병들어 쓰러지게 생겼어 내가 볼 땐.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정말.”
쏟아내면서 내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 삼촌과 동물원도 가고 솜사탕을 뜯으며 동네를 산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의 추억이다. 엄마는 그런 삼촌의 모습 하나하나가 자기 탓인 마냥 마치 죄인이 된 표정이었다.
왜 미안해하는 거냐고 물으면 누나니까 미안한 거지 라는 추상적인 대답만 내놓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표정이 끔찍하게 싫었던 것이다.
“ 왜 그렇게 희망을 못 버려 삼촌한테.”
“ 연수야. 그 희망 하나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 아니겠니. 엄마까지 등 돌리면 삼촌은 어떻게 살아가니.”
“ 그걸 왜 엄마가 다 떠안고 살아가냐고. 대학 간다고 징징 취업 어렵다고 징징 이혼했다고 징징 뭐 인생이 징징 타령이야. 쪽팔리게.”
“.... 엄마의 업이지 뭐. 엄마 성격이 이리 태어난 걸 누굴 탓해. 눈에 밟히는 사람이 움직이게 되는 거지.”
“ 아 정말 싫어.”
자식의 잘못을 따끔하게 말하지 않고 품기만 하는 할머니도 짜증 났다. 아픔과 도움의 손길을 나 몰라라 하고 외면하는 엄마 외의 가족들도 야속했다. 형제자매가 많다고 그리 든든해하면 뭐 하나. 따지고 보면 늘 고생은 하는 사람만 하고 눈에 밟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걸.
눈에 밟히는 사람, 그 사람을 위해 엄마는 누군가의 기둥이 되어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서있었다. 나에게도, 동생에게도 가족에게 엄마는 늘 안간힘을 내서 기둥이 되어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둥일지라도 엄마는 계속 그렇게 선택하고 상처받아도 괜찮은 척 또 그런 선택을 한다.
사랑일까 희생일까. 사랑이라면 가슴 아프고 희생이라도 억울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함께 도울 것인가, 나도 다른 이들과 같이 내 뺄 것인가. 늘 고민하지만 이번에도 난 내빼는 쪽을 선택했다.
‘내 인생 돌보기도 버거워 진짜.’ 주변 사람들 신경 쓰면서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또 한 번의 자살 소동으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삼촌에게 암 덩어리가 발견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췌장암 말기.
전조증상은 단 하나도 없었다. 피곤한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당연한 고단이겠거니 하며 넘어갔고, 돈 없어서 못 받는다는 건강검진도 엄마가 이체해 준 돈으로 꾸준히 받아왔다. 건강검진 역시 엄마는 유치원생 다루듯 삼촌을 대했는데 꼭 받아야 한다. 예약했냐. 언제 가니 등등 닦달하는 엄마와 삼촌의 모습은 금쪽같은 내 새끼에 나가 영상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아리송했다. 엄마와 사춘기 아들처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어른 둘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은.. 정말 다시 생각해도 가관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 죽을 거라던 삼촌은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조금 더 살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다시 한번 가족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세상을 떠났다.
살고 싶다는 삼촌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언제는 죽고 싶다며..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두라며...’
소원대로 된 것인데요 뭐. 죽을 때까지 엄마 마음에 피멍 들게 만들고 간 나쁜 놈. 난 얼굴에 대고 말할 수도 있었다.
병실 침대 난간을 붙잡고 눈물을 멈추지 않고 흘리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미국에서 온 이모도, 일을 마치고 달려온 작은 이모도 삼촌의 죽음에 무감각했다. 벗어버리고 싶은 가족이었을까...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건 아닐까. 가족이라고 묶인 그들의 냉정한 표정을 보면서 나는 순간 나의 주변인들을 떠올렸고 잠시 무서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어릴 때 간질 때문에 고생한 삼촌은 고등학교 졸업까지가 참 힘들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동네를 가다가 지나가는 술 취한 사람에게 이유도 없이 얻어맞고 생긴 트라우마와, 그때 충격으로 머리에 상처가 난 것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딱 거기까지.
누구 하나 삼촌의 마음이 왜 다친 것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족이지만 마음속으로 짐이 되고 부담스러운 사람으로 자리 잡아 버린 삼촌. 삼촌이라는 호칭은 남아있지만 얼굴을 보면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누군가가 되어버린 그. 그의 삶은 이제 끝났고, 엄마의 고생도 이제 조금 잠잠해지겠지 싶었다. 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내 옆에 있는 엄마의 안위만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삼촌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엄마는 건강에 있어서는 더 강박적인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가 이제는 오지 않으니, 이제 죽는다고 협박하며 마음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런대로 괜찮은 날들이라 생각한다. 나는 갑작스러운 죽음이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 그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책에서 죽음을 선고받고 이를 인지하기까지의 과정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 이렇게 다섯 단계로 구분 짓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부정하고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화를 내는 분노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상황에 타협하려는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을 피할 수 없다는 마음에 우울함을 깨닫고 절망하다 결국에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생을 정리하게 되는 단계가 그가 말한 죽음의 5단계였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삼촌의 어느 단계가 통째로 모자이크처리 된 것 같았다. 부정으로 시작해 살고 싶다로 끝내버린 삼촌의 삶은 거칠게 잘려 나간 플라스틱의 단면 같았다.
모름지기 단계가 존재한다. 그 단계를 어설프게 뛰어넘으면 언젠가 몸에 쌓인 찌꺼기가 고름이 되어 터져 버린다. 건너뛰어버린 단계, 불안정한 단계로 마무리된 삶. 남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라진 감정의 중간 단계 때문에 무언의 파장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엄마. 아까 미안. 나 오늘 영단어 시험 때문에 좀 예민했어. 미안.
-댓츠 오케이.
아이와의 아침 대거리는 짧은 카톡으로도 금세 녹아버린다. 편하게 주고받는 카톡 메시지처럼 우리들도 사과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이해하며 그렇게 나아가면 편하겠다 싶다.
뜬금없이 남편에게 카톡 하나를 보낸다.
-나 이제 다음 주 일 시작해. 떨린다.
아 벌써 이렇게 됐나? 오랜만에 일터로 나가는 기분은?
-덤덤한 척 하지만 꽤나 긴장됨.
재미있게 하자. 그렇게 일할 거 아니까 난 응원만!
하트
자잘한 감정의 곡선 속에서 우린 다시 이렇게 하트로 귀결된다. 이상한 관계다. 아득바득 정말 못 살겠다 하루에 몇 십 번을 말해도 결국 하트로 귀결되니 이 얼마나 다행인 것일까.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정상인척 하지만 반쯤 미쳐있는 것 아닐까. 자신이 정상인줄 알면서 살아가지만 숱한 선택과 고민들과 모순들 앞에서 여지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며 일어났으니 난 정상인 거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나 역시.
한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우리라서 어쩌면 손을 잡고 같은 방향을 걸어 나갈 수 있는지 모른다. 삼촌과 엄마의 관계처럼 일방적인 사랑은 오래갈 수 없다. 아무리 부처라고 해도 마음에는 작은 힘겨움 들이 쌓여 결국 감정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나는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분명 힘들었을 엄마가 지금 무너져 내리는 감정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넌 괜찮아. 너의 동생이잖아. 힘들면 안 되는 거야. 가족이잖아.’
하지만 난 안다. 그 영겁의 시간 동안 얼마나 숨죽이며 울고 가슴 치며 속상해하고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는지를 나는 안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고 투쟁할 일이 있으면 할 것이다. 그렇게 바보처럼 끙끙 앓으며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감정의 모든 단계를 그냥 소중히 인정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미안하지만 난 삼촌의 죽음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