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소리를 세는 하루

약과 마음 사이

by 지오쌤

새벽 다섯 시, 부엌 형광등 아래 집 안은 싸늘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반찬을 만드는 일은,

누군가의 하루를 이어가는 의식 같았다.

북어국이 먹고 싶다던 남편을 위해 경이는 북어 한 줌을 정수물에

가볍게 씻고 찢었다. 마늘을 넉넉히 넣고 들기름에 볶은 뒤, 생수를 부어 푹 끓였다.

약불에서 한 번 더 끓인 후 유정란과 파를 넣어 마지막으로 친정에서 가져온 천일염으로 간을 맞췄다.

취나물은 데쳐 물기를 가볍게 눌러짜고, 들기름, 다진 마늘, 깨소금, 천일염으로 슴슴하게 무쳤다.

콩나물은 데치지 않고 고춧가루와 마늘, 천일염을 넣어 들기름에 살짝 볶았다.

구운 계란과 아보카도, 블루베리, 방울토마토도 곁들였다.


국과 밥은 보온 도시락에, 반찬과 과일은 찬함에 따로 담았다.

석훈은 좋아하는 어묵볶음을 자주 안 해준다며 가끔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식사는 맛보다 질감과 온도까지 조심스러워야 했다.


경이는 곰 같은 손으로 도시락을 쌌다.

둔하지만 신중하고 느린 손이었다.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 손끝에 온 신경을 세웠다.

말하자면, 생명을 다루는 손이었다.


대학병원 암센터 대기실.

그는 요양병원에서 새벽차를 타고 왔고,

경이는 집에서 도시락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들은 약속처럼 말없이 벤치에 마주 앉았다.

“밥부터 먹자.”


경이는 보온병을 열어 국을 따르고, 밥에 김을 돌돌 말아 반찬 옆에 놓았다.

그가 밥을 삼키는 횟수와 시간을 세었다.

젓가락이 잠시 멈출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경이의 하루 리듬이었다.


항암 시간은 아홉 시간.

그가 수액을 맞으며 누워 있는 동안,

경이는 병원 약국에서 구토 억제제를 포함한 약을 받아왔다.

석훈이 맞는 시스플라틴은 특히 그를 지치게 했다.

경이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곁에 앉아 있었다.

창밖 하늘은 밝았다가 흐려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경이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그는 두어 번 깼지만, 그녀는 책 한 장도 펴지 못한 채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계음, 간호사 발소리, 환자들의 낮은 신음이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그의 팔에 꽂힌 링거줄은 경이와 연결된 실 같았다.

통증이 마치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보온병과 찬함은 가벼웠지만 어깨는 무거웠다.

차에 몸을 싣고 남편과 함게 집으로 귀가했다.

항암제의 여파로 입맛이 떨어지기 전에 뭐라도 먹여야 했다.

어머니가 생전에 자주 끓여주던 육개장을 어제 미리 준비해 두었다.

요양병원에서 1박 2일 외박을 허락받아 집밥을 먹이고,

하룻밤은 집에서 재웠다.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2~3일 동안 울렁거림과 구토로 거의 먹지 못했다.

석훈이 진단받기전에도 경이는 까칠했다.

고혈압과 낮은단계의 당뇨가 늘 그녀를 곤두서게 했다.

환우가 되고 항암을 하게되자 경이는 식자재고르는 눈은 더욱 날카로웠다.

그런 경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이는 석훈 옆에서 담배를 피웠고,

또 다른 이는 “음식 조심 한다고 해서 달라지겠냐”며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환우이자 성인병까지 있는 석훈의 식단을 관리하는 일은 그녀에게 필수였다.

그는 오랜 시간 해외에서 홀로 살아온 남자였다.

그래서 그가 먹는 음식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어쩌면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석훈이 요양병원에서 퇴원한 후,

경이는 매일 새벽 녹즙을 짰고, 때로는 해독 주스를 만들어 권했다.

암 환자로서 매순간 마주하는 새로운 세계는,

아직 완치되지 않은 병과 수많은 약 속에서 펼쳐졌다.

석훈이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뉴스가 암 환자들을 흔들었다.

미국의 조 티펜스가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완치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싶은 환우와 그 가족들은 너도나도 이 약제를 구하려 혈안이 되었다.

경이 역시 구할 수 있는 약과 보조식품을 사들였다.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CBD 오일도, 해외 지인을 통해 거금 들여 구했다.

유튜버들은 그 틈을 노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오일을 팔았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자, 이런저런 약과 보조제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암 환자를 상대로 하는 고가의 보조식품들이 시험처럼 다가왔다.

차가버섯, 후코이단 같은 이름들이 경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약을 먹이지 않으면 마치 죄를 짓는 듯한 불안이 장기처럼 따라다녔다.

경이는 영국에서 ‘COC 프로토콜’로 알려진 약제를 준비해 복용시켰다.

그가 쉬는 날이면 고함량 비타민C 주사도 맞았다.

경제적 부담은 컸고,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은 듯했다.

매달 나가는 약값과 보조제로 경이의 수입은 거의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견딜 만했다.

남편이 건강할 수 만 있다면, 돈은 아깝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여행을 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안,

경이는 석훈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시기를 보냈다.

그녀는 남편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기만 해도 충분했다.




- 이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