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의 목화솜이불
결혼할 때, 나는 혼수를 내가 벌어 내가 준비했다. 소설 속 경이처럼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에 서툴렀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단 한 푼도 보태달라 하지 않았다. “걱정 마시라”
그게 효도라고 믿었고, 그게 나다운 방식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친정엄마는 못내 섭섭해하셨다. 이미 아이 낳고 사는 막내딸에게 엄마는 뒤늦게, 옛날 방식으로 만든 솜이불을 보내왔다.
아파트에 살고, 침대에서 자는 딸에게
두툼한 목화솜이불은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직까지 그 이불은 쓰이지는 않으면서
장롱 한 칸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요즘은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식사도 잘 안 하는 문화다. 그러니 집에서 누군가 자고 가는 일은 더더욱 드물다.
각자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바닥에 요를
까는 일도 거의 없다. 목화솜이불은 무거워 필요 없는 물건이 되어갔다.
그런데도 그 이불만큼은 이사를 갈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함께 옮겼다.
요즘 묵은가구를 철거하고 방을 바꾸고 가구배치를 새로 하는 중이다.
오늘,
장롱 안을 차지한 이불이 눈에 거슬렸다.
유기견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좋은 곳에서 쓰이면 마음이 덜 불편할 것 같아서였다.
수신음을 10차례 보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순간, 이불을 보내는 게 아니라 친정 엄마 마음을 정리하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러다 곧 태어날 손주가 생각났다.
딸아이가 복직하면 주중에는 우리 집에서,
주말에는 딸네 집에서 지낼 아이다.
패밀리 침대 대신 아이가 오는 주말엔
바닥에 요를 쓰기로 한 딸부부.
이제 처음으로 엄마의 이불이 ‘자리’를 찾은듯하다
엄마가 나에게 보냈던 솜이불을 틀어서 딸내외요와 아기 요를 각각 만들어 우리 집과 딸 집에 두는 것.
버리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보내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끌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시간과 온기를 옮기는 일이었다
그동안 장롱을 열 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 이불은 이제 장롱 속에 갇힌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을 지켜줄 예정이다.
엄마 마음이 신혼시절의 막내딸에게
오래전에 도착했고 이불은 이제야
제 역할을 찾은 셈이다.
-개인적 사정으로 연재를 잠시 미루고 있습니다. 곧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