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에 걸려 잘 걷지 못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보다 현저히 말라 불균형입니다.
여자는 잘 걷지 못하고 18세 때 교통사고를 당해 그녀는 온몸에 있는 뼈가 으스러지고
골반뼈가 세 동강 나며 아이를 가질 수가 없게 됩니다.
21살의 이 여인은 43살의 뚱뚱하고 두꺼비와 하마 돼지를 교묘히 썩어놓은 덩치가 큰 남자의 세 번째 부인이 됩니다.
이 남자는 첫 번째 부인의 친구와 불륜도 저질러 딸을 낳았고요.
두 번째 부인과 결혼생활 중 21살의 여인을 만나 바로 결혼을 합니다. 아이도 넷이나 있습니다.
21살의 어린 여자는 왜 이 하마와 결혼하는 걸까요?
21살의 여자는 미술계 여성 혁명가 프라다 칼로이고
43살의 두꺼비 아저씨는 멕시코의 혁명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입니다.
또한 멕시코 500페소 지폐에 둘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실 피카소의 사생활을 쓴 이후로 이젠 웬만한 예술가의 사생활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사랑한 혁명가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러 가보실까요?
디에고는 1886년 멕시코 과나후아또에서 태어났습니다.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그의 형은 1살 때 사망했다고합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소질이 있었는데 10살에 미술학교에 입학해 6년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디에고는 20살에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 파리에 머무르며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배웁니다. 미술에 대한 시각을 차츰차츰 넓혀나갑니다.
1910년 멕시코 혁명으로 인해 멕시코에 잠시 귀국합니다.
디에고는 거리로 나가 이런 열망을 그래도 담아 벽화로 남기는 작업을 합니다. 멕시코시티 내 역사적 장소는그의 벽화로 장식이 됩니다.
그렇게 그의 멕시코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은 높이 평가되어서 국민 예술가로 추앙받게 됩니다.
다시 파리로 돌아갑니다.
파리로 돌아가며 피카소, G. 브라크 P. 클레 등을 만나며 입체파 미술을배우게 됩니다.
오! 피카소를 만났다니..
여기서 여성편력을 제대로 배워 온 걸까요? 미술도 배우고 여성편력의 영향을 받게 된 걸까요?
1911년 첫 번째 부인 러시아의 미술가 안젤리나 벨로프 결혼하고 아이들도 셋이나 나았습니다. 부인의 친구와 은밀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오랜 시간 부인의 친구와 관계를 하고 딸도 낳게 됩니다.
10년 동안 결혼생활을 지속했지만 디에고는 끊임없이 바람피웁니다.
디에고는 여자들을 사랑하고 업신여기고 미안해하고 때리기를 반복합니다.
디에고는 두 번째 결혼 과델루페 마린과 재혼했지만 그사이 프리다 칼로와 바람을 피웁니다.
프라다 칼로는 디에고와의 결혼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두 번의 사고를 당했는데,
첫 번째 사고는 경전철과 충돌한 것이고,두번째 사고는 디에고와 만난 것이다."
남편을 만난 것을 사고라고 말하는 프리다.
디에고는 과연 어떤 남자였을까요?
멕시코 공산당원이었던 디에고 프리다는 1928년 디에고가 있던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여 같이 활동을 합니다. 디에고는 프리다에게는 스승 같은 존재였겠죠?
프리다와 디에고는 '정치'색이 아주 잘 맞는 혁명가를 꿈꾸는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결혼 전 디에고는 멕시코 백화에 프리다를 그려서 넣어줬을 만큼 로맨틱했습니다.
디에고는 이렇게 프리다를 깊이 사랑했네요.
하지만 디에고가 계속 이렇게 로맨틱했다면 프리다의그림들은 세상에 없었을 거 같습니다.
"디에고는 나의 예술성을 알아봐 준 남자에요.나의 평생소원은 디에고를 사랑하는 일이고
그림을 계속 그리는 일이에요.나는 혁명가가 되고 싶어요."
프리다는 교통사고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입니다.
프리다는 아이를 몹시 가지고 싶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는데 계속된 유산과 디에고의 무관심으로 우울증에 걸립니다.
프리다는 힘든 고통을 이기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데요.그 그림을 본 디에고는 이런 말을 합니다.
"프리다는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고통을 감내하는
프리다의 힘이 담겨있다."
남편인가요? 평론하신 사람인가요?
심지어 이렇게 평론하시면서 프리다의 친여동생과바람을 피웁니다.
나는 성격이 괴팍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계속해서 상처 주고 싶다.프리다는 나의 역겨운 성격으로 인한 대표적인 여인이다.
디에고
정말 괴팍해서 동생과 바람을 피운걸 정당화하는디에고 입니다.
여동생도 제정신은 아닌 거 같습니다.프라다는 이젠 디에고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에고...너는 진짜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나를계속 계속 칼로 찔렀어.
나는 너에게 복수를 할 거야.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프리다 칼로는 바람을 피웁니다.
일본일 조각가와 바람을 피우고 50대 혁명가와 비밀스러운 연애도 합니다.
또 여자와도 바람을 피웁니다.
바람피운 사진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목숨을 다 걸고 프리다를 사랑하오
그런데 이상해요 프리다는 나를 사랑하다면서
그녀의 모습에는 디에고가 있어요.
프리다와 함께 있어도 디에고가 옆에 있는 거 같아요."
프리다는 디에고를 벗어날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지만 떠날 수 없어 또다시
디에고와 재결합을 합니다.
"경제생활과 성생활을 함께 하지 않는 조건입니다"
하지만 1940년 건강이 악화된 칼로는 결국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만했고 몇 차례의 척추 수술은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리베라는 또 여배우와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로가 죽기 전 1953년 개인전을 열어주기 까지 했는데요..
프리다 칼로가 세상을 떠난 후 디에고가 남긴 말
결국 프리다는 47살에 자살을 합니다.
그녀는 자화상을 디에고에게 보냅니다.
"널 만나면서 나는 나를 항상 찌르고 있었다.
내 마음은 피투성이였다."이런 말을 디에고에게
하고 싶은 거겠죠?
프리다 칼로가 죽고 1년 후 그의 조수와 결혼을 하는데요. 진정한 멋진 바람둥이입니다.
그도 금방 죽을 것을.. 왜 그렇게 바람을 피우고 다녔
1957년 멕시코시티에서 작고합니다.
"멕시코 예술과 사상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 그는 혁명적 작품을 통해
멕시코 역사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라카로 카르테나스 델 리오 멕시코 전 대통령
"일상적인 고통 속에서도 리베라는 인생에서 정당한 것이라 여긴 것들을 실천해왔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바로 노동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