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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Dec 11. 2015

아나운서 일자리, 거의 다 사라졌다

정규직 일자리 연 평균 '3개'

미래에 사라지게 될 직업을 모은 장면이다. KBS에서 제작하는 <명견만리> 일부다. 아무래도 아나운서 출신인 내게 72%라는 숫자는 크게 보인다. 직업으로서의 아나운서가 사라질 가능성이 72%라는 예측 결과다. 아나운서의 직무 자체를 로봇이나 다른 전문가가 하게 되므로 아나운서 직업이 사라진다는 분석이다.


https://m.youtube.com/watch?v=qAnb1dSWK4U


아나운서 일자리 '이미 씨말라'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아나운서 일자리 자체가 씨말랐다. 정규직 기준이다. KBS나 JTBC를 제외하면 전통적 개념으로서의 아나운서 정규직 일자리는 없다. 올해는 JTBC가 여자 1명, K본부가 남자 둘에 여자 하나를 뽑았다. 정규직 아나운서 공채 일자리가 고작 4개 뿐인 것이다. 2년쯤 전부터 매년 이렇다.


반면 지원자는 평균 3천 명 가량이다. 물론 SBS가 있지만 격년으로 뽑고 주로 아이돌 같은 외양에 나이 어린 지원자가 된다. 아예 신입사원 공채를 없애버린 MBC와 스브스를 묶어서 봐야 하는 이유다. 나머지 방송국에서 채용하는 아나운서 일자리는 전부 연봉계약, 프리랜서 계약, 도급이다.


아나운서는 과거, 언론인이자 방송인이었다. 뉴스 앵커로서 시사에 통달하고 시사 대담 사회자로서 역량을 갖춰야 했다. 여기에 스포츠 캐스터, 쇼•교양 MC, 내레이터, DJ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방송인 깜냥이 필수였다. 그래서 각광 받았고 '방송의 꽃'으로까지 불렸으며 여대생이 선망하는 직업 1위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나운서가 언론인으로서의 입지는 줄고 방송인 직무를 중점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련의 '아나테이너' 파동을 겪으며 아나운서의 예능 출연이 부각됐고 급기야 마치 예능 MC나 패널 출연이 전부인 것마냥 아나운서 운신의 폭을 좁힌 것이다.


아나운서 직무 분열


아나운서 직무는 빠르게 분열했다. 전문MC, 전문DJ에게 마이크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뉴스 앵커 자리도 기자들이 더 많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교수나 변호사가 앵커 직무를 맡는 곳도 나왔다. 기존 아나운서들은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형국이다. 지상파 3사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체 프로그램에서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비율은 약 10% 정도다.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적정 몫만 감당해주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기존 아나운서들은 굳이 이 방송 백가쟁명 전장에서 피흘리려 하지 않는다. '조직'이 썩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한국방송 재직 시절 전현무 아나운서는 예능MC로 '오버'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경위서를 숱하게 작성해야 했다고 토크 프로그램에서 곧잘 술회하곤 했다. 대표적 사례다.


물론 발등에 불 떨어진 요즘 대형사 아나운서 조직은 이제서야 아나운서의 예능, 드라마 출연을 독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회사에서 인원 수 적고 힘 없어 헤게모니 다툼에 끼기도 힘든데 소속 아나운서 하나라도 더 쓰임받게 해 조직 자체의 정체성을 사수하려는 치열한 몸부림이다.


그러나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극대화 하지 않은 것은 패착이었다. 아무리 아나운서가 날고 긴다 해도 개그맨보다 웃기기 힘들고 가수보다 DJ 청취율 잡아오지 못한다. 심지어 연예인들은 섭외도 왕왕 직접 해준다.


이에 비해 아나운서는 배우보다 연기를 못할 뿐더러 어딜 가든 방송국 직원들이 '챙겨야 한다'는 선입견까지 안고 있다. K본부가 '착하지 않은 아나운서들' 이란 온라인 콘텐츠를 선보였다. 나름대로 뉴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한 아나운서실 실적 쌓기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말 교사'로서의 아나운서 정체성은 미디어 시장에서도, 시청취자나 온라인•모바일 유저들 사이에서도 별 관심이 없는 영역이다. 자구책을 꺼내들기에는 이미 자충수를 너무 많이 뒀다. K 외의 다른 회사들은 아예 이런 시도조차 꿈꿀 수 없다. 이미 프리랜서, 계약직 투성이어서 회사가 쓰는 '출연자'이지 '직원' '선후배'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 기로 선 아나 지망생


이런 상황에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 지원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언론인이냐 방송인이냐' 노선을 분명히 골라야 시행착오를 줄이기 때문이다. 전현무나 박지윤 혹은 오상진, 이지애 전 아나운서처럼 방송인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기존 아나운서 준비 관행을 따르면 된다. 언론사 스터디도 하고 전국 각지의 공채에 응시하면서 아나운서로서 커리어를 쌓는 길이다. 유명해지면 프리 선언하고 퇴사하는 진로다.


어느 회사에서 일해봤느냐 하는 경력은 본인 연봉 숫자를 가늠하는 밑천이 될 것이다. 1인 방송 시대가 도래한 이 마당에 아예 자신만의 색깔과 콘텐츠로 무장하고 뉴미디어 플랫폼 방송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방법이다.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싶다면 차라리 방송기자 준비 하는 게 현명하다. 앵커, 시사 대담 사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정규직 기자 일자리도 많은 편이다. K본부 한 곳만 따져도 매년 10명 이상 뽑는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챙기고 방송까지 겸할 수 있으니 1석 2조다. 현장 경험을 통해 저널리즘의 ABC, 현장 감각 등을 익힐 수도 있다. 바쁘긴 하지만 5년차 이상 되면 자기 시간도 제법 생긴다.


물론 대형사에 한하는 이야기지만 적어도 아나운서 준비보다는 합격 가능성이 크고 현실 메리트도 세다. 무엇보다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영역이다.


거의 다 사라진 아나운서 일자리를 전전하기보다 기자 준비할 것을 권한다. 명견만리 클립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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