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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S강사 허지영 Jul 11. 2021

19세기 나쁜남자 프란츠 리스트




1823년 11살 남자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습니다.

반짝거리는 파란 눈동자 하얀 피부 발 그래진 볼 금발인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리며 윤이 납니다.

연주 실력 또한 눈을 뗄 수 없이 황홀합니다.

연주가 끝나자 베토벤은 이 눈부신 기교로 청중을 사로잡은 천재소년에게 다가가 입을 맞춥니다.

천재 작곡가 베토벤의 마음을 훔친 이 소년은 누구일까요?


훤칠한 키에 부드러운 카리스마 금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수많은 여성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남자에게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의 파란 두 눈동자는 무대에서 찬란하게 빛이 났고 찰랑찰랑한 생머리를 풀러 헤치는 모습에 여성들은 실신까지 했다고 합니다.

피아노 연주가 끝나면 리스트는 연주장갑을 일부로 피아노위에 두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자 팬들이 서로 장갑을 차지하려고 몸싸움까지 벌렸다고 하는데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피아노 울림과 화려한 쇼맨쉽 "피아노의 마술사"라고 불리게 되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1811~1886 입니다.




리스트는 무려 1000곡이 넘는 피아노 곡을 작곡합니다.

리스트는 1811년 10월 22일 헝가리의 도보르얀(오스트리아의 동부)에서 외동아들로태어납니다.


리스트의 아버지 역쉬 피아노 바이올린 오르간 첼로등 여러 악기를 다루는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집사였습니다.아버지덕에 리스트는 어린시절부터 음악과 함께였습니다.



어느날 리스트의 아버지가 피아노선율을 그대로 외워부르자 아버지는 여섯살인 리스트를 데리고

도시 빈으로 갑니다.

우리아이들 피아노를 칠때  기준을 "체르니"로 잡잖아요.

체르니 100번부터 시작해서 체르니 30번 꽤잘친다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그당시 가장 유명했던 선생님은 "체르니"였습니다.체르니는 베토벤의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체르니는 리스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무료렛슨을 해줍니다.

가족모두가 빈으로 이사를 해서 리스트는 체르니에게 계속 렛슨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리스트는 아버지와함께 이곳저곳 다니며 콘서트를 했는데요.

아버지가 어느날 장티푸스에 걸리셔서 갑작그런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해온 리스트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리스트의 아버지는 미래를 예언이라도 하신듯

리스트에게"여자를 꼭 조심하거라"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떠나십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파가니니에 대해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1832년 파리오페라 극장에서 파가니니의 신들린 연주를 보고 리스트는 그의 음악세계를 바꿀만큼 큰 충격을 받습니다.

항상 아버지손에만 이끌려 연주여행을 다니던 리스트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만듭니다.


리스트의 대표곡인 연습곡으로 남은 <6개의 파가니니 대연습곡>S.141 중 3번 "라 캄파넬라"입니다.

이곡은 연주가 불가한 <작은 종에 의한 화려한 대환상곡>을 개작한것입니다.리스트는 이곡을 당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합니다.파가니니가 바이올린으로 모든 테크닉을 구현했듯 리스트는 피아노로 모든것을 표현합니다.하지만 파가니니에게 없고 리스트에게 있었던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건바로 "여심"을 잡는 능력이었습니다.

리스트는 조각상과도 같은 자신의 얼굴로 여심을 뒤흔듭니다.

리스트는 자신의 콧날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싶었고 결국 피아노의 방향을 옆으로 놓으며 연주를합니다.


결국 리스트의 연주를 보고 너무 좋아 실신하는 여인들이 등장합니다.지금의 아이돌처럼 리스트의 팬클럽도 생겨나는데요팬클럽이름은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특히 돈많은 귀부인들이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리스트의 콘서트를 감상했는데 귀부인들은 공연장 앞자리에 앉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입니다.리스트가 남기고간 커피 찌꺼기 담배꽁초 리스트의 흔적을 찾기위해 열혈 귀부인들은 최선을 다해 리스트를 뒤따릅니다.

사생팬이라고 하죠?

그당시에도 리스트를 따라다니는 아줌마들이 엄청많았고 연주를 마치고 떠나는 리스트뒤에 마차가 수십대가 등장하고 어떤귀부인은 리스트를 배웅하기 위해 대형 증기선을 빌리기도했습니다.

리스트의 퍼포먼스에 청중들은 집단히스테리 증세를 일으켰답니다.


 


파리의 살롱에는 많은 음악가나 문학가 화가 사상가들이 모여있습니다.

리스트는 파리의 살롱에서 리스트보다 여섯 연상인 마리다구 백작부인을 만납니다.

리스트의 나이 22살 그녀의 나이 28살 하지만 마리는 15살이나 많은 백작과 결혼해서 두아이도 있었던 유부녀였습니다.


그녀는 리스트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맙니다.큰키에 창백한 하얀얼굴 깊이 빨려갈 눈동자 이런사람이 피아노를 치는모습에 마리는 리스트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결국 마리는 리스트와의 사랑을 선택하고 둘은 스위스행을 택합니다.

스위스에서 마리와 리스트는 아름다운 자연이 둘러싸여서 음악의 몰두를 합니다.

리스트는 마리와 세아이를 낳았는데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마리는 아이셋의 엄마가 되면서 독박육아가 시작되었습니다.


리스트의 많은 순회공연으로 리스트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시간이 없어집니다.

육아의 지친아내 일이 바쁜남편.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수 있는 지친 가정의모습입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셋입니다.


리스트의 연주명성이 날로 높아지자 극심한 여성팬들이 리스트를 따라다니는데 당시 리스트와 스캔들이 난 수많은 여인중에 뒤마의 소설<춘희>의 모델이 된 마리뒤플레시와 무용수 롤라 몬테즈등도 있었습니다.

집에서 아이셋을 보고있는 마리는 견디다 못해 리스트에게 헤어짐을 고합니다.가정마저 버리고 나와 리스트에게 헌신했던 마리인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녀의 아이들은 리스트의 어머니가 키우고 리스트는 연주로 돈을벌어 어머니에게 양육비를 주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마리는 리스트와 헤어진뒤 <레리다>라는 소설을 집필합니다.

무능한 화가인 나쁜남자가 귀족의 딸을 유혹하는 내용입니다.마리의 인생을 후회했던걸까요?

무능한 화가는 "리스트"겠죠?


마리와 헤어진후 리스트는 몸과 마음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을 합니다.

여러 여자들을 만나기도 합니다.이런 리스트에게 정착을 하게된 여인이 있는데요

러시아 키에프에서 열린 자선공연에서 리스트는 이공연에 거액을 후원한 부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폴란드 거부의 딸이었던 카롤린입니다.

러시아 키예프의 비트겐슈타인 왕자와 결혼해서 딸이 있었지만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습니다.

그동안 리스트는 그동안 미인들만 교제를 했었습니다.

특이한점은 카롤린은 미인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그녀의 얼굴은 강한 눈매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그런 느낌의 여인이었습니다.

리스트는 카롤린에대해 "그녀는 이성과 감성이 조화롭고 사고력도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연주활동에 여러지역을 돌아다녀야 했던 리스트에게 카롤린은한곳에 정착해서 작곡에 전념하라는 제안을 합니다.

아마 리스트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묶어두려했던 카롤린의 제안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리스트는 35세의 연주자로서 생활에서 은퇴를합니다.

젊은나이에 무대에서 내려옴으로써 "무결점 연주의 전설"이라는 명성까지도 얻게 됩니다.

둘은 1848년 바이마르에 정착하게 됩니다.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악장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작곡에만 전념하기로 합니다.


카롤린과 리스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카롤린과 리스트는 저푸른 초원위에 4층 짜리 그림같은 저택에서 13년간 거주합니다.


리스트에게도 하루 루틴이 있었는데요.아침형 인간인 리스트는 오전내내 작곡을 한후점심에는 뵐로우등 젊은 제자들과 바이마르 모임에 참석합니다.오후에는 레슨을 하거나 작곡수업을 했습니다.

또 저녁에는 실내악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특히 리스트는 주변인들과 좋은 교류를 많이 했습니다.

체르니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 리스트가 만난 사람들까지.한사람 한사람의 관계가 정말 중요한거 같습니다.리스트는 독신자였지만 카롤린과 결혼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카롤린은 이미 결혼 상태였기때문에 둘의 결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카롤린의 이혼허락이 떨어졌어야 하는데 전남편 비트겐슈타인 왕자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바티칸 교황청에 손을써 결혼하거를 철회하도록 종용합니다.러시아 정부는 그녀의폴란드 영지를 모두 압류해서 누구와 결혼할수 없게 돈줄을 막습니다.

15년간의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1861년 바티칸에 편지가 한 장 도착합니다.

교황이 둘의 결혼 허가를 다시 철회한다는 편지 였습니다.

둘은 이제 로마의 각자 아파트에서 각자의 길을 떠납니다.


리스트에게 마리와의 결혼생활에서 아이셋이 있었는데요.파리에서 리스트의 어머니손에 아이들이 자랐습니다.큰딸 블랑댕은 변호사와 결혼하고

둘째딸 코지마는리스트의 제가 뵐로와 결혼을 합니다.하지만 나중에 아버지 친구 바그너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네요.결국 코지마는 바그너와 결혼을 하는데 리스트자체도 우여곡절인생을 살았지만자신의 딸이 친구와 결혼하는 일을 겪자 도저히 받아드릴수가 없어 코지마와의 연을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법대에 다니던 아들 다니엘은 아버지와의 돈독한 우정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스무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고 맙니다.

아들을 잃은 고통에 슬퍼할겨를도 없이 

큰딸 블랑댕이 26세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갑자기 닥친 리스트의 불행에 리스트는 검은옷을 입고 수도원에 머물게 됩니다.


리스트는 말년에  바이마르의 이층짜리 작은집에서 

"마스터 클래스"라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의 수업형태를 만듭니다.

일대일 렛슨이 아닌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오픈된 형태로 마스터 클래스 수업을 열기로 합니다.


마스터클래스 수업은 학생모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질문을 주고 받을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체리니와 살리에르가 리스트에게 레슨비를 받지않은것처럼 리스트도 그은혜를 잊지 않고 렛슨비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아티스트로서 예술을 위한 희생없이 많은 돈을 벌어서는 안되다"고 강조했습니다.



1886년 75세의 리스트는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유언에는 "나의 장례식은 되도록이면 화려하지 않고 간결하게적은비용으로 음악이나 추모연설 없이 해주세요.친구나 지인을 부르는것도 싫습니다.혹시라도 유해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일은 하지말아주세요"

리스트가 남긴유품은 사제복과 7장의 손수건뿐이었고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은 음악이나 추모연설없이 고요히 진행되었습니다.

카롤린도 리스트가 생을 마감하자마자 7개월만에 리스트의 뒤를 따라갑니다.

둘은 부부의 연을 맺지못했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했습니다.

서로에게 "불멸의 연인"이었던것입니다.





나는 때때로 나의 깊은 슬픔을 소리로 표현해낸다.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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