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지쳐서 돌아갈 곳이란 집밖에 없었다
이제는 나의 서브 사무실이 되어버린 도쿄 니시신주쿠의 스타벅스 안 창가 지정석에 앉아서 오늘도 변함없이 끄적끄적 업무를 하고 있었다. 때는 2021년 9월 중순이었고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사람들도 못 만나던 나는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그 외로움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남들도 다 그렇다고 한들, 내 외로움이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하...올해 연말연시도 이렇게 혼자 보내는 건가’
그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연말연시 연휴가 길다. 일본계 정통 대기업들은 보통 12월 말부터 1월 초에 걸쳐서 2주 이상 휴가이고, 우리 회사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주말을 합하면 이래저래 10일 넘는 연휴가 있었다. 2년 연속으로 나는 그 기간을 거의 혼자 보냈다. 3년 연속으로 그렇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이젠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을 느꼈다.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하게 지친 마음을 안고 있었다.
친구들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일이든 아니든 나는 사람들 만나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 편이었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이 벌이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2019년 3월 IT기업으로 이직 후 매달 한국으로 출장을 오고 개인적으로는 해외 여행을 하던 생활을 하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벌써 1년 6개월이 넘게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뭔가 정신적으로 말라가는 것을 느꼈다. 약 3일에 한 번 씩 정신적 부침을 겪었지만, 우울함에 잠식 당하지 않기위해 정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쳐지지 않기 위해서 ‘아침루틴 만들기', ‘운동루틴 만들기' 같은 크고 작은 챌린지를 해 보며 자존감을 끌어 올리는 것에서부터, 코로나 때문에 특히 눈에 띄기 시작한 부자 되기를 목표로, 놀면 뭐하냐며 부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낮은 그렇게 채운다고 해도, 쓸쓸한 밤이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위험을 무릎쓰고 가끔 만남 어플로 마스크 쓰고 데이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생각한 대로 잘 되는 것은 없었고 역시 일상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거나 회사 일로 영상 회의를 할 때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말 한 마디 해보는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로 채우고 있었다. 대화다운 대화는 가족들과의 영상통화를 할 때 정도였고, 한국 친구들에게 칭얼대며 카톡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한국 음식 만들어서 먹는 것으로 감정의 허기를 채웠던 나는 음식솜씨와 비례해 체중도 늘어갔다.
어디 국내 여행이라도 최대한 멀리 다녀와야겠다며 4월과 8월에 각각 일본의 끝과 끝, 오키나와와 홋카이도 최북단으로 일주일 이상 워케이션을 떠나기도 해봤지만 그 때 뿐이었다.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한 여행지에서도 뭔가 모를 헛헛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집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인테리어에도 공을 들였고, 나의 공간을 꾸미는 것은 나름 재미가 있었다, 우리 맨션은 반려동물이 금지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돌볼 수 있는 한 반려식물들을 잘 돌봐 주려고 노력했다. 아마 내 공간을 가꾸고 정갈하게 해 나갔 던 것이 나를 지탱해준 큰 힘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20살 때 서울로 대학을 나와서 8년, 서울에서 일본 도쿄로 와서 8년. 도합 16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다. 아마 지방에서 서울로 또는 해외로 대학을 가서 그대로 직장을 잡은 많은 사람들이 다시 긴 기간 집에 돌아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외롭다고 고향집에 내려가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닐 수 있는 방법,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는 방법은 마음 쓸 수 있는 것 만큼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가족의 품이었다. 오랜만에 집에가는 설레임 보다 걱정이 많았고, 코로나시국에 해외로 출국하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지만, 나는 좀 돌아 누울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도쿄에서, 이방인의 외로움에서 도망치듯 나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