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er, Legend 즉 황제이자 전설로 불렸던 독일 축구계의 신화 베켄바우어 바이에른 뮌헨 회장이 최근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독일 언론은 그의 영면을 고인의 행적과 명암, 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매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독일의소리 방송 DW는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 중 하나인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세상을 떠났다”, Die Zeit “빛 중의 빛이었다”, 슈피겔 “축구의 전설이 사망했다” 다양한 제목으로 그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독일 제1공영 ARD에서는 평소 낮시간에 주로 2차세계 대전 당시의 참상과 반성의 뜻을 담아 히틀러와 나치의 행적을 비판적 시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가 나오는데요. 이번 주는 베켄바우어의 다큐멘터리가 집중 방영될 정도로 독일에서 그의 존재감은 상당히 큽니다.
정말 역사적으로 뛰어난 선수이자 감독이었다는 건 잘 알겠는데, 그에게 카이저, 즉 황제라는 별칭이 늘 따라붙는 이유가 뭘까요?
유래가 있습니다. 1969년에 붙은 별명인데요. 당시 DFB-Pokalspiel 대회에서 FC바이에른이 샬케04와 자웅을 겨뤘습니다. 샬케04에는 라인하르트 리부다라는 천재적인 축구 선수가 있었는데요. 드리블 기술이 매우 뛰어난 천부적인 공격수였습니다. 그가 당시 ‘베스트팔렌 지역의 왕’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당시 독일 <빌트> 지의 한 기자가 “만약 군주제가 여전히 유지됐다면, 리부다는 샬케의 왕이고 바이에른 뮌헨의 황제는 베켄바우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특히 뮌헨이 샬케를 그 경기에서 꺾어버렸는데요. 그날 기사 첫 문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Schalke probte den Aufstand gegen die bayerische Monarchie
(샬케는 바이에른의 군주제에 대항하는 봉기를 시도했었다.)
안타깝게 그 봉기는 실패하고, 황제의 명성이 커졌죠.
그런데 정작 베켄바우어의 설명은 달랐습니다. 쑥쓰러웠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훗날 베켄바우어는 자신의 별명에 대해 쥐트도이체차이퉁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971년 8월 FC바이에른이 오스트리아에서 경기를 갖기위해 수도를 방문했었다. 경기 전 리셉션이 열렸는데 중앙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흉상이 있었다. 한 사진 기자가 자신에게 그 흉상 옆에 서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가 셔터를 눌렀고 나는 그 순간부터 프란츠 황제가 되었다”
베켄바우어도 이름이 프란츠이기 때문에 이때부터 황제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게 ‘베켄바우어 피셜’입니다.
최후방 수비만 하는 스위퍼 포지션을 전방에 침투해 골까지 노리는 리베로로 진화시킨 최초의 선수 베켄바우어. 말년에 뇌물 이슈 등으로 속시끄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여전히 전세계 펜들에게 그는 필드의 황제, 우아한 리베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우리 김민재 선수의 롤모델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