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좋아한 베트남의 카페들
나에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어서 지금 머릿속에 어디 한 곳을 딱! 그리면 뿅! 하고 갈 수 있다면, 나는 베트남의 초록초록한 카페로 가고 싶다. 와이파이와 전기와 커피가 흐르는 베트남의 오아시스!
하노이 북카페 Nhã Nam Book Cafe: 하노이 대학 근처의 귀여운 북카페. 많은 베트남의 대학생들이 숙제를 하고 있었다. 베트남어로 된 해리포터, 어린 왕자, 짱구를 보는 재미가 있다.
내가 사는 도쿄에서는 와이파이 빵빵하고 충전할 곳도 있는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도쿄 올림픽 때 즈음에서 손님들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카페가 늘어나긴 했지만, 일본에서는 벽에 전원이 있다고 함부로 충전을 했다가는 전기 도둑취급 당할 수 있다. 테이블 근처 전원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떤 곳은 전원을 테이프로 발라서 꽁꽁 막아놓기도 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딱히 잘 알지도 못하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맛과 내가 싫어하는 맛 정도 구분할 수 있다. 그런 나에게 카페 선택에 있어서 내 취향의 커피 맛만큼 중요한 것은 널찍한 자리와 좋은 분위기, 빵빵한 와이파이와 충전할 수 있는 환경 되시겠다.
호이안의 등불이 예쁜 카페 Hadi Coffee : 커피도 맛있고 직원들이 살갑다. 분위기도 좋고. 매연, 먼지 싫어하는 사람은 카페 안쪽에 앉자.
오, 뭔가 힙한 카페다! 싶으면 보통 아날로그를 감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도쿄 카페들은 와이파이나 충전기가 없는 곳이 많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일을 하고 싶은 나로서는 갈 수 있는 곳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베트남에 와보니 카페에서 와이파이는 기본 중의 기본이요, 충전기 쓸 수 있는 곳도 정말 많아서 감탄을 했다. 층마다 와이파이가 있고, 콘센트가 멀리 있을 땐 연장선도 빌려주는 곳도 있었다. (대신 에어컨이 있는 곳은 손에 꼽는다. 더울 땐 베트남에서도 별다방 같은 체인점 카페 선택이 현명하다)
처음에 베트남에 갈 때는 이런 베트남 인프라를 잘 모르고 일단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유심칩도 인터넷무제한에 속도 제일 빠른 걸로 사고, 무게만 2킬로 가까이 되는 멀티 충전기를 일본에서 사갔다. 이게 내가 싼 짐 중에서 제일 쓸모없고 무거운 짐이 될 줄이야. 10만원이 넘는 거라 아까워 버리지도 못하고 여행 한 달 내내 그 충전기를 달고 다녀야 했다.
내가 사랑한 냐짱 카페 Nhà Hè Cafe : 매일 출근한 카페. 초록초록하고 예쁜데 반미까지 맛있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에어컨도 나오고, 양도 많고, 와이파이 빵빵하고, 충전할 데도 많다. 조금 안쪽에 있기 때문에 근차로 오시면 들러보시라 추천드린다.
이번 여행은 일종의 워케이션이었기 때문에 평일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저녁과 주말에만 여행을 즐겼다.
화상 회의를 할 때는 일본어를 쓰며 마치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느낌이 들다가도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딱 들면, 카페 앞으로 오토바이 떼가 지나가기도 하고, 냐짱의 바다가 보이기도 했다. 일상과 비 일상이 합쳐지고, 시공간을 마음대로 드나드는 느낌.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마치 몇 번이나 순간 이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바뀐게 하나도 없는데. 직장도 그대로고 혼자인 것도 똑같은데. 내가 마음 먹고 있는 장소만 바꿔도 이런 삶을 살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할 시간이 적은 나에게 전날에 도시 곳곳의 이쁜 카페를 찾아 놓고 아침 7시부터 2, 3 군데 찾아다니며 그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내 나름의 여행법이었다. 일본/한국과 베트남은 2시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업무를 아침 8시에 시작해야 했는데, 웬만한 카페와 음식점이 아침 7시면 문을 여는 베트남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유럽감성 달랏 카페 MORNING IN TOWN CAFE : 솔직히 음식은 별론데, 인테리어나 테라스 좌석의 경치와 분위기만으로도 가볼 만한 카페. 근데 좀 비싸요.
여행하기 전에는 모처럼 여행하는데 일도 해야 한다는 내 상황이 불만스럽기도 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보면 뭐 그렇게 좋은 직장이 있냐고 하겠지만, 나는 "내가 부자였으면, 아니면 적어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여행하는 동안은 일을 쉬고, 24시간 30일 종일 놀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내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호치민에 머무를 때쯤 '내가 일을 하면서 여행을 했기 때문에 한 달 동안도 여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의 도시, 부온 마 투옷의 이쁜 카페들: 여기까지 오지는 분들 많지 않으시겠지만, 오시면 예쁘고 조용하고 커피 싸고 맛있는 카페 많아요. 혹시라도 부온 마 투옷 들리시는 분들 위해 몇 곳 추천.
Roma Iceblended, Yên Coffee BMT, Mốc Mộng Mơ
비단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뭐, 한 일주일 정도는 매일매일 하루 꽉꽉 채워서 여행 계획 세우는 게 재미있을 수도 있고 체력도 따라줄 수 있다. 하지만, 정해진 루틴이 없는 여행을 하다 보면 텅 비어 있는 내일은 또 뭘로 채워야 하는지 매일매일 뭐라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때론 버거울 때도 있다.
보통 여행을 쉬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리조트에서 밥 먹고 잠만 자는 여행이 아니라면, 여행이라는 게 하다 보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래서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여행도 쉬어 줘야 하는 때가 생긴다.
평소에 많이 걷지도 않다가 여행 가면 매일 만보씩 넘게 걷게 되고, 모르는 길을 찾아 가느라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며, 먹을 거 주문하나 하더라도 못하는 외국어를 용기를 쥐어짜 내야 하니, 실제로는 내가 익숙한 루틴으로 보내는 하루의 몇 배의 기운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호치민 중심부의 노마드 워커를 위한 감성카페 워크샵 커피: 입구가 찾기 힘들어서 근처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누군가 여기찾지? 하면서 입구를 알려주셨다. 가격은 도쿄 브런치 카페 가격과 비슷한 정도의 수준. 직원들도 영어를 잘하고 친절했으며, 뭔가 베트남 경제허브에 있는 카페다운 느낌.
28살 때 일본으로 이민을 오기 전에 한국의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동안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 유럽에 와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라! 하며 최대한 매일을 알차게 보내려고 했다.
그래서 그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고 호스텔에서 뒹굴 거리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이었다. 아니, 어떻게 온 여행인데. 언제 다시 올 수 있을 줄 모르는데! 하루 숙박비만 해도 얼만데!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게으르지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여행의 중반, 비가 오는 파리의 어느 날. 발바닥도 아프고 엄청나게 피곤했지만 '오늘도 뭐라도 해야 해' 하면서 우산 들고 밖으로 기어나갔다가, 결국 다음 날 몸져누웠던 어느 날에 그 친구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 배낭여행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장기로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치 5일 일하고 주말에 쉬는 것처럼, 때때로 숙소에서 푹 쉬어주는 거였다. 그렇게 해야만 길게 여행할 수 있는 거였다.
나의 호치민 오피스 The Coffee House : 크고 넓고 쾌적하다! 체인점은 이 안정된 맛으로 오는 것 아니겠는가. 어디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땐 에어컨 나오는 하이랜드, 더 커피하우스, 스타벅스를 추천
내 경우, 베트남에 여행을 와서도 베트남 시간으로 오전 8시에 시작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고, 하루에 몇 시간씩 내 일이 시간을 채워주는 루틴이 있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 않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는 시간이 여행을 쉬는 시간이 된 셈이다. 일을 하는 동안은 앉아 있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비축이 되었다.
일 빨리하고 빨리 놀아야지 하는 마음에 일도 집중해서 하고, 비어있는 저녁시간에 뭘 할지, 주말에만 뭘 할지만 고민해도 됐기 때문에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었지만 한 달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일상에도 쉼이 필요하지만, 여행에도 쉼이 필요하다. 뭐든 균형이 중요한 것 같다. 만약에 일상의 삶중 주중 하루 이틀만이라도 마치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여행을 온 듯이 한 시간, 하루를 아깝게 생각하며 산다면 어떨까?
우리는 보통 쳇바퀴 돌듯 흘러가는 하루를 지루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제와 비슷하지만 조금만 다른 오늘 하루를 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하루를 사는 것보다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매일매일을 외국에 여행 온 것 처럼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스케줄을 보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가진 어제와 똑같은 상황과 일상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낯선 것에 둘러 싸여봐야 익숙한 것의 편안함과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을 갔다 와서 외치게 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역시 집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