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의 3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
오늘은 헨리 8세의 세번째 부인인 제인 시모어 입니다.이분도 시녀 출신입니다.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인 캐서린 아라곤의 시녀였고그녀가 쫓겨나서는 앤불린(두번째 부인)의 시녀가 되었습니다.
앤블린과 헨리 8세의 관계가 소홀해졌을때쯤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눈에 들게 됩니다.제인 시모어는 앤불린에 비해 정치나 종교에는관심도 없었고 조용한 편이었는데아들까지 낳았습니다.그아들이 헨리 8세를 이어 바로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6세입니다.
불행히도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고 출산후유증으로 바로 죽었다고 합니다.
영국은 헨리 8세가 영국 국교회를 만들면서 가톡릭과도 멀어졌고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에
견제받고 있었습니다.그래서 다른 개신교 세력과 동맹이 필요했는데 제인시모어가 죽고 없는 상황에서 왕비자리에 동맹국의 여자와의 결혼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맞이한 네번째분인이 신교국가인 클레브르 공국의 앤입니다.클레브스 공국은 지금의 독일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포샵때문에 쫓겨난 네번째부인 앤
여성의 미모를 엄청나게 따졌던 헨리 8세는 결혼하기 전에 궁정화가를 보내서 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오라고 했습니다. 궁정화가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눈에 반했던 헨리 8세는 바로 결혼을 추진합니다.그렇게 해서 결혼이 성사되었는데 녀의 실물이 그림과 딴판이라서 헨리8세는 빈정이 상합니다.그러한 이유로 네번째 결혼은 반년만에 파경을 맞습니다.앤은 영어도 못하는 독일출신이었고 당시 르네상스 그림기르고 문학얘기하는 여성들과 달랐는데헨리 8세는 앤을 두고 "클레브스의 암말"이라고 조롱까지 했다고 하네요.
그녀가 진짜 미녀인지추녀인지에 대한 얘기는 아직도 논쟁거리입니다.결국에는 헨리 8세와 결혼이 무효처리가 되었고 앤은 고향으로 안돌아가고 위자료로 성한채를 받아서영국에서 호화스럽게 살았다고 합니다.
저도 예전에 성가대 시험을 보러갔는데 포샵을 가득한 사진으로 이력서를 냈는데 지휘자님께서 사진을 보고 저를 뽑으셔서 면접으로 보러갔는데 사진과 너무 달라서 완전 좌절한 얼굴이 떠올라요.ㅎㅎ
다섯번째 부인 캐서린하워드 (네번째 부인 시녀)
왕비로 간택될때 캐서린하워드의 나이가 10대 후반이었다고 합니다.헨리 8세는 50대였다는
이시기가 헨리 8세의 결혼 생활을 통틀어 캐서린 하워드때가 가장 콩가루 였다는 생각이 듭니다.부부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뒷얘기가 있습니다.캐서린 하워드도 귀족가문 이었지만 집안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궁정들어오기 전부터 남자친구들이 여럿이 있었는데 헨리 8세와 결혼하고도 여러 남자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나이많은 헨리 8세에 만족을 못한것이겠죠.
결국 간통의 상대들은 산채로 가죽이 벗겨져죽었다고 합니다.캐서린 하워드도 사형되었구요.
남자들 너무 불쌍하네요..산채로 가죽이 벗겨져서..
마지막 부인 캐서린파
헨리8세의 마지막 부인은 "캐서린 파"였는데요.헨리 8세도 이젠 엄청 할아버지 였겠죠?
하지만 캐서린 파도 헨리와의 결혼이 3번째 였다고 합니다.헨리8세의 첫왕비인 캐서린 아라곤의 딸 메리 1세(엘리자베스여왕)과 상당히 친했다고 합니다.같은 가톡릭 교도라서 그랬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아빠인 헨리 8세의 눈에 띄어서 마지막왕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딸의 친구랑 결혼을 한건가요?헨리8세는 이제 늙고 늙어서 캐서린 보다 먼저 죽었다고 하는데요
캐서린은 한번도 결혼을 더했다고 합니다.와..캐서린 팔자도 부럽네요 남들은 한번밖에 못한 결혼은 왕과 결혼도 해보고
헨리8세가 어느날 말을 타다가넘어진뒤로부터 머리를 다친뒤로 포악해지고 육식을 즐기면서 여성들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정확한 진술은 아닙니다.)그럼에도 이 주장에 신뢰가 가는걸 첫번째 부인과 십여년을 다섯아이들을 낳고 다정한 남편으로 오랫동안 잘 살았거든요.갑자기 여자편력으로 성격이 바뀐것을 보면 머리가 다쳤다는 일화가 웬지 설득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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