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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une May 22. 2022

나는 가족이 그립지 않았다

내가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


나는 가족이 그립지 않았다.


‘아, 엄마가 정말 보고 싶다, 동생이 정말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옛날부터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무슨 냉혈한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그랬던 것 같다. 쓸쓸하다는 생각, 외롭다는 느낌은 들지만 "누가 보고싶다!"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들을 보러 가기 전에도 그랬고, 같이 있을 때 조차도 느끼지 못했는데, 정작 내가 가족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가족들을 만나고 6개월 뒤 일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였다.


다시 혼자가 되어 쓸쓸해져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우울한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내 안에 뭔가가 메워진 느낌. 가슴으로 따뜻한 밥 한 끼 먹은 것 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전에도 물론 일 년에 2번 정도는 가족들을 만나러 갔었다. 그 때는 "가야 하니까 간다, 다들 가니까 간다"라고 생각 했던것 같다. 내가 보고 싶어서 가는 것 보다 가족들이 나를 그리워 하니까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한 번 씩은 가족, 친지들도 만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기본적으로'나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국 밖으로 나가서 살고 있는 불효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가던 날 코로나도 텅 비어있던 공항


일본에는 우리 나라 같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는 큰 명절 같은 연휴가 2번 있는데, 12월과 1월에 걸쳐 있는 신정 휴가와 8월에 있는 오봉(お盆)이라는 연휴이다. 참 절묘하게도 우리나라 설, 추석과 약 한 달 정도가 어긋나 있어서 일본 휴일에는 다들 쉬니까 쉬고, 설이나 추석에는 가족,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서 또 휴가를 냈다. 물론 눈치는 보였다. 그래도 생일에 맞춰서 축하하지 않으면 그 의미가 옅어지듯이 명절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겠는가. 한국 가족들은 나 보다도 휴가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맞춰서 가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한국에 가지 못하더라도 명절에 쉬면 항상 일본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서 사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 맞은 첫 추석에는 신입이라 눈치가 보여서 휴가를 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만들지 않던 송편을 6조 작은 방구석에서 혼자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혼자 만들어 혼자 먹는 송편이 맛이 있을리 만무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라도 추석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다른 많은 이유와 핑계들


  연말도 도쿄 방구석에서 혼자 보낼  없어! 라는 생각 하나로 도망치듯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질럿지만 사실은 걱정도 많았다. 가장  걱정은 “과연 엄마와 3개월 동안 평화롭게 지낼  있을  인가였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도 해야하고, 도항 하기 위해 해야  일과 비용이 많아서 단순히 일주일 방문 하자고 한국을 들어갈  없었다.


모든 비용적, 효율성 측면을 생각하면 적어도  , 길면   정도는 있어야 뽕을 뽑겠다 싶었다. 일단 부장님께 메일로간단히 상의를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가족의 사정으로 귀국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사적인 것을  케뭍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3개월을 체류 예정으로 잡고 있었다.


20살 때 대학을 입학하면서 서울로 떠나 "가족"을 나가 산지 햇수로 벌써 17년째다. 대학생 방학 때 집에서 몇 번 지낸 것을 제외하면, 졸업 후 10년이 넘는 동안 나는 집에 일주일 이상 머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물 수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기가 어디 쉬운가. 아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https://unsplash.com/@masamasa3


더군나나 나는 2014 부터 일본으로 떠나 외국 나가 사는 딸이 된지 오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단 일본에 오니 한국에 가는  자체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까 말한  처럼 연휴도 다르고, 가까운 일본이라고 해도 시간도 문제지만 비행기를 타게 되면 돈도 문제가 된다.  번씩 집에   마다 교통비만 기본적으로 50만원 씩은  각오를 하고 가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에만 잠깐 있다 가는  아깝고, 주말을 끼고 휴가를 내서 와야 하기 때문에 많아야 일년에 2 정도 였다. 게다가 코로나 중에는 이동 자체가 힘들었다. 비행기 편수가 줄어들어서 항공권 가격이 평소의 2-3 가량으로 오른 것은 물론 이고, 나가기 전에  돌아올 때도 PCR검사며 접종 완료 증서 등등 챙겨야할 서류들과 절차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 “어유 우리 딸 왔어~ 보고 싶었어~” 하고 애지중지, 화기 애애한 시간은 길어야 3일. 이 후 부터는 차츰 싸우기 일쑤였다. 생활 속에서 나오는 먼지 같은 자잘한 말싸움과 그 후 여운과 같은 기싸움은 말 할 것 도 없고, 결혼과 돈과 미래를 둘러 싼 말이 나오면 서로의 고집과 오해들로 뭉쳐진 감정의 폭풍이 뜨거웠던 상봉의 감동 마저 흔적 조차 없이 휩쓸고 가버리기 마련이었다. 혼자 사는게 더 익숙해져버린 큰 딸래미는 이렇게 엄마를 만나는 기쁨보다도 걱정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서  가족과 일주일 넘게 같이 보낸 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엄마 잔소리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너무 심심해서 미쳐버리는 것 아닐까, 적어도 한달에 한 번 씩은 서울에 놀러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핫플도 가야지하는 걱정과 결심들이 머리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봐야 할 이유들이 더 많았기에 나는 일단 모든 걱정을 접고,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 만의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찌 되든, 한국 음식 하나는 푸지게 먹고 올 수 있지 않겠는가!


나리타 공항에서의 먹은 2021년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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