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S강사 허지영 Jul 22. 2021

화려한 궁전 속 스캔들)왕실 막장드라마

헨리 8세와 여섯 왕비들

헨리 8세 천하의 바람둥이 왕


헨리 8세는 헨리 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형이 일찍 죽으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헨리 8세 집권기는 영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치 사회적 격변을 치러낸 왕이기도 하지만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여섯 명의 여인과 결혼한 헨리 8세우리는 오늘 헨리 8세의 궁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첫 번째 부인 :아라곤의 캐서린 (Cahterine of Aragon) 결혼 기간 1509~1533 20년


그녀는 헨리 8세의 형 아서와 결혼하지만 아서 왕자는 5개월 만에 요절합니다.

그때 캐서린의 나이는 17살이었습니다.결혼 약정에 의해서 캐서린을 다시 아라곤으로 보낼 경우

결혼식 때 받았던 20만 두캇을 보내야 했습니다.(그당시 엄청나게 큰돈이 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왕실끼리 결혼이 이루어질 때대대로 신부 측에서 딸을

시집보내면서 지참금을 보내는데, 그 의미는 "이제 신부는 당시네 나라 사람이니 우리는 신부의 품위 유지비와 생활비를 더 이상 대지 않겠어"란 의미입니다.그런데 이 지참금의 양이 나라 살림에 도움이 될 정도로 굉장히 많았습니다.



형수와 결혼한 헨리 8세


하지만 캐서린은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헨리 7세의 미움만 받다가 헨리 7세가 죽으면서헨리 8세 즉 자신의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게 됩니다.나이 어린 헨리 8세가 머나먼 스페인에서 온 형수를 남모르게 흠모해왔었습니다.실제로 캐서린 왕비는 새하얀 피부와 빛나는 금발 머리 대단한 미인이라고 합니다.

몇몇 신하들도 캐서린의 미모를 칭송했었는데요,아마 헨리 8세도 이런 캐서린의 외모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헨리 8세는 캐서린보다 6살이나 어린 나이였지만 키도 크고 훤칠한미남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캐서린 왕비를 지극히 사랑했던 "사랑꾼"이었습니다.

캐서린 또한 스페인에서 높은 교육을 받고 시집을왔기에 헨리 8세와 대화가잘 통했고 신앙심도 깊었습니다.헬리 8세는 캐서린을 열렬히 사랑했고 아이들도 3남 3녀를 낳았어요.

그런데. 이중 3남 2녀가 요절하거나 사산이 되어헨리 8세에게 남은 건 메리 공주 하나였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캐서린왕비


잉글랜드는 여성이 왕위에 오르지 못해 아들이 꼭하나 있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캐서린 왕비가 폐경이 오자 헨리 8세는캐서린에게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결심을 할 무렵.. 헨리 8세에게 캐서린 왕비의 시녀 출신인 "앤 불린"이라는아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밀당의 고수 앤 블린(ANNE BOLEYN)결혼기간 1533~1536 3년


앤블린은 캐서린의 왕비의 시녀였습니다.어린시절 3년간을 프랑스에서 보낸뒤 15세때 귀국했다고 합니다.그녀는 검게 빛나는 눈을 가졌는데 그것빼고는 그렇게 보잘것 없는 여자였다고 합니다.

헨리8세는 앤블린을 그저 첩으로만 두려 했을것입니다.앤블린의 가문은 귀족가문은 아니지만부유한 

가문이었고 유럽왕가의 시녀는 하녀보다는 왕족의 "가벼운"시중을 드는 명예로운직위였습니다.

왕가에서도 시녀도 아무나 뽑지않고 주로 고위 귀족 가문의 여성을 골라뽑았습니다.

앤은 프랑스 왕비의 시녀로 일하면서 프랑스의 문화,지식,에티켓을 배워 세련된 여성으로 거듭났습니다.

앤블린은 짙은 갈색눈동자 짙은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흰피부와 금발 벽안을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치면서 앤블린은 그렇게 미인축이 아니었다고 합니다.하지만 앤블린이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몸에 익힌 세련된 매너와 몸짓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은 화술을 이용해 자신의 매력을 뽐낼 줄 아는 여성이었습니다.





자매를 탐한 헨리 8세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 헨리 8세와 앤블린의 관계에 대해 잘 나타나있는데요.

헨리 8세는 앤 볼린의 동생 메리 불린을 정부로 두었습니다.

심지어 동생 메리 브린은 유부녀였지만,헨리 8세에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메리 블린은 아들도 낳고 딸도 둘이나 낳았지만 정부라는 이유로 메리 볼린과 그의 아이들은 외면당했습니다. 또한 메리블린에 대한 사랑도 오래가지 않습니다.헨리 8세는 도대체 제정신일까요? 자매를 모두 다 자기 부인으로 만들려는정신은 어디서 온 걸까요?

앤 블린은 자신이 정부가 되면 자신의 동생과 똑같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헨리 8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습니다.헨리 8세의 애간장을 녹입니다.

왕도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에 그녀를 꼭 쟁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당시 캐서린 왕비(첫 번째 왕비)에게서는 "메리"딸 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헨리 8세는 간절히 아들이 필요했고 캐서린은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니캐서린에 대한 사랑은 더 이상 없었지요.







앤블린을 위한 헨리 8세의 종교개혁


1531년 헨리는 캐서린 왕비를 궁정에서 추방합니다.불쌍한 캐서린은 연금도 못 받아 빈곤하게 삽니다.

조강지처를 버린 왕.그 당시 이혼 신청은 로마 교황의 권한 아래 있었습니다.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과 단절까지 선언합니다.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의 성공회를 탄생시키는데덕분에 이 종교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게 됩니다.

제가 영국 시민이라도 앤 불린 이 너무 싫을 거 같습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의 남편을 뺏어간 여자는 대중의 공분을 사게 되죠.게다가 캐서린은 영국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기에특히 더 미움을 받았습니다.

1532년 헨리는 앤과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을 낳을 것을 확신했는데요.아들을 낳겠다고 아내랑 종교까지 바꿔버린 사람이니 앤은 꼭 아들을 낳아야겠죠.영국 시민들의 기도가 통했던 걸까요?앤 브린은 여자아이를 낳고 맙니다.캐서린과 기나긴 싸움에 쟁취한 앤은 캐서린의 아이"메리 공주"에게 "나는 이제 이 나라의 왕비다 너는 정부의 딸이지.나에게 온 힘을 다해 왕비 대접을 하란 말이다"라고 강요했지만 메리에게는 어머니를 쫓아낸 나쁜 년이었죠.메리가 끝까지 예를 갖추지 않자 메리를 엘리자베스(엔 볼린의 딸)의 시녀로 임명해 모욕감을 주기도 합니다.


1536년 캐서린 왕비가 병으로 사망하는데 앤은 기뻐날뜁니다.캐서린이 죽자 앤과 헨리는 기쁨의 상징인 노란색 옷을 입고 출제를 벌였다고 합니다.앤 브린은 마지막에 죽음을 당하는데 어쩜 자신이 저지른 대가를 치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앤은 아들을 유산하고 결국 헨리 8세의 마음은 멀어져 갑니다.

직선적인 말투가 매력적이어서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바락바락 대들기만 하는 앤 블릭이 더 이상 매력이 없습니다.헨리 8세는 순종적이고 얌전한 제인 시모어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남동생과 섹스스캔들


앤 볼린을 제거하기 위해서 앤과 깊은 관계가 있던 남자들을 체포하는데 죄목 중에는 남동생을 포함한 수많은 남자들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죄목이 있습니다.이게 사실일까요?아님 앤블린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일까요?밝혀진바는 없습니다.근친상간은  성경에서 엄금하는 대죄였습니다.

결국 앤은 처형을 당합니다.

앤의 딸 엘리자베스가 3살 때 앤은 죽음을 당했지만 영국을 40년 동안 통치하면서강대국으로 이끈 "엘리자베스"여왕입니다. 자식농사는 성공했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죽음을 당하고 마는데요..

헨리8세의 남은 4명의 여인들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시간에..





작가의 이전글 부인의 친구와 동생과 바람핀 디에고 리베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