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서 집까지
퇴원 후 석훈은 곧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집밥이 목에 걸린 사람처럼 한 숟가락도 삼키지 못했다.
“큰 처형은 음식을 잘하던데, 넌 왜 그런 지혜도 없냐.”
미안함도 주저함도 없이 파고들어 온 그 말을 경이는 삭이지 못했다.
예리한 칼에 찔린 듯 가슴 밑바닥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경이는 석훈의 말대로 지혜가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손끝으로 빚어낼 솜씨도,
그 감정을 말없이 달래줄 언어도 그 순간의 그녀에겐 없었다.
아무 말을 못 했다.
대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앞이 보이지 않았고, 실룩거리는 입술은 풍이라도 맞은 듯 멈춰지지 않았다.
남편과 마주한 식탁에서 국 한 숟가락도 목구멍이 거부했다.
씹지도, 삼키지도 못했다.
그녀는 남편을 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도, 억울하다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왜 억울함과 분노는 늘 눈물을 먼저 데리고 오는가.
남편이 좋아하는 밥 한 끼 제대로 못 해주는 무력한 손.
수술과 항암으로 무너져가는 사람에게 한 발짝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가.’만 곱씹었다.
그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나인가.
경이는 마음속으로 오이디푸스를 떠올렸다.
자신 눈을 찌른 그 인물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불행한 건 아닐까.
석훈이 경이 에게 무심히 한마디를 던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밥 먹어.”
경이는 앞이 흐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친 뒤, 그녀는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운전할 용기도, 도망칠 배짱도, 극단적 선택을 할 용기도 없었다.
아파트 정원을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퇴근하는 자동차들이 하나둘 들어오고
바람에 실려온 냄새 속에는 봄이 섞여 있었다.
‘내 삶에도 봄은 올까?’
분노와 억울함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목 안이 뜨거운 통증으로 울렁거렸다.
퇴근하던 인후가 멀리서 다가왔다.
말없이 엄마의 등을 두드리며 아이가 엄마를 안아주었다.
그 품은 어느새 엄마의 품보다 더 넓어져 있었다.
인후가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엄마, 카페 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쉬었다 와.
그리고 힘들 땐 나한테 연락해.
그땐 좀 퇴근을 빨리할게”
그 마음 앞에서, 경이는 다시 정신을 추슬렀다.
다음 날부터 석훈은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겠다고 병원을 찾았다.
일주일 후, 강원도 해발 600m 고지의 암 환자 요양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그날, 경이는 남편을 데려다주었다.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야 했다.
짐을 정리하자 그는 해 지기 전 떠나라고 재촉했다.
“하룻밤 자고 갈게.”
그 말에 석훈은 목소리를 높였다.
투병 중인 사람이 낼 수 있는 냉정 함이었다.
그건 지친 사람의 마지막 온기를 꺼트리는 힘이기도 했다.
사소한 말다툼 끝에, 경이는 남편을 병실에 남겨두고 고속도로로 향했다.
요양병원으로 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고통과 슬픔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곧이어, 그 감정은 도망치고 싶은 충동으로 바뀌었다.
목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면, 에코처럼 그 목소리라도 살아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그녀는 야수였다.
소리쳐 울고 싶었지만, 울음보다 먼저 분노가 터졌다.
‘왜 하필 나야… 왜.’
외치고 싶었지만, 더 깊은 침묵만이 있었다.
마치 말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어딘가로 튕겨져 사라지고만 싶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차를 세우지 않았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날 그녀가 살아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뒤따라오는 차들의 경적이, 그녀 안의 비명을 대신 울어주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 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