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은 계속되지 않았다.

신앙심과 불안한 믿음

by 지오쌤

새로 교적을 옮긴 성당 구역장님이 어느 날 집으로 찾아왔다.

“젊은 엄마니까, 활동 좀 해요.” 구역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경이도 제대로 살아 보고 싶었다.

결혼 전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살았던 친정에서와 달리

결혼과 동시에 물 묻히고 사는 삶이 일상이 되었건만

그녀에게는 선인장 가시처럼 미운가시가 박혀있는 듯했다.


시시때때로 묵주기도를 올리고, 성경책을 읽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경이는 그런 성스러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미운가시가 박힌 자신이 수시로 불려 가 야단맞는 며느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통해 제대로 성숙한 ‘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대로는 사람다운 며느리도, 동서도, 올케도 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레지오 단원이 되었고, 봉사활동도 착실하게 시작했다.

매주 불우한 누군가를 위해 묵주기도를 올리고

성당 청소를 하고, 장애우 목욕을 돕는 등 성실히 신앙심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같은 동 2009호에서 매주 기도 모임을 했다.

같은 구역 식구이자 레지오 단원으로서 마땅히 참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진심 어린 기도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기도는 어디에도 닿지 않는 듯했다.

경이가 보기엔 2009호는 단정한 집으로 오히려 그녀가 부러워할 집이었다.


시댁의 도움으로 집을 마련하고

남편은 은행원이었으며 인후와 같은 나이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들의 바람은 둘째 아이가 하루빨리 들어서길 바란다고 했다.

둘째가 빨리 잉태태지 않아 구역식구들의 기도를 요청한 것이었다.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성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경이의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그 무렵 남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터 싱가포르로 떠났다.

그가 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TV에서는 ‘IMF 구제 금융 요청’이라는 자막이 흘렀다.

나라 빚이 1,50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도 했다.

경이는 왠지 모를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경이네는 그해 겨우 집을 마련했고, 빚은 없었지만, 집안의 수입은 급격히 줄었다.


내막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얼굴을 볼 때마다 경이에게 아들을 낳으라 종용했다.

남편의 수입보다 많았던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샵을 정리해 집을 마련한 터

이제 남편은 어린 두 딸을 경이에게 맡기고 해외로 떠났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겠다고 경이는 버겁게 하루하루를 견뎠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와 남편의 불안정으로 인해 정돈된 일상을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어느 날, 레지오 단장인 대모님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모님… 저 혹 제가 잘못된 사람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2009호를 위한 묵주기도가... 전혀 마음에서 나오지 않아요”


대모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율리아, 사람은 때로는 보여주는 삶도 필요한 법이야.”


그때의 경이는 그 말의 참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하면 당시 대모님의 참 뜻을 알아듣지 못한 자신의 옹졸함과 열리지 않은

마음이 부끄러웠다.


며칠 뒤 2009호에서 기도 모임이 열렸다.

다들 다소곳이 앉아 성가를 부르고 묵주를 굴리며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도 사람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성경을 펼쳐놓고 담소를 나누며 커피와 다과를 즐겼다.

경이는 초조했다.


인후는 자고 있었고, 인서는 아침도 못 먹인 채였다.

오전 11시,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조심스레 그 댁 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걱정 마. 인후가 배고프다고 해서

내가 밥 먹여줬어- 계란 프라이 해서 먹였어.”


인서의 밝고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경이는 할 말을 잃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조용히 그 집을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 그녀의 기도는 공동체 안에 머물 수 없었다.

여섯 살 인후가 가스레인지를 켰다는 사실이

숨 막히도록 경이의 마음을 조였다.

그 장면을 떠올릴수록 이마를 벽에 찧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를 했던 걸까?

아이가 가스불을 켜고, 나 대신 무언가를 해내고 있을 때...’

‘네 새끼나 잘 봐.’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 비수처럼 되돌아왔다.


그들은 그녀가 믿음을 버렸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이는 보여주기 위해 믿는 척하고 싶지 않았다.

연극처럼 짜인 공동체 안에서 조용히 물러났을 뿐,

믿음을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전

성당에서 먼저 석훈과 관면혼배를 했다.

유아세례를 시키고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성경학교를 함께했고,

부부는 물론 아이 둘 다 견진성사를 받았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여전히 무릎 꿇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만, 진심이 닿지 않는 기도를 감히 올릴 수 없었다.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믿음이었다.

돌아보면, 경이가 드린 기도는 거의 언제나 ‘감사’였다.


무언가를 얻기보다, 하루를 견딘 것에 감사했고 아이들이 곁에 있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녀에게 기도란, 말을 아끼며 하루를 살아내는 몸짓에 가까웠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보면서 경이는 가끔 의문을 품었다.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 규정하는가.

역사 속에서 종교는 늘 권력과 가까웠다.

‘나의 것이 진리이고, 너의 것이 거짓’이라면,

이 세상엔 진리란 없다는 뜻이다.


불경을 외는 스님,

메카를 향해 절하는 이들,

방언을 내뱉는 누군가…

그들 마음 안엔 저마다의 신을 향한 간절함이 있었다.

기도의 모양은 달라도, 하늘에 닿고 싶은 마음은 같다고 믿었다.


그녀는 사람을 믿었다.

침묵하던 아버지의 믿음처럼,

드러내지 않아도 삶 깊은 곳에서 울리는 그런 믿음.

그래서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살아내는 삶을 믿음이라 여겼다.

그 길이 틀렸는지 스스로 되묻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다만 바랐다.


자신의 삶과 침묵을, 어떤 존재 앞에서도 떳떳하게 내어놓을 수 있기를.

그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그 형상이 다르다고 해서,

사랑과 존엄을 가르치지 않는 법은 없었다.

법당이든 성당이든, 바람이 스며드는 어느 자리든,

그곳에서 그녀는 여전히 같은 진리를 배웠다.

삶을 침묵으로 견뎌낸 날들조차도, 그 믿음 안에서 의미를 얻고 있었다.


어느 밤, 현미에게 전화가 왔다.

삶이 무거워질 때마다, 가볍게 은줄을 튕겨주는 친구.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는 친구에게

들볶는 속내를 다 꺼내지 못하지만,

그녀가 남기는 한마디가, 한 줄의 글이 문득 정신을 바로 세우곤 했다.


신앙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던 경이는

세상을 넓게 보는 그녀에게 위로 같은 조언을 듣고 싶었다.

그날 속내를 이야기했다.


“너는 너무 바른 사람처럼 살아.

기도까지 그렇게 성실하게 하려는 거 보니까.

꼭 모범생 같아. 나 같으면 못해.”

가볍게 튀는 공처럼 말한다.


경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실한 척이라도 해야지”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마. 너만의 길을 걸으면 돼

“가끔은 성실한 척 안 해도 돼. 이미 충분해.”


현미의 가벼운 멘트가 안도감을 주었다.

그 말이 그날 밤, 다시 묵주를 손에 쥐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의 마음속 믿음 하나만으로도

기도는 조용히 시작될 수 있다는 걸 경이는 깨달았다.


삶은 결국, 다시 부엌 불 앞에 서는 일이고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는 손길에서 새롭게 시작된다.

그날 이후, 경이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챙기고,

무릎에 앉은 작은 몸을 토닥이며 하루를 정리했다.

바람이 지나가던 자리엔, 늘 그런 작고 따뜻한 일들이 남았다.

삶이 이 평온을 허락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녀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평화는 잠깐이었고, 곧 아이들과의 일상이 그녀를 전장으로 불러냈다.

그녀는 이제, ‘좋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 부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