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활동하며, 나를 다시 만나다

by 지오쌤

남편이 떠난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롤랑 바르트처럼.


슬픔을 꺼내 말할 힘이 없었기에,

1년 가까이 글로 내 마음을 풀어놓았다.

아이를 출근시킨 후, 텅 빈 집안에서 글을 쓰며 나를 마주했다.

어느 날 문득, 브런치 스토리가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 많은 조언이 있었다.

그들의 조언을 참고하여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 마치 중요한 시험을 본 학생처럼 처분을 기다렸다.


‘은퇴 나이가 가까운 나 같은 늙은이에게 기회가 올까?’

그러면서도 ' 나이 든 사람도 쓸 이야기가 많다'는

양가적인 마음이 공존했다.


뜻밖에도 작가로 활동해도 된다는 메일이 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말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정말 그랬다.

1년 동안 써놓은 글은 헤밍웨이가 말한 대로 날 것들이었다.

그중 몇 편을 추려서 브런치에 올렸다.


초고를 쓰면서 흘린 눈물만큼,

브런치에 올릴 때마다, 눈앞이 흐려졌고.

목울대에 통증이 번졌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연의 순리를 사랑했다.

그러나 남편이 떠난 뒤엔, 계절이 바뀌어도 느낌도 감정도 없었다.

그의 무덤 앞에 서면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금세 발길을 돌리곤 했다.

신혼 시절 핑크빛 추억을 떠올리려 해도

아무것도 생각 나지 않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거움.

품위도, 세련됨도, 감각도 없는 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미망인’으로 서 있었다.


내가 그려온 삶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미루기 일쑤였고

단순하고 뻔한 일조차 하지 못한 채 우울과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추억은 꺼내기 싫었고, 미래를 희망하지도 않았다.

내 언어는 언제나 맥 빠지게 울적하고, 자기 비하로 가득했다.

이 모든 게 내 탓이 아니라,

죽어버린 남편을 만난 탓이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삶의 결핍 상태가 구체적인 민낯으로 나타나자 스스로 ‘미친년’이라 호명했다.

나는 그 이름을 부르며 슬픔의 순환 속에 갇혀 있었다.

서로 주고받은 상처를 곱씹다 결국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누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어느 순간 내 우울은 상실의 대상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상처받아서는 안 되는 나에게 상처를 남긴 남편을, 탓하고 비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이나 비난은 나를 달라지게 하지 못했다.


점점 더 안 좋은 상태로 빠져들고, 이름 모를 감정들에 녹초가 되어갔다.

마음 안에서 솟구치는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나를 더 공격하고 있었다.


그때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만났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내 마음을 붙잡는 돛과도 같았다.

그것은 글쓰기였다.


슬픔은 말하지 않고 써도 된다는 것,

쓰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진실에 더 가깝다는 것을

롤랑 바르트의 글을 통해 나는 허락받았다.


그 후 매일 글을 썼다. 죽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상실이 남긴 공백 속에서, 새로운 무엇인가가 눈을 뜨고 있었다.

비참하고 삭막했던 가슴 안에서, 작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놀라움과 함께 죄의식이 밀려왔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사실이 미안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브런치작가가 되었다.


남편의 투병이 남겼을 외로움에 미안했고,

내게 남긴 말들이 고마웠으며,

그와의 기억이 더 이상 나를 울리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써 내려갔다.

그래도 자주 무기력했고, 마음은 갈 곳 없이 자주 헤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글쓰기는 나를 살아있게 하는 나만의 고유한 맥박이었다.

어떤 때는 그것이 ‘피난처’였고, ‘축복’이었으며

때로는 즐거운 ‘유희’이기도 했다.

글은 남편을 향한 사랑이 되기도 했고

그의 영혼을 위한 기도로 이어지며

무너져 내리는 나를 붙잡는 마지막 끈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안다.

모순적인 이 행동은 상식의 영역에 속하지 않음을.

아마 글쓰기는 자기 보전을 위한 나만의 메커니즘이었을 것이다.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새로운 슬픔과 마주했다.


나는 늘 자신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이었고,

'아닌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했으며,

부당함 앞에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결국 나를 미봉책으로 대하며

스스로에게 짜증과 핀잔만 퍼부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감정은 바로 ‘연민’이었다.

스스로에게 덧씌운 ‘미친년’이라는 낙인을

비로소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글쓰기가 가져다준 변화였다.


나를 비하하고, 남편을 탓했던 내가,

혼자 날것의 글을 써내던 내가,

브런치를 통해 서서히 세상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로서 나는 나의 존재를 다시 인식해 가고 있었다.

3개월전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날것의 긴 글을 올리던 어느 날이었다.

구독자 한 분이 짧은 댓글을 달았다.

마치 지금까지 올린 나의 슬픔을 모두 숨죽이며 지켜본 듯,

“정말 다행입니다.”

사별과 같은 상실 앞에서 위로는 쉽지않다.

짧은 댓글하나 건네는 일조차 어려운 법이다.

그 한 줄의 공감이, 나를 우울 밖으로 꺼내는 손길 같았다.


그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을 연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괜찮다는 것인지.”

모호함 속에서 오히려 더 따뜻한 위로가 전해졌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 더 이상 네가 너를 들볶을 필요 있겠어?”

내가 혼자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진실이다.

갑자기 찌르듯 파고드는 아픔과 슬픔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슴 벅찬 기쁨 보다 울고 싶은 마음이 더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슬픔 속에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슬퍼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더이상 나를 더 망가뜨리지 않으려 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나는 조금씩 회복해 나가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맥박이 뛰듯 설레는 작업이다.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하는 행위이며,

고통과 아픔도 곧 괜찮아질 거라고 전하는 약속이다.

쓰는일은 자기 확신을 가지는 일이라고 했던가.

이제 브런치에서 나만의 글을 쓰며,

작가라는 두 번째 삶을 항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