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영

수영 카페를 둘러보다가 가입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글들을 빠르게 훑어 읽었다. ‘초급은 무조건 블랙이다!’라는 댓글이 많이 보였다.

“ 그렇다면.. 음... 난 이걸로!”

화려한 수영복을 샀다. 개인적인 취향이 100% 반영된 색감이었다. 쨍한 오렌지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 여보, 이 색 홍시 같지 않아?”

“ 진짜네. 색 너무 튀지 않겠어?”

“ 뭐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하는 거지. 신난다!”

수린이 파이팅 / 수린이에게는 장비발이 필수죠 / 실리콘 수영모 추천 부탁요 / 수영복 브랜드 사이즈 비교 좀-

같은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들 중 초급 검정 수영복은 자동검색어처럼 발견되는 글자였다. 뭐든 기세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데 눈치 볼 필요가 있는가. 그리하여 구입하게 된 쨍하고 화려한 수영복! 패턴이 요란하고 색감이 화려하니 수모는 무난한 흰색이 어울릴 것 같았다. 수경도 깔끔한 하얀색으로 맞췄다. 수영장에 간 첫날 초급반 1 레인에서 나는 검은 물개 무리 속 화려한 멍게가 되었다. 물을 먹을 까봐, 숨이 부족해 고개를 과하게 물 밖으로 쳐들고 입으로 푸- 푸- 물을 내뱉는 모습이 영락없이 멍게처럼 보였을 것이다.

“ 따다다다다다닥! 발차기 힘차게!”

강사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수영장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강사님은 텔레비전에서 본 제주도의 해녀 모습과 비슷했다. 수영복 위에 걸친 수영 슈트를 위로 올려 입고 수모에 물을 넣어 머리에 눌러썼다. 처음 쓸 때 스타킹에 얼굴을 넣을 때 나오는 표정이 되던 나와는 다르게 스무스하게 머리에 고정하는 모습이 전문가 같았다.

‘ 몇 살쯤 됐을까?’ 나보다 젊거나 혹은 나보다 조금 많을 수도 있겠다 싶은 여강사의 포스에 압도된 나는 물에 들어가서 슈트 끈을 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분이 머금어진 피부가 탱탱해 보였다. 물속에서는 수영복으로 몸이 가려지고, 수모로 머리통이 가려지고, 수분 감으로 피부나이도 가려져 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다 활기 있어 보이고 젊어 보였다.

1 레인은 나를 포함해 총 6명이었다. 수강 시간이 9시라 주부반이라고 설명했고 주부일 그녀들의 얼굴을 슬쩍슬쩍 살폈다. 얼굴이 앳된 학생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나랑 비슷한 연배 같았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 첫날이라 어색하겠지. 다들 소극적이시네.’

강사님은 허우적거리는 회원 한 명 한 명의 두 발목을 손으로 잡고 힘의 강도를 느낄 수 있도록 직접 움직여 줬다.

“ 호흡 법 연습 전에 우리는 키판 안고 한 번 발차기부터 해봅시다! 어느 정도 가나 볼게요!”

알록달록한 키판들 중 좋아하는 초록색 키판을 들었다. 키판의 비스듬하게 깎여있는 곳이 물아래로 내려가게 잡은 뒤 강사님이 보여주는 시범처럼 똑같이 다리를 왼쪽 오른쪽 위아래로 움직였다. 내 몸이 100kg 정도 나가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 와우씨.”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 처음엔 내 몸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한 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세요. 처음이니까 어느 정도까지 발차기하는지 좀 볼게요! 힘주고 힘힘! ”

얼떨결에 맨 앞에서 시작한 나는 앞으로 가지 않아 당황했고 민망한 마음에 멈춰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 각자 그 자리에서 모두 허우적거리며 발을 휘젓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발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내며 휘젓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이 나이 먹도록 운동을 하나도 안 하며 산 것도 아니었는데, 온몸에 근육이 다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발차기가 되지 않았다.

50분이 이렇게 50년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인가.

2 레인은 실버 반이라고 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오리발을 신고 헤엄을 쳤다. 물속에서는 오리발로 편안하게 헤엄치는 분들이 지상에 발이 닿는 순간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시대를 초월한 누군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이상해졌다.

“ 발등에 힘!”

모범생처럼 발등에 최대한 힘을 주고 물을 차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오늘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은 늘 부족하고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야 사람이다. 처음부터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다. 젠장.

내 마음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 답답함은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정신이 힘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묘한 기분이었다. 수영장에서 나의 20대와 나의 30대가 동시에 파노라마처럼 스쳐간 이유는 잘 모르겠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나의 첫 사회생활과, 리포터 인터뷰와, 이력서 작성과 면접의 순간, 첫 회식의 순간과 회의의 순간, 프레젠테이션의 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뜨거워진 얼굴을 물 안으로 살짝 집어넣어 우- 하고 소리를 내니 달궈진 몸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 숨 참기 잘하네!”

강사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얼굴이 저만 빨개져서요.”

“ 운동 열심히 한 증거예요. 오늘 수고하셨어요! 힘들다고 빠지면 안 돼요.”

물 밖으로 나올 때도 힘이 들었다. 난간을 손으로 잡고 몸에 힘을 주며 읏짜! 올라와야 하는데 힘이 다 빠져 올라가다 미끄러져버렸다. 강사님은 내 모습을 보더니 처음에 올라가는 거 어려울 수 있지요! 하며 허리를 슬쩍 잡아 올려주었다.

“ 최대한 빠지지 말고 나오세요. 제가 한 달 안에 재미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강사님의 말에 네! 대답했다.

함께 수영장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벌거벗고 인사를 나눴고 1 레인이냐며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어머님도 계셨다. 허리를 다 못 펴고 서는 분들도 있었는데 서로 수영복을 올려주는 모습이 나에게는 신기하고 뭉클한 광경이었다.

“어머 연수 아니니”

다리를 박박 문지르고 있을 때 옆에서 벌거벗은 한 여성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아줌마 승수 엄마야. 예전에 아래층 살던. 기억나니? 어머 옛날 얼굴이 그대로라 아줌마가 한 번에 알아봤네.”

“ 아! 아! 아! 엇! 안녕하세요!”

승수로 말할 것 같으면. 16살, 나와 연애를 했던 새하얀 남자아이.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던 승수와 나의 연애는 우리 둘만이 아는 비밀이다. 엄마들끼리도 친하고 아래 위층에서 오래 살아 왕래도 잦았지만 철저하게 비밀로 사귀었다.

교복 입은 아이들의 연애는 기껏해야 함께 독서실에서 집에 오고 오는 길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먹으면서 오거나 시간이 나면 영화를 보는 정도였지만 3개월 동안의 시간은 우리에게 엄청 콩닥거리는 시간이었다. 워낙 친했던 사이라 함께 걸어도 아무 의심을 하지 않았던 우리는 그래서 덕분에 더 자주 붙어있을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는 모습을 봐도 아무도 우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편하게 인사할 수 있는 상황이 편하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친구들도 그랬다.

“ 우리 잘 어울려?”라고 물어보면 친구들은 정색하며

“ 미쳤어?”라고 대꾸를 했으니 그냥 우리 둘은 차라리 잘됐다며 편하게 다니자. 했다.

함께 있으면 손잡고 싶고 손잡으면 뽀뽀하고 싶은 게 사랑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런데 우리는 누구 하나 먼저 손잡지 않았고 누구 하나 먼저 뽀뽀하지 않아서 3개월 동안 정말 같이만 다니는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헤어질 때도 다시 쿨 한 척 친구로 지내자! 연기라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승수는 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그 뒤로 서로 연락처를 알았지만 연락을 한 적도, 일부러 떠올린 적도 없던 것 같다. 딱 그 기억에서 머물러있었다.

3개월 16살의 8살 같은 연애.

수영장에서 승수의 엄마를 만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 어우! 연수도 결혼했지? 이제 승수도 애가 셋이다. 너무 반갑다. 아줌마 다시 이사 와서 근처 사는데 엄마도 수영 아직 하시니? 몇 달 전에 우연히 봤는데. 시간이 달라 자주는 못 마주친다.”

“ 아 네네 엄마는 저랑 다른 시간이라.. 정말 너무 오랜만이라! 그대로 세요.”

홀딱 벗고 있다는 사실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시선하나 피하지 않고 나의 처진 가슴을 , 나의 통 허리를... 대놓고 바라보았다.

“ 아줌마는 4 레인 연수반이야. 이 시간이면 자주 보겠다. 어서 씻어 눈에 거품 들어가겠다.”

“ 아! 네!”

머리에 비벼놓은 샴푸 거품이 슬슬 내려와 눈이 따갑기 시작했다. 샤워기 물을 조금 더 차갑게 바꾸고 머리를 헹구며 생각했다.

‘승수? 승수 엄마? 월 수 금 승수 엄마에게 인사를 하며 헐벗은 몸으로 안부를 건네야 한다. 아 인생이여...’

승수는 솔직한 내 성격이 좋다고 하면서도 그 성격을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애다. 솔직한 감정표현이 매력적이라고 하면서 솔직한 감정표현은 철없는 애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싸울 일 하나 없던 우리는 그런 포인트에서 서로 감정이 상해 한두 시간 말을 안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내 기억이 맞다면 그랬을 것이다.

잘생긴 사람이 있으면 잘생겼다고, 이상한 게 있다면 넌 이상하다고, 짜증이 나면 짜증 난다고 표현하다가 다투기도 하고 결국 돌고 돌아 우린 쭈욱- 우정 돈독한 친구가 됐다.

머리를 말리며 물기가 마르자 거울 속 푸석하고 거칠어진 얼굴이 들어왔다. 거울로 옷장 근처에서 옷을 입는 승수 엄마가 보였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척하며 재빨리 얼굴에 미백크림을 듬뿍 발랐다. 오른손으로는 드라이기를 돌리고 왼 손으로는 크림을 바르며 푸석함을 없애는 재빠른 행동!

승수에게 전해질지 모를 무언의 문장을 가정해 보자.

연수도 아줌마가 다 됐더라? 피부를 보니 연수도 갱년기 접어들었나?...

이런 말이 오가는 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진짜 갱년기 때문일까) 이런 말은 싹을 자르고 싶어 유분기 가득한 크림을 목까지 펴 발랐다.

“ 어머 승수야. 내가 누구 만났는지 아니? 연수, 어릴 때 그대로 예쁘더라!”라는 말을 전하면 좋겠다 싶다. 그래.. 그 말들이 전해진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 만은 그냥 그랬다.

집에 돌아와 수영가방을 정리하며 일주일 세 번 같은 시간에 수영장에 간다고 하면, 한 달에 12번 정도의 횟수. 달마다 12번의 수업에 참석한다고 하면 144번의 수업을 통해 1년이란 시간이 가게 된다는 사실에 놀랐다. ‘생각보다 일 년이라는 단위가 빠르게 흘러가는구나.’

생리 주기에는 다들 어떻게 하는지 검색을 해보니 탐폰을 사용하고 수영을 빠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배움에 대한 의지이자, 즐거움.

나도 곧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왜냐, 다음 수업을 위해 수영복을 물에 헹구고 옷걸이에 걸어 말리는 내 움직임이 그다음 과정이 어떠할 것이야!라고 대신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다른 건 엄마인 내가 뭐든 먼저 경험했다 치더라도 수영만큼은 아이들보다 내가 한참이나 늦었다. 14살이 된 첫째 서아는 이제 수영장 근처에도 가려하지 않는다.

6학년, 초경이 시작된 후로는 몸이 무겁고 피곤한지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자체를 거부했다. 성조숙증 진단을 받고 3학년 때 초경을 할 거라는 의사 선생님 말을 듣자마자 나와 남편은 호르몬제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서아가 할 각종 운동들을 알아봤다. 그때 시작한 게 수영이다. 둘째 서우도 그때 수영을 함께 배웠다. 수영을 다녀오면 기진맥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물에서 놀다 오는 게 뭐 그리 힘든 거라고.. 했던 날들을 반성한다. 지상에서나 당연한 호흡이지 물속에서 호흡을 하는 것 자체는 엄청난 일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됐을 때 누구나 당황스러움을 느낄 테니까. 그 당황스러움을 극복하는 것이 수영이었다.

널어놓은 수영복에서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졌다. 아이들은 25m 스무 바퀴를 어떻게 해내고 돌아왔던 것일까. 말 한마디라도 대단하다고 해줘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 서아가 초등 상급반에서 올라가게 됐을 때는 25m 레인을 18바퀴를 쉬지 않고 돌아야 했다. 사이드 턴, 플립 턴을 하며 물을 가르는 모습을 관망대에서 볼 때면 바닷속 인어를 마주하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저 검정에 노란 스마일 모양 있는 수모 쓴 애가 제 딸입니다 여러분! 제가 저렇게 멋진 딸 엄마입니다. 우후후’

수영을 하면서 아이들의 깨작거리던 식습관도 달라졌고, 수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 한 3학년 때 초경도 다행히 잘 넘겼다. 운동 덕분에 모든 것이 잘 자리 잡게 된 거라며 나는 그때부터 수영을 애정했던 것이었을까.

내가 수영을 시작한 이유에는 나의 아이들도 이유 중 하나다. 수영은 엄마보다 자기들이 더 잘한다는 아이들의 수다가 듣기 좋았고, 어설픈 엄마의 수영 자세를 고쳐주는 아이들의 관심을 받을 때 마음이 콩닥 거렸다. 좋았다. 이 편안하고 살가운 대화들이.

어설픈 엄마 덕에 나의 아이들이 많이 웃고 있으니 수영은 여러모로 나에게 반 이상 먹고 들어간 굿 초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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