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족이 그립지 않았다

내가 돌아가지 않았던 이유

by Kimune


나는 가족이 그립지 않았다.


‘아, 엄마가 정말 보고 싶다, 동생이 정말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옛날부터 별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무슨 냉혈한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그랬던 것 같다. 쓸쓸하다는 생각, 외롭다는 느낌은 들지만 "누가 보고싶다!"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들을 보러 가기 전에도 그랬고, 같이 있을 때 조차도 느끼지 못했는데, 정작 내가 가족을 그리워하고 필요로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가족들을 만나고 6개월 뒤 일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였다.


다시 혼자가 되어 쓸쓸해져서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우울한 쓸쓸함이나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내 안에 뭔가가 메워진 느낌. 가슴으로 따뜻한 밥 한 끼 먹은 것 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전에도 물론 일 년에 2번 정도는 가족들을 만나러 갔었다. 그 때는 "가야 하니까 간다, 다들 가니까 간다"라고 생각 했던것 같다. 내가 보고 싶어서 가는 것 보다 가족들이 나를 그리워 하니까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한 번 씩은 가족, 친지들도 만나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기본적으로'나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한국 밖으로 나가서 살고 있는 불효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가던 날 코로나도 텅 비어있던 공항


일본에는 우리 나라 같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이는 큰 명절 같은 연휴가 2번 있는데, 12월과 1월에 걸쳐 있는 신정 휴가와 8월에 있는 오봉(お盆)이라는 연휴이다. 참 절묘하게도 우리나라 설, 추석과 약 한 달 정도가 어긋나 있어서 일본 휴일에는 다들 쉬니까 쉬고, 설이나 추석에는 가족,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서 또 휴가를 냈다. 물론 눈치는 보였다. 그래도 생일에 맞춰서 축하하지 않으면 그 의미가 옅어지듯이 명절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겠는가. 한국 가족들은 나 보다도 휴가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맞춰서 가는 것이 여러모로 편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한국에 가지 못하더라도 명절에 쉬면 항상 일본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서 사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본에서 맞은 첫 추석에는 신입이라 눈치가 보여서 휴가를 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만들지 않던 송편을 6조 작은 방구석에서 혼자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혼자 만들어 혼자 먹는 송편이 맛이 있을리 만무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라도 추석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더랬다.



그리고 다른 많은 이유와 핑계들


올 해 연말도 도쿄 방구석에서 혼자 보낼 순 없어! 라는 생각 하나로 도망치듯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질럿지만 사실은 걱정도 많았다. 가장 큰 걱정은 “과연 엄마와 3개월 동안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 인가” 였다. 코로나로 인해 격리도 해야하고, 도항 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비용이 많아서 단순히 일주일 방문 하자고 한국을 들어갈 순 없었다.


모든 비용적, 효율성 측면을 생각하면 적어도 한 달, 길면 세 달 정도는 있어야 뽕을 뽑겠다 싶었다. 일단 부장님께 메일로간단히 상의를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가족의 사정으로 귀국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은 사적인 것을 잘 케뭍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3개월을 체류 예정으로 잡고 있었다.


20살 때 대학을 입학하면서 서울로 떠나 "가족"을 나가 산지 햇수로 벌써 17년째다. 대학생 방학 때 집에서 몇 번 지낸 것을 제외하면, 졸업 후 10년이 넘는 동안 나는 집에 일주일 이상 머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물 수 없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기가 어디 쉬운가. 아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기 시작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https://unsplash.com/@masamasa3


더군나나 나는 2014년 부터 일본으로 떠나 외국 나가 사는 딸이 된지 오래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단 일본에 오니 한국에 가는 것 자체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까 말한 것 처럼 연휴도 다르고, 가까운 일본이라고 해도 시간도 문제지만 비행기를 타게 되면 돈도 문제가 된다. 한 번씩 집에 갈 때 마다 교통비만 기본적으로 50만원 씩은 쓸 각오를 하고 가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말에만 잠깐 있다 가는 건 아깝고, 주말을 끼고 휴가를 내서 와야 하기 때문에 많아야 일년에 2번 정도 였다. 게다가 코로나 중에는 이동 자체가 힘들었다. 비행기 편수가 줄어들어서 항공권 가격이 평소의 2-3배 가량으로 오른 것은 물론 이고, 나가기 전에 또 돌아올 때도 PCR검사며 접종 완료 증서 등등 챙겨야할 서류들과 절차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집에 가면 “어유 우리 딸 왔어~ 보고 싶었어~” 하고 애지중지, 화기 애애한 시간은 길어야 3일. 이 후 부터는 차츰 싸우기 일쑤였다. 생활 속에서 나오는 먼지 같은 자잘한 말싸움과 그 후 여운과 같은 기싸움은 말 할 것 도 없고, 결혼과 돈과 미래를 둘러 싼 말이 나오면 서로의 고집과 오해들로 뭉쳐진 감정의 폭풍이 뜨거웠던 상봉의 감동 마저 흔적 조차 없이 휩쓸고 가버리기 마련이었다. 혼자 사는게 더 익숙해져버린 큰 딸래미는 이렇게 엄마를 만나는 기쁨보다도 걱정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서 가족과 일주일 넘게 같이 보낸 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엄마 잔소리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너무 심심해서 미쳐버리는 것 아닐까, 적어도 한달에 한 번 씩은 서울에 놀러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핫플도 가야지하는 걱정과 결심들이 머리 한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봐야 할 이유들이 더 많았기에 나는 일단 모든 걱정을 접고,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 만의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찌 되든, 한국 음식 하나는 푸지게 먹고 올 수 있지 않겠는가!


나리타 공항에서의 먹은 2021년 일본에서의 마지막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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