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화 한 통

전화에 031로 시작하는 번호가 떴다. 031이면 경기도? 생각하는 찰나 전화는 끊겼고 다시 한번 같은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스팸전화는 모두 수신차단으로 돌려놔 신호음이 많이 울리진 않았을 텐데 뭐지?

“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박연수 씨 되시죠? 사이트에 이력서 올리셨죠?”

“..... 네. 응? 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 전쯤이었을까.

가족들이 다들 잠든 새벽, 나의 비밀 폴더를 열었다. 그 비밀 폴더에는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많은 것들이 모두 들어있다. 이를테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감정상태,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수필, 감성에 취해 끄적거린 시나 소설, 조금은 과한 나의 포부가 담긴 꿈들을 적은 메시지, 이력서..

이력서에는 나의 이전 경험들까지 모두 적어 넣었다. 20대 초반부터 한 소소한 아르바이트까지 죄다 적었다. 낮아진 자존감을 좀 높여보려고 한 짓이었다. 갖가지들을 다 적으려 하니 이력서 칸이 모자라 헛웃음이 나온 적도 있다.

‘ 생각보다 열심히 살았네 박연수...’

그리고 맨 아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었다. 그 끄적거림으로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뒤에 채워진 나의 못 다 이룬 꿈은 소설가나, 유명 아나운서, 떡볶이집 사장님, 잡지사 여성 CEO, 여행사 가이드 등등 다양했는데 매치가 쉽지 않고 해 보면 어떨까? 좋을 것 같다! 잘할 것 같다!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놓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글자들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으니 나로선 비밀 폴더를 열 때 괜히 데이트 준비하는 들뜬 소녀 마냥 마음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 이상한 짓의 시작은 회사에 휴직을 내고 2-3년 정도 지나서였던 것 같다. 서아가 입학하고 둘째도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다시 ‘뭔가 변화가 필요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하다. 회사에서는 버티고 버티다 결정한 변화가 육아를 하면서는 수시로 ‘변화해야 해’ ‘달라져야 해’ 심란하게 만드니 미칠 노릇이었다. 자주 생각했다. 아이들은 크고 있고, 감정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이유라면 아이가 20살이 될 때까지 곁에만 있어야 하는가?

다시 예전의 회사로 돌아갈 기회는 사라졌지만, 만약 내가 다시 경제력을 가진 워킹 맘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을 것인지 왜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일까. 곧바로 일을 할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회식으로 술 취한 남편이 늦게 들어온 날이었던가. 잠든 아이들 방문을 살짝 닫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조명을 켰다. 불 꺼진 거실에 은은한 조명 하나 의지한 채 때론 책을 읽고 때론 비밀폴더를 작성하고 때론 박연수에 대해 생각했다. 홍시만큼 조명을 사랑한다. 그래서 거실에는 언제든 톡- 터치하면 은은하게 켜지는 조명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색감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조명은 모양이, 어떤 조명은 크기가, 어떤 조명은 불빛의 색감이.. 좋았다. 이런 조명 덕에 바짝 메마르려고 언제나 벼르고 있던 나의 감성이 더 촉촉해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비밀폴더 속 이력서를 열어본다. 이 경력정도라면 어떤 곳에서 나에게 전화를 할까. 경력이 단절됐지만 이 정도 경력인데.. 꽤 괜찮은데 말이야. 어느 정도 월급일까. 복지혜택도 좋고 4대 보험도 가입할 수 있고, 성과급이 나오는 회사면 더 좋겠다. 밑져야 본전이니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나 한 번 올려볼까 고민을 하며 창을 켰고 업로드 글자 위에 커서를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아직 안 자는 거야?”

남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노트북을 그대로 닫았을 때, 그때 업로드 된 것이었을까.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스스로 올린 기억이 없는 이력서를 보고 누군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 박연수 씨 맞죠? 여긴 엄마 잡지라는 곳인데요. 잡지발행도 하고 엄마들의 글도 발행하는 그런 회사예요. 이력서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소설도 한 권 내셨더라고요.. 제목이... 엄마의 시간.. 맞죠?”

.... 엄마의 시간.. 내가 언젠가 써야겠다는 소설 이름이 아마 이력서 적혀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아... 아... 거리고 있을 때였다.

“ 박연수 씨 저희 회사에서 지금 잡지 디렉팅 경력자가 필요해서요. 경력이 좋으셔서 오케이 하시면 면접을 진행하고 싶은데요.”

“ 아... 제가...”

“ 주소를 보니 차로 이동하면 30분 정도 거리라 이동하기도 부담 없고, 출퇴근 시간도 매일 같지 않아 편하실 거예요.

통화가 가능하시면 조금 더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 아.. 네..”

“월수금은 회사로 출근 10시까지 해주시고, 퇴근은 6시고요.

화목은 재택 가능합니다. 아! 가끔 외근이 있을 때도 있어요. 인터뷰나 공간 섭외 같은 부분도 간혹 필요할 때 있는데 참여하게 될 수 있고요 ”

전화를 한 순간부터 내가 한 말은 열 마디가 넘지 않았다. 상대편은 당연히 내가 오케이를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업무적인 내용보다는 엄마들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엄마들에게 적합한 일이란 무엇인가. 뭔가 의심이 갔다.

“ 아.. 네 설명 감사합니다. 너무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다른 업무 중이라 오래 전화받기가 좀 힘들어서요.”

“ 아! 네 박연수 씨 그럼 이 번호로 회사 주소와 대략적인 업무 관련설명 문자로 남겨드릴까요? 면접 날짜도 남기겠습니다.”

“......”

“ 네! 문자 드릴게요. 곧 뵙겠습니다.”

나는 5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내가 대답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곱씹어 생각했다. 분명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야무지게 됐다고. 잘못 올라간 이력서라고. 그런 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고.. 그냥 거짓말이라고 왜 말하지 못했는가... 를 생각해 보니 일말의 가능성이 나에게는 희망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구애의 손길이었다.

안녕하세요. 박연수 씨. 방금 통화했던 사람입니다. [엄마잡지]

면접 장소 안내 드립니다.

보라매역 4번 출구 **건물 401호 [엄마잡지]

면접 시간은 조율 가능하니 답문 부탁드립니다.

업무: 잡지 기획, 잡지 편집, 인터뷰 및 섭외, 전체적인 기획참여 및 주도.

문장 속 모든 내용에서 명확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답문. 조율. 이게 무슨 업무인가 싶은 다양한 일들. 마지막 기획 참여 및 주도는 내가 회사에서 어떤 위치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간단히 예의를 갖춰 답문을 보냈다.

업무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답문을 보내놓고 고민을 했다.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지만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준 그곳, 그 애매한 곳에서 나의 어떤 부분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회사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육아 관련 방송 유튜브, 팟 캐스트, 엄마들을 위한 강의, 육아서와 엄마들이 출간한 도서까지 여러 가지 활동의 공통 화두는 ‘엄마’였다.

내가 쓸 ‘예정’이었던, 그래서 미래의 이력서에 써넣었던 그 소설, 엄마의 시간 때문에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맥락상 그 부분이 크게 한몫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 이력서는 사실과 다른 이유로 무효처리 될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하게 말하고 사과를 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만나게 된다면.

공식 홈페이지는 없었지만 블로그 이웃수가 상당했고 주기적으로 열리는 행사가 꽤 탄탄해 보였다. 기획자의 마음으로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으며 나의 자리는 어느 정도 일까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잡지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비슷한 결이라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 블로그 속 다양한 사진을 보면서 그곳에 나를 살짝 투입시켰다. 그 공간에 속해있는 내 모습. 엄마라는 이름을 한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밝아보였다. 그들의 얼굴보다 100배는 무표정이고, 어두워 보이는 내 표정을 갑자기 의식하며 나는 입 꼬리에 조금 힘을 주었다. 잡지간행물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인력을 충원하는 중이라는 내용은 블로그에도 나와 있었다. 나와 전화를 한 사람은 남자였는데 블로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여자였다.

‘누구지 그 사람은?’

인사과가 있기에는 규모가 작아 보였고 블로그 정보만으로 업무를 구분하기에는 애매했다. 조금 더 검색을 해보니 대표, 임순자라는 이름이 보인다.

임순자... 임순자..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왜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이지.. 임순자..?

한 지역 신문에 증명사진과 함께 올라간 인터뷰에서는 그녀가 엄마들의 시간을 위해 공들인 과거 행적들이 드러나 있었다. 주기적인 칼럼 기재, 지역 사회봉사. 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진 속 얼굴은 인자한 50대-60대 정도의 여성이었다.

‘ 이상하다.. 정말 어디서 분명 본 것 같은데.. 분명히 아는 이름인데.... 아니낙? 하긴 거의 한 시간을 인터넷 검색을 했으니 당연히 눈에 익는 이름이겠지!’

아니다. 확실하다. 분명 내가 들어본 이름이다. 사진 속 저 미소는 내가 직접 본 사람의 미소가 확실하다. 그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다. 누구였지.

띠디디딕 -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시간을 보니 벌써 작은 아이가 하교할 시간이다. 청소까지 했는지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 하교한 아이의 비밀번호 누르는 놀랍게도 빠르다. 1초가 0.1초 같이 느껴지게 하는 마법이랄까.

“서우 왔니? 어머 옷이 왜 이래?”

“ 짜증. 방민혁이 나 밀어서 넘어졌어!”

같은 반 민혁이는 서우랑 자주 부딪히는 남학생이다. 바로 옆집이고, 등교 하교도 자주 같이하는데 불같은 성격이 비슷해 가끔 말로 때론 몸으로 싸운다. 그래도 아이를 밀어 넘어진 건 너무 하다 싶어 무슨 일이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 방민혁이 청소 안 하고 도망가길래 가방을 잡고 안 놔줬지 뭐!”

“그래서 밀친 거야 민혁이가?”

“ 아니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민혁이 가방이 열려 있길래 거기서 일기장을 꺼냈는데..”

“ 남의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는 건 뭐 하는 행동이야?”

“..... 걔도 그런 장난 한단 말이야!”

아이의 3학년.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글쓰기를 위해 일기 쓰기를 강조하셨다. 검사 때문에 아이들은 매일 일기를 써야 했고 수요일마다 검사를 받기 위해 가져갔다. 엄마로서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은 글쓰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에게는 꽤나 번거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기장 아래에는 선생님의 자상한 메모들이 가득했는데 간단한 한 줄이 아닌 정성스러운 편지였다.

“ 이렇게 마음 따뜻한 선생님 만난 건 서우의 복이다 정말.”

아이에게 이 말을 많이 했고 스스로도 정말 감사하단 생각을 많이 했었다. 아이가 영상을 보고 쓴 글 아래에는 선생님의 아들이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서우야. 영상을 보면서 소리에 대해 생각해 봤구나?

선생님의 아들은 현태야. 11살인데 소리를 못 듣는 장애가 있어. 그래서 서우가 들었던 예쁜 소리들을 듣지 못한단다.

갑자기 어떤 소리였을까 선생님도 궁금하고, 그 소리를 다 함께 들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

서우가 뭐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건 행복이고 축복이야.

오늘도 정성스럽게 일기 쓴 서우 참 잘했어요.

그 메모를 보고 선생님이 아닌 같은 엄마로서 동지애 같은 게 생겼다. 엄마라서 아는 그 엄마의 마음.

일기사건은 서우가 집에서 아빠에게 장난을 치다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나와 웃음이 터졌다는 내용을 민혁이가 우연히 읽게 된 게 화근이었다. 서우는 그다음부터 민혁이만 보면 더 으르렁거리고 복수를 하겠다고 눈을 흘기기도 했다.

“ 서우야. 너 아직도 그 일기장 민혁이가 본 것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러는 거야?”

“ 아 방민혁이 나만 보면 자꾸 뿡-뽕- 뽀옹- 하면서 약 올리잖아! 걔도 일기장에 그런 비밀이 있을 텐데! 나도 알아서 골려 버릴 거라고!”

서우는 더러워진 옷을 물티슈로 벅벅 닦으며 씩씩거렸다.

딩동-

민혁이 엄마였다.

“ 서우 엄마 미안해요. 민혁이가 서우를 밀었다고 하던데, 어머 서우 옷 좀 봐. 민혁이가 이렇게 한 거니? 아줌마가 단단히 혼 좀 낼게.”

“ 아니에요. 민혁이 엄마. 서우도 잘못한 게 있어요. 서우도 사과할 게 있으니 아이들끼리 잘 화해하도록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아요.”

“ 아휴 정말... 미안해요. 그래도 옷을 다 버렸네. 아침에 비도 와서 바닥도 축축했는데. 어디 다친 데는 없니.”

“... 괜찮아요. ”

서우가 어색한 얼굴로 대답했고 나는 민혁이 엄마에게 딸기 한 팩을 내밀었다.

“ 오늘 2팩이나 사서. 가서 민혁이 먹여요.”

찡끗 하는 내 표정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듯 민혁이 엄마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인사했다.

나는 서우를 바라봤다.

“..... 내가 먼저 잘못한 건 맞는데 솔직히 청소 째는 건 아니지!”

“ 잘못한 거 알면 됐어. 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도록 내일 잘 이야기해. 알겠지?”

“ 응..”

한바탕 귀여운 소동 때문에 임순자라는 인물이 누구인가를 기억하겠다는 나의 집중력은 깨져버렸고 저녁을 준비해 빨리 먹이고 학원을 보내야 하는 나의 업무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야만 했다.

“ 오늘 저녁은 제육볶음!”

서우 서아는 내가 만든 제육볶음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제육볶음을 만들 때 고추냉이를 넉넉히 짜서 넣는다. 고추냉이가 고추장과 오묘하게 어우러져 특별한 맛을 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릇에다 밥을 담고 조금 작게 자른 제육볶음을 올린 뒤 얇게 썬 상추를 올려 참기름을 조금 둘러 내어 주면 숟가락으로 용사처럼 퍼먹고 “맛있다!”를 외치며 학원을 간다.

주기적으로 아이들에게 내어주는 요리지만 제육볶음만은 거절한 적이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친정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편하게만 받아먹느라 요리를 제대로 익힐 필요가 없었다. 서아도 아기 새였지만 나도 엄마의 아기 새였다.

라면 하나도 맛있게 끓이지 못한 날이 수두룩했는데 이제는 레시피 없이 느낌만으로 각종 집 밥반찬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요리도 기세다! 자신감 있게 하면 된다. 짜면 물 넣고 싱거우면 간장 넣고! 마늘이랑 고추장, 간장이 다 하는 대한민국 요리에서 기세하나만 있으면 못할 게 없었다.

고기를 볶다가 순간 임순자라는 얼굴이 떠올랐다.

“맙소사. 돼지갈비?!!”

임순자 대표님은 돼지갈비 사장님이었다. 분명 그 얼굴이 맞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긴 집게로 불판 위에서 타지 않게 휙휙 고기를 정돈해 주던 순자이모. 바로 순자이모였다.

잡지사 근처에는 허름한 돼지갈비 집이 있었다. 골목 안쪽까지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는 들어가면 과거로 시간 이동할 것만 같은 허름한 느낌에 매료당해 자주 들르곤 했다. 신기한 곳이었다. 낡고, 허름하고, 사방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어두운 골목. 그 어두운 골목 가운데서 삐그덕 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가면 마음이 무장해제 되어 버린다. 그곳에 날 처음 데려간 사람은 진혁 선배였다. 회사 새내기로 출근해서 잡무란 잡무는 다 맡아서 했을 때. 복사기 앞에서 수만 장을 복사하고 회의자료를 옳기다 책상 위 커피를 쏟아 갈색 자료를 만들었던 그런 날들이 꽤 지났을 때였다.

선배는 내가 실수를 할 때마다 “ 아 박연수 진짜.”

라고 웃으며 말했다. 인상을 쓰지 않고 웃으며 말해서 나는 그만두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아무리 날 애송이처럼 취급하고 바라봐도 단 한 사람이 꽤나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나는 당당하게 버텼다. 그리고 더 잘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활의 달인은 그 사람의 노력도 있지만 ‘시간’을 버텨내는 힘 때문에 얻게 된 것이란 걸.

인고의 시간을 버티자 익숙함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얻었고 자신감이라는 부상도 함께 따라왔다. 자신이 생기니 지루하고 언제 벗어나나 싶던 회사가 즐겁기 시작했다.

진혁선배는 좌충우돌 수습기간은 어느 정도 다 끝난 것 같으니 저-기 가서 회포 좀 풀자고 했다. 저-기, 그곳이 돼지갈비 집이었다.

“ 여기에요?”

식당이라고 말해야 아 식당이구나.. 하고 알 정도로 허름한 곳이었다. 상아색 간판에 고딕체로 돼지갈비 네 글자가 무심하게 박혀있는 식당. 아주 작은 글씨로 아래는 임순자의 식당이라고 글자가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돼 색이 바래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식당은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다. 은색 원형 테이블이 4개 정도 있었는데 벽지에는 빽빽한 글자들의 신문기사나 글들이 붙어있었다. 당황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다들 웃으며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 그렇지. 처음엔 당황할 수 있지! 이런 분위기 어색해? 뭐야 어디 가서 매일 우아하게 스파게티나 먹었던 거 티 내는 거야?”

“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분위기가 좋아서요. 저 이런 분위기 진짜 좋아하거든요.”

“ 갈비 먹으면 연수 표정 어떻게 바뀌나 봅시다! 여기 돼지갈비는 국보야.”

아.. 맞아. 회의자료 실수였지. 5개월 정도 회의참여도 거부당했던 서러운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구나.. 맞아... 그 집 정말 너무 맛있었는데. 불 앞에서 건조한 얼굴을 손으로 문질렀다. 어디선가 국보급 돼지갈비 향이 솔솔 나는 것 같았다.

빨간색도 그렇다고 보라색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판다스틱한 립스틱을 바른 분이 걸어왔다.

“ 반가워요. 그냥 날 순자이모라고 불러요. 귀엽게 생긴 새로 온 식구는 이름이 누 구누?”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덩치도 있어 그런지 씩씩한 느낌이 강했다. 입술라인 바깥까지 두껍게 립스틱을 발라 어릴 때 보던 달려라 하니 고은애 씨가 문득 떠올랐다. 홍두깨씨~~~

“ 아.. 안녕하세요. 박연수라고 합니다!!”

“ 세상에나. 군기가 바짝 들었네! 누가 이렇게 군기를 바짝 들게 했대? 오늘도 참이슬? 어디 보자 4명이니 까네.... 돼지갈비 3으로 시작해. 밥 먹고 나서 술 먹어. 오늘 겉절이 새로 해서 맛있어. 일단 겉절이부터 먹고 있어 봐, 밥 떠 줄게.”

고기가 아니라 밥이랑 겉절이를 먼저 원형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순자 이모님은 씩 웃었다.

“ 5개월 지난 거야?”

“ 헐.... 어떻게..”

팀장님과 다른 동료들은 이 상황이 웃겨 배를 잡고 웃었다. 이곳은 우리 회사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회사에서 죽음의 코스라고 불리는 5개월의 기간을 견디는 자, 이곳을 알 권리가 있다!라고 누군가 웃으며 외쳤다. 재혁 선배는 겉절이를 크게 한 입 입에 넣어 우물거리며 말했다.

“ 우리 연수! 이제 이곳을 알 권리가 있다!”

“ 있다!”

나 빼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있다! 를 외쳤고 나는 괜히 울컥해져서는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하며 외쳤다.

“ 감사합니다!!”

순자이모의 웃음은 특별했다. 순자이모는 입술 아래 작은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는 자신을 슬프게 해서 그걸 가리려고 진한 립스틱을 두껍게 바른다고 했다. 직접 그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다음에 올 때는 유심히 한 번 관찰해 보라고 알려주는 거란다.

“ 아....”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에 재혁 선배는 감사하게 등장했다.

“ 순자 이모! 오늘 겉절이 조금 싸주실 수 있어요?!”

“ 500만 원!”

오늘 괜히 겉절이 하고 싶더구먼! 안 가져가면 누가 이걸 다 먹어. 다 싸가 다! 각각 한 통씩 네 통 담아놨어. 시원하게 밖에 내놨으니 술 취해서 얻다 버리지 말고 잘 들고 가. 적당히 먹고. 이제 소주 1병만 더 내줄 거야. 오늘 술장사는 끝!”

“ 넵!”

이곳은 인당 소주 2병 이상은 안 파는 곳이라고 했다. 아마 순자이모와 우리만의 애정의 규칙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게 좋았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한 게 많은 사람은 마음이 착한 건데 새내기 친구는 마음이 참 감사하게 착해 보이네. 나도 감사해요. 우르르 안 오고 혼자와도 돼지갈비 맛있게 내어줄 테니까 힘들고 사람들한테 치이는 날 조용히 와. 이 양반들 목요일 날은 절대 안 와. 그날 골라 와도 되고.”

“네. 감사해요.”

왜 생각나지 않았던 것일까. 왜 잊고 살았던 것일까. 그 강렬한 사람을.

순자 이모는 내가 4년 차 직급을 달았을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 문을 닫는다고 편지를 부쳐놓고 사라졌다. 그 편지에는 우리의 이름이 하나하나 적혀있었는데 전화번호 하나 모르고 지금까지 그 겉절이를 받아먹었다는 사실이 죄스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 꺽꺽 – 순자 이모 찾을 방법 없어요?”

재혁 선배를 비롯한 돼지갈비 집 순자이모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 중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감사와 안부를 주고받는 끈끈한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누구 한 명도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 나는 서글프고 잔인한 이기주의라고 생각했다. 자기 필요할 때 가서 단물만 쏙 빼먹고 막상 준 것은 돼지갈비 가격 그것뿐이었다. 그래서 미안하고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이해하기 힘든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분명 문 닫기 전 2주 전에도 들렀던 곳이었다. 그때 순자이모는 투덜거리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면서 그래도 이렇게 곁에서 함께 힘을 주는 동료가 있다는 게 생명력이라고 했다. 그 생명력을 잘 붙들고 곁에 좋은 사람들을 두는 게 인생이라고 했다 순자이모가.

엄마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 정확한 나이도 모르지만) 순자 이모랑 이야기를 할 때는 솔직하게 내 마음속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 결혼이 고민될 때, 재혁 선배가 이해 안 될 때 등등 순자이모는 나의 꽤 많은 비밀들을 알고 있다. 허름한 건물들은 부서졌고 새로운 오피스텔건물이 빠르게 올라왔다. 몇십 년의 역사는 단 몇 개월 만에 새로운 역사로 덮였다. 미강 오피스텔 506호에 1년을 계약하고 회사로 오갔던 것도 나름의 죄책감을 씻기 위함이었다고 합리화하고 싶다. 혹시라도 이곳을 지날지 모르는 순자이모님을 빨리 발견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르기라도 하면 나중에 “ 이모! 저 그래서 여기 있어요!!!”라고 와락 안기며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사진 속 순자이모의 화장이 너무 달라져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 스타일이 달라졌고, 연하던 눈은 크게 쌍꺼풀이 생겼으며 예전에 장군 같던 씩씩함 대신 사근사근한 느낌이 강해진 것까지.. 대대적인 변화였다.

이름은 분명했고, 기사를 다시 뒤적거리며 찾아봐도 돼지갈빗집 사장님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늦었지만 너무 늦어버렸지만 면접에 가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곳에 가야만 순자 이모, 아니 임순자 대표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나는 031 - *** - ***로 전화를 걸었다. 퇴근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사무실 전화는 받지 않았다. 면접 시간을 알려준 개인 번호로 문자를 남겼다.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면접에 참석하겠습니다.

이력서에서 조금 수정할 부분이 있는데 만나서 설명하겠습니다. 이번 주 아무 때나 날짜와 시간 정해주시면 맞춰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답이 왔다.

문자 기다렸습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과 상의 후 내일 오전 중으로 바로 문자 남기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대표님이라면 임순자 이모를 말하는 거겠지. 뭘 기대한다는 것일까. 나의 성장을? 아님 나를 만나는 것을. 어쩌면 임순자 이모가 나를 알고 연락을 취했을까. 아니야, 그건 너무 앞서간 생각이야. 회사를 그만둔 상황을 아쉬워할까. 안타까워할까. 칭찬을 할까.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며 토닥여줄까. 아님 실망할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다.

“ 왜 잠이 잘 안 와? 오늘 엄청 뒤척이네?”

“ 여보, 내가 그 돼지갈비 집 이야기 했었나?”

“ 어디? 겉절이 거기?”

“ 응! 당신 나랑 가본 적 있지?”

“ 데려간다 해놓고 안 갔잖아. 없어졌다고 했을 걸?”

“ 겉절이를 어떻게 알아 그럼.”

“ 당신이 얼마나 겉절이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돼지갈빗집이 아니라 겉절이 가게인 줄 알았다니까 거기.”

남편은 나랑 그곳에 왜 함께하지 못했던 것일까, 잠시 생각이 샛길로 샜다가 회사원 4년 차 박연수의 과거로 뚜벅뚜벅 다시 걸어갔다.

허름하지만 따뜻한 돼지갈비 집에서 각 소주 2병씩만을 알뜰하게 털어 마시고 겉절이 한 통씩을 들고 집으로 향하던 연수는 언제부터 그곳을 서서히 잊게 된 것일까.

5년 차. 승진 때문이었던가. 사랑 때문이었던가. 매너리즘에 빠진 내 정신 상태 때문이었을까. 훌쩍 떠나고 싶은 역마살이 도졌기 때문이었을까. 원인조차 모호한 과거에서 나는 여전히 마음 구석에 남아있는 미안함을 해소할 생각에 조금 들뜬 어린아이마냥 손을 만지작거렸다.

임순자. 그녀가 맞을 것이다. 아니, 맞다.

쌍꺼풀 수술을 해도 그녀의 미소가 분명하다.

‘입술 아래 그 흉터는 사진이 흐려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아.. 나의 순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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