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인지 고기인지
석훈이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후, 시누이들이 다녀갔다.
그들 나름의 정성이었다.
경이는 그 마음을 받아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엉켜 표현되지 못했다.
결국, 그 모든 감정 위에 ‘암’이라는 거대한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기에
봉투의 크기나 물질적 성의는 경이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했다.
경이가 더 간절히 바란 건,
진심이 담긴 기도와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남편이 요양병원으로 떠난 얼마 후, 시댁에서 연락이 왔다.
석철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남편은 항암 치료로 몸과 마음이 유독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조카 결혼식에 꼭 참석하겠다고 했다.
요양병원 침대 위에서도 말했다.
“장손 결혼식이야. 작은아버지가 빠지면 되겠어.”
경이는 조심스레 제안했었다.
“당신 몸도 그렇고, 음식도 조심해야 하니까... 우리 마음만 전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환자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했다.
그날만큼은, 더욱더 말릴 수 없었다.
경이는 생활한복을 꺼내 손질했다.
겨울 아침 어스름을 헤치며, 항암의 고통을 견디고 새벽차를 타고 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
두 사람은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 예식장 주변을 차로 배회했다.
항암 치료 중인 석훈은 마스크를 쓴 채였고,
그런 그의 모습과 달리 식장은 화려했다.
경이의 결혼식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자유로운 공기, 혼주가 하객들을 찾아다니며 먼저 인사하는 모습.
석철의 아내 주희도 화려한 차림이었다.
경이 부부는 사람 많은 곳을 피해 뒤편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경이는 주희와 눈이 마주쳤다.
스치는 듯한 그 시선.
그러나 주희는 다가오지 않고, 하객들 사이로 조용히 사라졌다.
당당하게 한복 자락을 여미고,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 사이를 오갔다.
그녀는 마스크를 쓴 석훈을 보았을까.
붐비는 하객들 틈에서, 경이는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샹들리에 불빛이 눈 부셨고,
꽃 장식에서 흘러나온 진한 향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예식장의 공기는 지나치게 따뜻했고, 땀과 향수 냄새로 뒤섞였다.
경이는 목덜미가 젖는 것을 느끼며 더 깊숙이 마스크를 당겨 썼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있는 이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선 남편과 그 곁에 선 경이는 초라한 한 쌍처럼 보였다.
화려한 무대의 일부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경이는 잠시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광택 없는 검정 구두가 바닥에 묻은 꽃잎 조각을 밟고 있었다.
그 작은 잎사귀가 괜히 미안해 보였다.
이 대접을 받기 위해, 항암을 견디며 새벽부터 이 남자는 달려왔을까.
경이도 주희도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서로의 침묵이 불편한 공기를 더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
세련된 메이크업, 매끄럽게 말아 올린 머리.
입가에 웃음을 띤 채 영어 단어를 섞어 손님을 맞이하는 그녀.
“어머, 미시즈 김— 오랜만이에요! 우리 언제 보고 지금 보는 거지?
자기, 이 컬러 누가 초이스 해준 거야? 진짜 찰떡이다, 호호호.”
그녀의 웃음소리는 예식장에 깔린 배경 음악처럼 퍼졌고,
결혼식의 진짜 주인공처럼 보였다.
모두가 그녀를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그들에게는 오지 않았다.
그 화려함 한가운데서, 경이는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어깨는 굳고 손끝이 저릿했다.
이 자리에 오래 서 있으면 자신이 투명하게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신랑 주호가 신부와 함께 다가왔다.
“작은엄마, 작은 아빠 오셨어요?”
“그래, 주호야. 축하한다.” 석훈이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작은 아빠.”
주호는 신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야, 인사드려. 우리 작은엄마, 작은 아빠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큰 키에 큰 눈, 시원한 인상의 신부는 또박또박 인사했다.
식사는 스테이크였다.
질겼다.
남편의 고집만큼이나 질겼다.
경이는 조용히 포크를 들었다.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채 오래 씹었다.
씹고 또 씹었다.
턱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가는데도, 고기는 쉽게 잘리지 않았다.
씹는 소리가 귀 안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하루가 천천히 으스러지는 소리 같았다.
식탁 맞은편, 조용히 앉아 있는 남편을 바라보다가,
경이는 고개를 떨궜다.
눈앞이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슬퍼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위로 한마디 없이 앉아 있었다.
석훈은 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까.
그는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충성을 스스로 다했고,
돌보는 이 하나 없는 마음으로 버텨왔다.
그리고, 아무도 그의 그 고집을 묻지 않았다.
그 순간 시누이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 움직임 속에는 말 없는 기대와,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긴장이 묻어 있었다.
경이는 그 틈에 잠시 숨을 고르며
다음 순간을 조용히 맞이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어 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