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녀오는 길에
지난 수요일, 왕십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낯선 사람들 틈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내 곁에 앉은 한 할머니는 머리숱이 풍성한 백발이었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알맞은 몸, 담홍색 화사한 블라우스를 입고 계셨다.
새하얀 단정한 그 머리는 본래의 품격을 지닌 듯했고,
묵직한 세월을 단아하게 마주한 사람이었다.
왼쪽에 앉은 이 어른을 나도 모르게 힐끗힐끗 보았다.
'나도 이분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 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르신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고맙습니다” 하셨다.
내리실 때도, 또 한 번 환하게 인사를 건네셨다.
나는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분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떠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 내가 조금 착해졌다면 그건 그 할머니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팔 하나가 없는 중년 남성이 작은 종이에 인쇄된 사연을
자리마다 돌렸다.
어떤 날은 그를 외면했고, 어떤 날은 미안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모른 척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지갑도, 카드도 집에 두고 나온 날이었고 내게 있던 현금은 고작 3천 원.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천 원짜리 한 장을 그에게 건넸다.
작은 일이라고 하기엔 내겐 낯선 선택이었다.
그 손길은 평소 신지오답지 않았지만, 조금 전 하얀 백발의 할머니가 준
따뜻한 에너지를 나에게 전파시킨 듯하다.
틀림없이 그분이 내 마음을 조금 더 느슨하게 열어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좌석 반대편에
과하게 날씬하고 단정한 옷차림의 40대 여성이 앉았다.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지만 '변덕이 죽 끊다'는 말이
똑 나에게 맞는 말이었다.
백발의 할머니가 내리자마자
날씬한 40대 여성을 보고 그쪽으로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배둘레헴이라 불리는 똥배는 어쩔 것이여 다이어트를 좀 해야 하지 않겠어'
생각하며 백발 어르신을 잊어버렸다.
나와 마주 보고 앉은 반대편 여성에게 시선이 갔다.
처음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셨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시선이 발끝에서부터 다시 올라갔다.
앙상한 발등, 피골이 드러난 종아리, 푸르스름한 피부.
남편이 투병 중일 때 마지막에 드러난 그의 몸.
바싹 말라 생명이 빠져나간 나무깽이 같았던 그의 다리
그보다 더 마른 형체가 눈앞에 있었다.
지독한 다이어트가 아니었다.
그건 병든 몸이었다.
눈을 감았다.
나는 아무 말도,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그저 모른 체 눈을 감을 수밖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 사람의 말없는 통증이, 그녀의 아픈 마음이
내 안에 있던 오래된 기억을 눌러 깨웠다.
한 공간,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나는 세 사람을 만났고,
그들은 나를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한 사람은 말없이 품격을 주었고,
한 사람은 익숙한 외면 속에서 나를 흔들었으며,
또 한 사람은,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연민과 연결된 고통을 상기시켰다.
그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안고 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