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너무 재밌다. 최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태국 그리고 베트남 넷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을 따돌리고 1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이 많은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강원도 바닷가 시골 마을에 개원한 치과 의사 혜진(신민아 배우)과 이 마을 만능 백수 두식(김선호 배우)의 사랑 이야기가 골자다. 그 이웃들의 '사람 이야기'까지 솜사탕처럼 그려진 예쁜 드라마다. 이제 마지막 두 에피소드만 남아 벌써부터 아쉽다.
개인적으론 매작품마다 '리즈'를 갈아치우고 있는 신민아 배우의 사랑스러움에 푹 잠겨버렸다. 어쩜 우리 아내님처럼 사랑스러운지.. :) 조한철 배우가 분한 한물 간 가수이자 시골 카페 주인인 오춘재 역도 흘러간 과거를 추억하는 장면이 꼭 내가 하던 짓과 비슷해 뭉클하고, 뭐 그렇다.
그나저나 혜진의 대학 선배이자 케이블 예능방송 PD인 성현(이상이 배우)의 이뤄지지 않은 사랑을 보다가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나는 왜 두식이 OTT로, 성현은 레거시 미디어로 보일까. OTT는 Over-The-Top의 약어다. 셋톱박스를 넘어서는 콘텐츠 서비스를 가리킨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왓챠 같은 구독형 VOD 플랫폼이 대표격이다. 요즘 잘 나간다.
레거시 미디어는 좋게 칭하면 '과거의 유산' 정도로 해석되지만 수십년 전부터 업계에선 ATL / BTL 로 나뉘는(ATL에 속함) 올드미디어를 일컫는다. 지상파 방송 3사, 라디오, 각종 신문사, 잡지 등이 속한다.
생기발랄하게 생동하는 오늘날 미디어 이용자를 혜진에 빗대면 너무 무리일까? 츤데레지만 자상한데다 이것저것 잘하는 것도 많고 숨겨진 매력이 풍성한, 그러면서도 '때깔 좋은 백수' 느낌의 OTT, 즉 홍반장(두식의 애칭, 김주혁 배우 오마주)에게 마음을 빼앗긴 혜진.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성현 선배의 눈빛은 미디어 이용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옛 성터' 같은 느낌의 레거시 미디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즈니스 통계·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OTT 서비스 시장은 7억9천2백만 달러로 추산됐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집에서 동영상 보는 시간이 늘어난 경향에 힘입어 올해 9억7천4백만 달러까지 시장이 몸피를 키울 것으로 예측된다. OTT 광고 수익은 2025년 21억 달러 수준까지 우상향 할 것으로 전망된다. 21억 달러면 한화로 2조 5천억 원 규모다. 헐.
반면 한국의 메이저 지상파는 점차 인기가 우하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시청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는 모습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다. 연간 방송 광고 집행 추이만 보더라도 펜데믹 시기 반짝 상승치를 보이지만 이내 완만히 흘러내릴 것으로 전망됐다.
재밌는 건 극중 케이블 방송 PD로 나오는 성현 선배는 사실 엄밀히 따지면 지상파 사업자에 속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CJ의 Program Provider인 tvN이나 종편 PP인 JTBC 등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대안처럼 자리매김한 사업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들은 지상파 3사처럼 따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체 플랫폼(pooq)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넷플릭스에 보다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며 넷플릭스가 깔아놓은 글로벌 무대에 자사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품질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인 작가, 감독, 스타 등은 어느 사업자와 작품을 하고 싶을까?
영민한 선호 선배는 연적인 OTT, 아니 두식과 손 잡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촬영 장소나 현지 출연자 섭외를 의뢰하고, 첫사랑 혜진을 잘 부탁한다며 진심으로 두 사람을 축복해주는 멋진 선배다. 작금의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tvN이 꿈꾸는 큰 그림이 선호 선배에 투영돼 보이는 건 직업병 탓일까, 뭘까.
마지막 2회를 앞 둔 <갯마을 차차차>. 홍반장의 마지막 서사가 잘 마무리 되길 바란다. 그래야 혜진의 알콩달달한 분량이 조금이라도 더 나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