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도 수영장 1 레인은 발차기와 호흡 연습, 팔 돌리기 연습을 한다. 마지막 레인을 바라보다 보면 날치들이 헤엄치는 것 같았다. 접영은 신의 영역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느 영역이나 결국 ‘존버’하면 얻게 되는 게 바로 시간으로 얻는 기술 아닌가. 파워포인트도, 엑셀도, 한글 문서 표 정리하기도 다 ‘존버’로 얻어낸 나의 것들이고 주방에서도, 아이들 곁에서도 ‘존버’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얻어낸 것들이 상당했다.
이웃들과 발가벗고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제 익숙해졌고, 이제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거나 수영복 올리는 어르신을 도와주는 적극적인 행동도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진도가 쭉쭉 나갔다. 자유형 팔 돌리기를 하면서 평영 다리도 함께 연습하고 평영이 조금 된다 싶으면 웨이브를 알려주면서 이것저것 느낌을 몸에 익게 했다.
아이들에게 전생에 엄마가 인어였나 봐하고 실없는 소리를 했더니 정색하며 듀공이나 물개로 바꾸자고 한다. 쿨하게 듀공으로 노선을 갈아탔다.
강사님마다 알려주는 방법은 모두 다른 것 같았지만 ‘즐겁게 다닐 수 있도록’ 즉, 꾸준히 수강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수영장 안에서는 수분감 때문에 피부가 모두 탱탱해 보였다. 그래서 실제 나이보다 5살은 적어 보이는 것은 매력적인 수영의 장점이다. 눈썹문신을 하지 않은 내 눈썹만 허여멀겋게 느껴져 눈썹문신을 할까 고민하다 그게 뭐라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눈썹 문신하면 경자고모의 색소 빠진 갈색눈썹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수영복을 벗으면 제 나이가 보이고, 또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나오면 제 나이가 더 확실히 보였지만 다들 과감하고 자신 있게 수영복을 입고 있을 때 분명 젊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는 신박하다. 자신의 이름 대신 지역 명을 앞에 붙여 소개한다. 무시무시한 지역 사랑 아닌가.
울산댁, 마산형님, 수원형님 같은 식이다. 가끔 “목동아!”라는 소리가 들리면 목동에 사는 누군가를 부르는 거였고 나는 그게 너무 귀여웠다. 울산형님은 아들이 울산에 산다고 했다. 울산에서 아들이 큰 가게를 하는데 거기 이름이 울산마트라고 했다. ‘ 자식들 때문에 지역명이 바뀌기도 하겠구나..’
이런 대화의 순간 나는 임순자 이모가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허허거리며 스스럼없이 인생을 논하는 그들의 기세와 유머 같은 것들을 사랑하는 인간이라 그렇다. 순자 씨도 그랬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수영장에는 허리가 직각으로 굽어져 있다는 분들도 꽤 있다. 너무 굽어진 허리 때문에 걸을 때 늘 고개는 바닥을 향해있었고 앞에 있는 무언가와, 또는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으려고 간신히 고개를 들어 걷는 모습은 슬프고도 위태로워 보인다. 너무 많은 자식을 낳아서, 자식들 건강 생각한다고, 그 작고 마른 몸으로 커다란 밭에 농사를 짓고 온갖 것들을 심어 매번 택배로 보내서 생긴 병이란 걸 난 안다.
계절마다 우리 할머니가 심어 보내주는 것들은 다양했다. 우리가 어릴 땐 할머니 집 앞에 있는 큰 밭에서 같이 당근도 뽑고, 겨울에는 무나 배추도 뽑으며 장난칠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당연히 그 모든 일은 할머니의 고독한 싸움이 되었다. 몸이 아파도 밭일은 마무리한다며 다들 정리하자는 밭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구셨다. 외할머니보다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농사에는 진심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여기서 좋은 거름으로, 사랑으로 난 채소들 먹고 우리 자식손자들 자라면 얼마나 좋은 거냐고. 이렇게 먹으면서 건강하게 안 클 수가 없다며 큰소리치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조금 더 할머니가 외롭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어쩌면 그 고독함을 견디기 위해 밭으로 나가 더 힘들게 더 고단하게, 더 지긋지긋하게 일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도 비슷한 고독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 일을 하면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남편은 회사로,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면 느껴지는 적막함이 평화롭고 좋았다가도 어느 날은 문득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언가 하고 싶지만 에너지가 부족할 때도 있었고,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피곤한가 싶어 한 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조금 눈을 붙인 뒤 일어나면 몸이 한없이 더 축 가라앉는 느낌이 들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 뒤로 웬만하면 낮잠을 자지 않는다. 차라리 몸을 바쁘게 움직일 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불필요한 옷을 정리한다며 아이들 옷장을 일부러 뒤집기도 하고, 이불 빨래를 한다며 온 이불보를 정리하기도 했다. 신발장 신발들을 모조리 꺼내 사이즈를 확인하고 버리거나 잘 정리되어 있는 화장품 정리함을 다 쏟아 다시 정리하기도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지랄..
아마 그렇게 시간을 지랄스럽게 쓰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냐 도대체!’ 싶은 그런 날은 조금 외로운 날이었을 것이다.
외로울 때마다 일을 하니 몸이 망가졌다. 쉽게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 기억이 맞다면 그 이유가 맞을 것이다.) 앉아서 외로운 마음을 글로 정리하고 폴더에 잘 저장해 놓으면 어느 정도 희석되는 느낌이 들었고 나름대로 이 방법은 건강한 해소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나를 바라봤다. 어린 나도 보고, 커가는 나도 보고, 일하는 나도 보고, 엄마인 나도 봤다. 딸과 며느리 철없는 청춘의 연수를 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여쁘게 느껴졌다. 그리고 분명하게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 박연수라는 사람은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결혼하고 특이한 짓을 몇 번 했다.
그중 한 가지는 토플 영어 문제집을 몇 권이나 사서 매일 밤 한 챕터씩 풀고 채점한 것이다. 한 권이 끝내면 토익이나 OPIC관련 문제집을 사서 영상을 보며 공부했다. 자격증 취득이나 점수를 위한 공부가 아닌 그냥 하고 싶어 시작한 아주 작은 취미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다들 신기해했다.
“ 어머 서아 엄마 공부를 갑자기 왜 해? 대학원 준비해요?”
“ 엄마 공부가.. 재미있어...?”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가끔 지나치리만큼 솟구치곤 했는데 영어에서 한국사, 한국사에서 세계사, 세계사에서 심리학, 심리학에서 철학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나의 뇌 시냅스가 확장되는 것은 꽤나 짜릿한 일이었다. 공부를 할 때 정신적으로 어딘가 고갈된 알 수 없는 부분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집에서 나만의 작은 일터를 교묘하게 꾸며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는지도 모르겠다. 박연수 나라면.
내가 재미있다고 하는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하거나, 특이하다고 하는 것들이었다.
공부를 한다거나,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다양한 일들을 술술 말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비밀폴더에 하고 싶은 일을 쓰는 행위나, 내킬 때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조차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솔직히 나는 서아와 서우의 공부보다는 내 공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싫어하는 학원을 억지로 보내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랬다. 만약 어릴 때 엄마가 공부하라고, 학원을 가라고 억지로 날 떠밀었다면 난 내 적성을 잘 찾지 못했을 것이다. 뭐든 조금씩이라도 잘하고 관심이 갈 수 있었던 것은 내 경험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즉, 전문가가 아니어도 인생을 살 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거다. 다만 이것저것 경험하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그걸 찾는 여정만으로도 어쩌면 많은 것을 배우는 공부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결국 뒤늦게 필요한 순간이 오면 누구보다 열심히 내달릴 아이들이라는 것을 엄마인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한 가지를 잘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몇 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존버의 시간이라 칭하겠다. 일단 좋으면 존나 버텨 보는 거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버티고 버텨, 존나게 버티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지에 오를 때가 있을 것이고 혹은 체념하게 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버텨봤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분야든 어쨌든 존버해보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을 면접에서 꼭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을 몇 가지 추측해 봤다. 예전 회사의 퇴사이유나 그 안에서 내 역할들을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회사생활에서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은, 성취했던 일들 기획해서 성공한 예, 경력이 단절된 시간 동안 노력한 것들, 다시 일해서 얻고 싶은 것들, 동기나 포부 등등...
이런 것들은 20대 첫 면접에서도, 승진 때 면접에서도 늘 머릿속으로 되뇌며 내이며 했던 것들이었다. 아직 공부도 하고 머리는 굳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대답을 하려고 하니 어설프고 두서가 없었다. 종이에 끄적거리니 너무 거창해 보였고 가식처럼 보여 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자유로운 형식이라는 면접에 너무 겁먹지 않고 임순자 이모(대표님)에게 인사라도 하고 오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임순자 이모도 그 좁은 돼지갈비 가게에서 버티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는 학교나 학원에서, 누군가는 병원에서 혹은 병실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견디는 모든 이들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받는 월급의 크기, 직급의 차이, 가게 평수의 차이가 아닌 그들 각자가 버티는 시간의 값어치는 이미 엄청난 의미라는 것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진짜 어른이 되고 있다. 이런 배움 역시 인생을 존버하며 깨친 지혜들이다. 그래 박연수 존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