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순환

돌봄의 조각들

by 지오쌤

소리 없이 연재를 멈춘 불량작가입니다.

한집에서 10여 년을 살다 보니 적재된 물건이 포화상태였습니다.

그것들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이 이사급이었네요.

그러다가 대상포진을 앓게 되어 이제야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죄송합니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이다.

기온은 점점 올라갔다.

무더위는, 건강한 사람도 밥 한 끼 챙기기 어려운 계절이다.

그때 공저를 낼 때 함께 작업했던 선생님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선생님, 식사는 하시는 거죠?

선생님 꼭 한번 안아드리고 싶어요.

제 품은 언제나 열려 있어요.

따뜻한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어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경이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문장은 ‘밥 한 끼’보다 더 따뜻했고,

슬픔에 빠진 마음을 소리 없이 끌어올리는 손 같았다.

그 문장 하나가, 경이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언젠가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문장을 보낼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저장해 두었다.


또 경이는 큰언니와 형부가 차려준 밥상이 자주 생각났다.

형부는 오래전에 퇴직했고, 연금으로 소소하게 살아가고 있다.

경이가 언니 집을 찾을 때면 형부는 꼭 고기나 생선을 사 와 반찬을 만들어 주신다.


“혼자 있으면 반찬 없이 밥만 먹을 거 아니야.”

부엌에서 형부가 경옥언니에게 가만히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말이 무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방문했을 땐 그저 ‘고마운 일’쯤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그 따뜻한 배려 앞에서 마음이 내려앉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경이손에 한 보따리의 반찬을 들려준다.

어느새 형부는 쌀 한 포대를 말없이 넣어두셨다.

“차에 쌀 실어놨어. 꼭 밥 먹어.”

미안하고 고마워서 숨이 막힌다.

아무런 무슨 설명도 없다.


말보다 더 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경이는 배운다.

언니가 준 반찬으로 며칠을 버텼고,

그 쌀로 밥을 지으며,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밥 꼭 먹어라.”

그 말이 경이 안에서 오래 울린다.

어느 날, 마을의 ‘빌런’이라 여기는 어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을 일을 하며 알게 된 분이었다.

남편 장례를 마치고, 친정에 머무르던 때였다.

그때 전화가 왔다.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한참을 침묵하더니

“왜 연락 안 했어요… 제가 너무 미안하네요…”


며칠 뒤, 그분은 경이집에 직접 찾아오셨다.

조심스럽게 부의금을 건넨 뒤,

헝클어진 베란다를 유심히 둘러보셨다.

화초와 화분으로 가득하고, 엉망으로 널려 있는 공간.

마당이 있는 그분 댁의 테라스를 부러워했었다는 걸

기억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이집은 난간 자르고 계단 만들어 내려가면 테라스로 활용할 수 있는거 알죠?

우리가 해드릴게요.”


그분은 실제 관리실 직원들을 데리고 공사를 추진했다.

경이는 차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경이에게 작은 마당이 생겼다.

두 평 남짓되는 공간이었지만,

그것은 경이에게 ‘살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하지 않은 그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좋아하는 화초도 튼튼하게 키우고

그래야 당신도 사는 겁니다.”


경이는 자신이 오늘까지 살아낼 수 있었던 건

거창한 희망이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 ‘돌봄의 조각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프 톨스토이는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애써 살아간다고 믿지만,

사실은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


누군가의 밥 한 끼,

곁에서 무심히 등을 쓸어준 손길—

그런 것들이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다.

핸드폰 속 한 줄의 메시지

부엌에 서서 무언가를 해주던 노인의 시간,

그리고 ‘빌런’이라 여겼던 이의 묵직한 배려.

그 조각들이, 무너진 경이를 조용히 다시 조립해주고 있었다.


사랑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있다.


경이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성공도, 해방도, 이름조차 붙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그 이름 없는 사랑들이,

경이를 다시 살아가게 하고 있으니까.


“돌봄은 받은 만큼 되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이어주는 순환이다.”


책을 나누고, 화분을 나누고,

함께 걷는 병원길을 동행하고,

지금 경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작고 느린 방식이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돌봄을 되돌리고 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일부사건과 인물은 픽션이 가미되었으며

실존인물이나 단체와는 무관합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